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 데뷔전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경기를 펼친 감독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었습니다. 패배 의식에 사로잡혔던 한국 축구를 단번에 깨트리면서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2-0 완승을 거두고 기분 좋은 출발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임팩트 있는 경기력을 우리 국내파 감독, 조광래 감독이 해냈습니다. 조광래 감독은 대표 선수들을 모은 지 단 이틀 만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며 많은 것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아직 30%밖에 선수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한 것을 두고 몇몇 팬들은 "30%가 이 정도인데 100%면 상당히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였을 만큼 한국 축구의 틀을 완전히 뒤바꿔 놓으면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조광래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한국 축구가 윤빛가람, 최효진 두 신예의 연속골에 힘입어 2-1 승리를 거두고 월드컵 16강 기념 경기를 짜릿하게 장식했습니다. 경기를 이긴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월드컵 멤버들과 어린 선수들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기술 축구의 가능성을 선보였다는 내실 있는 성과도 내면서 승리와 내용 '두마리 토끼'를 다 잡는데 성공했습니다.

일단 조광래 감독이 들어선 뒤 한국 축구가 확실히 달라진 점은 짧고 세밀하게 연결되는 패스플레이를 통해 공격 기회를 만들어 나갔다는 점이었습니다. 의미 없는 롱패스보다는 원터치로 간결하게 연결해 나가면서 호시탐탐 득점을 노리는 전략으로 시종일관 눈에 띄는 경기력을 보여줬는데요. 과거 측면 돌파에 이은 공격이나 세트 피스에만 국한됐던 득점 루트가 선진형인 중앙의 짧은 패스플레이를 통해서도 개척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보다 박진감 넘치고 세련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 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대표팀과 나이지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윤빛가람과 최효진이 골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수들이 보여준 결정적인 장면에서도 이는 잘 드러났는데요. 측면 공격수였음에도 중앙을 좁혀 움직임을 펼친 박지성은 전방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최효진에게 간결하고 정확한 패스플레이로 골을 도우며 조광래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또 골을 넣은 최효진은 측면에서 활발한 공-수 능력을 발휘하며 기존 선수들의 아성을 뛰어넘는 활약을 펼치며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윤빛가람의 활약상은 그 가운데서도 대단히 눈부셨습니다.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패스 플레이와 폭넓은 움직임은 마치 대표팀을 수년 이상 뛴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과감한 돌파와 적극적인 몸싸움, 그리고 날카로운 슈팅은 나이지리아 수비진을 당황하게 했고, 전체적으로 여유가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이며 데뷔골까지 터트리는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더운 날씨 속에서도 적극적인 플레이를 펼친 윤빛가람은 풀타임을 뛰었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전후반 내내 좋은 활약을 펼치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고, 향후 조광래호의 키플레이어 가능성을 남기며 주목받았습니다.

이렇게 주전과 비주전의 실력차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을 만큼 전후반 내내 경기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른 경험을 갖고 있는 이른바 '홍명보의 아이들' 5명(이승렬, 김보경, 조영철, 김영권, 홍정호)은 나란히 경기에 출전해 무난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세대교체를 가속화하는데 나름대로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은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목표에 최대한 부합하는 경기를 펼치려 노력했고, 그러면서 보다 완성된 조직력을 통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가는 팀플레이를 잇달아 선보이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선수들이 손발을 맞춘 지 단 이틀밖에 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후반에 다소 패스 미스가 많았던 점은 아쉬웠지만 조광래 감독의 말처럼 "30%를 보여준 경기"에서 오밀조밀한 경기를 선보인 것은 대단히 긍정적이었다고 봤습니다.

일단 선수들이 소집된 지 단 이틀 만에 조광래 감독은 한국 축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지를 제시하며 강력한 첫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습니다. 무엇보다 첫 경기부터 자신만의 색깔을 강하게 드러낸 점이 이전 감독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는데요. 기존에 강점을 드러냈던 체력, 조직력 뿐 아니라 선수 개인의 기술과 빠른 축구, 짧은 패스로 이어지는 정교한 플레이를 살려 더욱 세련된 팀이 돼야 세계 축구에서 살아남는다는 방향을 제시하면서 '아름다운 축구'가 무엇인지를 보여줬습니다. 평소 축구에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조광래 감독의 연구물이 첫 경기부터 많은 것을 기대하게 만든 가운데, 내실 있게 발전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의 모습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 나갈 지 더욱 주목되고 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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