평소와 다름없이 그라운드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뛰고 상대의 볼을 잘 막아내며 팬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상대 선수에게 헤딩골을 허용하며 실점했을 때 그는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후배 정성룡과 교체됐고 그것으로 그의 대표 선수 생활은 마감됐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양복을 입고 다시 나타나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그에게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고, 그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강직할 것만 같았던 그가 팬들 앞에서 선보인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바로 대표팀의 영원한 수문장 이운재(수원 삼성)였습니다.

이운재가 대표팀에서 은퇴했습니다. 이운재는 11일 저녁,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의 A매치 평가전에서 선발 출장해 전반 26분을 뛴 뒤 정성룡과 교체돼 16년간 정들었던 태극 마크를 반납하고 그라운드를 빠져 나갔습니다. 월드컵 4회 출전, A매치 132경기 출장 등 10년 넘게 대단한 기록을 세운 이운재는 예나지나 계속 지킬 것만 같았던 골문을 후배들에게 내주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선보였습니다.

▲ 후배 김영광, 정성룡과 포옹하는 이운재 ⓒ연합뉴스
아직 완전한 은퇴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축구선수 생활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이운재의 과거를 돌아보면 파란만장 그 자체나 다름없었습니다. 때로는 한국 축구 최고의 쾌거를 이룩하면서 온 국민을 기쁘게 했던 반면 때로는 팬들을 실망시키는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던 '일그러진 영웅'으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시련과 아픔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이를 이겨낸 이운재는 한국 축구 역대 골키퍼 가운데서도 가장 명예로운 대표 은퇴를 선보이며 아름다운 사례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운재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단연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을 이끈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김병지를 제치고 조별 예선 1차전 폴란드전부터 선발 출장을 했던 이운재는 위기 때마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과 선방 능력으로 팀의 사기를 끌어올리며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조별 예선과 16강전까지 단 2점만 내주는 완벽한 선방 능력을 보여준 이운재는 8강 스페인전에서 고군분투하며 4천만 전 국민을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전후반 120분동안 혈투 속에서 이운재는 몸을 아끼지 않는 선방을 잇달아 펼치며 무실점으로 막아냈습니다. 그리고 이어 벌어진 승부차기에서 이운재는 특유의 선방으로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스페인의 4번 키커 호아킨의 슈팅을 정확하게 읽어 막아낸 이운재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고, 결국 마지막 키커 홍명보의 슈팅이 골망을 흔들자 그제서야 비로소 함박 웃음을 지으며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이운재는 야신상 후보로도 오를 만큼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았습니다. 1994년 월드컵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2006년 월드컵에도 잇달아 출전해 대표팀 최고 수문장으로서의 입지를 굳히던 이운재는 그렇게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운재에게는 결정적인 시련이 세번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그 시련이 이운재를 더욱 강하게 했고, 이를 잘 극복해 내면서 성실함의 표상과 같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첫번째 시련은 1996년 무리한 다이어트로 결핵을 앓아 2년간 고생했던 사례였는데요. 당시 그는 수원 삼성 창단 멤버로서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키워나가는 상황이었지만 뜻하지 않은 건강 문제로 꿈을 잠시 접었고 결국 프랑스월드컵 멤버로 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의지로 다시 일어선 이운재는 2000년 아시안컵 멤버로 활약하면서 대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고, 오뚝이처럼 똑바로 일어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시련이 바로 2007년에 찾아옵니다. 아시안컵에서 8강, 4강, 3-4위전을 모두 승부차기를 가졌던 가운데서 8강, 3-4위전에서 강력한 선방 능력을 과시하며 3위에 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운재는 당시 음주 뒷풀이를 한 것이 드러나면서 이른바 '음주 파문'으로 곤욕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우승이라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가뜩이나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서 대회 도중 몇몇 동료 선수들과 술자리를 가진 것 자체에 황당하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그 자리에 이운재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를 밝혔고 고개를 떨구면서 '일그러진 영웅'의 면모를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돼 이운재는 2008년 축구에만 전념하는 심정으로 그야말로 '회춘한' 모습을 보여주며 소속팀 수원 삼성의 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우며 골키퍼 최초로 K-리그 MVP를 거머쥐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자격 정지 1년이 풀리자마자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고 다시 대표 선수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서 A매치 28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이어나가는데 역시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시련은 또 찾아옵니다. 개인으로는 사상 네번째 월드컵 본선 출전을 앞두고 부진한 경기력이 이어지면서 팬들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올해 초까지 탄탄한 입지를 보였던 이운재였지만 올시즌 K-리그 개막 후 월드컵 전까지 9경기 18실점을 기록하며 경기력이 크게 떨어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예전부터 지속됐던 '과체중 논란'까지 더해지며 이운재의 대표팀 주전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팬들의 비난 여론 역시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운재는 남아공월드컵에서 주전 확보에 실패하며 다소 씁쓸한 마지막 월드컵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 당당했던 국가대표 이운재의 모습이 당분간은 그리울 것 같다. ⓒ연합뉴스
그래도 이운재는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면서 비난 여론을 잠재웠습니다. 특히 월드컵 16강에서 패한 뒤 정성룡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하는 모습이 비춰졌을 때는 '역시 영웅답다'는 찬사를 받으며 많은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은 거의 대부분 사라졌고, 미련없이 대표팀을 은퇴한다고 했을 때 팬들은 오히려 진한 아쉬움을 드러내며 그동안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운재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비록 대표팀 골키퍼 유니폼을 입고 투혼의 플레이를 펼치는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소속팀 수원으로 들어가 혼신의 힘을 다 하며 마지막 불꽃을 더욱 활활 태우려 할 것입니다. 한때 뱃살 논란 때문에 자기 관리를 못 한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시련이 있을 때마다 오뚝이처럼 보란듯이 일어선 모습을 보면 그같은 생각이 잘못 된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자기 관리가 없었다면 16년 대표 선수 생활이 거저 주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히 롱런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서른 즈음에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는 선수들이 나타나는 가운데서도 오랫동안 대표 선수 생활을 지속했던 이운재의 존재는 분명히 후배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됐던 게 사실입니다.

어쨌든 대표 선수 생활을 마친 이운재가 더욱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박수 쳐주고 격려하는 일만 남은 듯 합니다. 불굴의 의지로 한국 축구에 강한 족적을 남긴 '영웅' 이운재를 우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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