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인지 동지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에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동지라 확신했다. 아무리 미국인이라 해도 조선 사람인 유진이 일본의 편에 선 자를 처단한 것은 자신의 목적과 같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물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애신은 깨달았다. 그건 수단이었음을 말이다.

열강의 먹잇감이 된 조선;
서로 다른 위치에 섰던 그들이 다시 조선에 모이기 시작했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존재했다. 신분이 어떠했건 그들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살았던 인물들이다. 그런 그들이 국가의 존폐 위기에서 다시 조선이라는 땅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었던 악연, 그들은 그렇게 '바람 앞 촛불' 같은 조선에 각자 다른 목적으로 모였다.

유진과 애신은 반복적으로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목적이지만 동선이 겹치는 것은 인연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관계라는 점에서 애신은 그를 더욱 특별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조선을 위태롭게 만드는 자들을 저격하는 애신으로서는 멋진 동지가 생겼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자신이 저격범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해당 사건을 수사한 영사 대리로서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믿었다. 열강의 먹잇감이 된 조선을 구하기 위해 미국에서 직접 조선으로 들어온 투사라고 확신했던 애신은 특별한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왕의 스승이었던 할아버지, 매년 흉년이 들면 곳간을 열어 수많은 이들을 살리는 고 씨 가문의 막내 아씨에 대한 애정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그들에게 손가락질도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고마운 은인을 탓할 그 어떤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어린 동매. 동네 여자들에게도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최하층의 삶을 살아야 했던 백정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겁탈 당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고기만 잡는 아버지. 이런 부당한 현실에 분노하는 어린 동매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그를 떠나보냈다.

자신을 겁탈한 자를 죽이고 아들의 이마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떠나게 한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백정의 삶을 물려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 직전의 동매를 구한 것은 애신 아씨였다. 아씨의 가마에 백정의 아들을 태웠다.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린 아씨는 두려움 속에서도 그 아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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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체에 대한 분노로 살았던 동매지만 아씨에 대한 감정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아씨를 욕하는 일본인들을 거침없이 대낮에 칼로 베어버리는 동매는 거칠기는 하지만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동매의 그 맹목적인 행위가 자신을 구해줬던 아씨에 대한 보답인지 사랑인지 모호하다.

일본 유학을 핑계로 조선을 벗어나 룸펜으로 살아가던 희성도 조선으로 복귀할 준비를 한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지독한 인물인지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의 친할아버지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그는 부당함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유학을 선택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혼인을 해야 하지만 그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저 일본으로 건너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서른을 훌쩍 넘어 더는 피할 수 없게 된 희성은 조선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정혼 상대가 애신이라는 사실을 왜 지금 알았는지 안타까워 할 정도였다.

가마터 도공 황은산을 찾으러 온 유진은 마침 그곳으로 가려던 애신과 나루터에서 다시 만난다. 직접 노를 저어 도공을 만난 유진은 변한 것 없는 황은산을 보며 웃기만 한다.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자신이 미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왔던 도공. 하지만 훌쩍 성장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유진은 그저 재미있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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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포수와 흠집 많은 그릇들. 애신이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돌아가는 배에서 애신은 유진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자신이 저격수였고, 가까운 곳에 든든한 동지가 있었다는 사실이 반갑다고 했다. 하지만 이 남자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정혼자의 옷을 맞춰주기 위해 매년 찾는 양장점에서 다시 조우한 유진과 애신. 이 겹치는 만남 속에서 영어를 모르던 애신은 '러브'를 하고 싶다고 했다. 벼슬보다 '러브'가 좋다던 말이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애신이었다. 현 조선에서 여성이 벼슬을 할 수는 없다. 그럼 그것보다 좋은 것을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당연했다.

"나랑 함께 하자"는 애신의 발언에 유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하는 소리면 너무 도발적이고, 모르고 한다 해도 도발적이란 감정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위험하고 어려우며 뜨거워야 한다는 유진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애신은 뒤늦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러브'라는 단어가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도 말이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제물포로 가는 기차를 탔던 애신. 일본인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기차를 외면했던 애신이 기차에 탑승한 것은 갈구 때문이었다. 영어로 시작된 신문물에 대한 호기심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제물포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만난 일본군의 도발에 참지 못하고 총을 빼앗아 겨누는 애신을 막은 것은 스승인 장 포수였다. 자신의 정체가 노출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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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에서 내린 애신을 맞이한 것은 총을 든 미군들이었다. 미군 짐 속에서 총 한 자루가 사라졌다. 장 포수가 총을 가져갔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미군들은 여성의 치마 속까지 검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애신으로서는 황당했다. 기차 안에 미군들이 가득한 것도 이상했지만, 그들이 무슨 권리로 남의 땅에서 조선 사람들에게 총을 겨눌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립하는 상황에 등장한 것은 유진이었다. 미군 제복을 입고 그들의 경례를 받으며 등장한 유진. 그를 보는 순간 애신은 깨달았다. 유진이 미국인 로건을 암살한 것은 단순히 미국의 위상을 위함이 아니었다. 미군이 조선 땅에 주둔할 수 있는 이유였다.

미국인이 조선 땅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조선에 있는 미국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주둔시키기 위한 하나는 방식이었다. 뒤늦게 이를 깨달은 애신은 혼란스러웠다. 내 앞에 서 있는 이 자는 과연 "적인가 동지인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유진에게는 여전히 조선은 망해야 할 나라일 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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