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무릎팍 도사>에는 연예인이 아닌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이 출연했습니다. 광복 65주년을 맞이하는 2010년, 역사를 되돌리는 현실과 역사 교육을 바닥에 던져버린 교육계, 친일을 찬양하고 친일 자손이 땅을 돌려달라고 외치는 작금의 상황에 서경덕이라는 존재는 그래서 특별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보다 넓고 깊게 세상을 바라보는 힘

서경덕이라는 인물은 뉴욕 타임즈에 독도 광고를 실으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하지만 무릎팍 도사에 나온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특별한 존재였었습니다. 15년 전 파리 에펠탑에서 시작된 판을 좀 더 크게 벌려도 좋겠냐는 그의 고민 상담은 많은 이들에게 호평을 받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2005년 뉴욕 타임즈에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광고를 시작으로 '위안부 문제', '동북공정에 따른 고구려 역사왜곡', '동해 바로 표기하기' 등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광고 캠페인으로 특별한 존재가 된 서경덕의 역사는 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행복한 도전기였습니다.

대학시절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생존경쟁'이라는 동아리는 오늘의 그를 만든 밑거름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안에 안주하기 보다는 보다 넓은 세상을 보려는 그의 노력은 국내에 있으면 알 수 없었던 다양한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에 충격을 받아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을 알리는 일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그의 발상은 많은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어진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400년 후 열어볼 수 있는 타임캡슐에 넣을 물건이 현 상황을 알게 해주는 물건만 넣을 것이 아니라 미래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변해있을까라는 상상력을 넣어보자는 발상의 전환은 오늘의 서경덕을 엿볼 수 있는 특별함이었습니다. 정말 무식한 방법으로 전국의 대학생 2만 명에게 설문을 받아 일일이 수작업으로 통계를 내서 건넨 특별한 자료는 바로 신문에 실리게 되며 그 기사가 자신에게는 '가보 1호'라는 그의 농담반 진담반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동력이었을 듯합니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해외토픽에 실릴만한 일을 기획해 보려고 기네스를 조사 한 후에 거대한 국기를 만드는 도전하게 된 것은 젊었기에 가능한 용기였습니다. 150m*100m에 달하는 거대한 태극기를 만들기 위한 그들의 도전은 멋지게 진행되었지만, 여의도 광장(현 여의도 공원)도 턱없이 부족한 크기라서 실패했다고 합니다.

비록 8월 15일 특별한 행사를 치르지는 못했지만 실패를 통해 치밀한 계획이 없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는 것은 그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함이었습니다.

96년 배낭여행을 떠나며 2002 월드컵 홍보를 시작한 그에게 한국을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매년 한국인들이 8월 15일이면 에펠탑 앞에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배낭여행을 하며 그는 815 행사에 모두 모이자고 제안해 300여 명의 한국인들이 모여 애국가를 부르고 만세 삼창을 외치는 특별한 이벤트를 통해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광복일이고 세계인들에게는 세계대전 종전일이라 많은 외국인들도 함께 동참했다는 에펠탑 광복절 행사를 기점으로 인생의 기로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전문적으로 한국을 알리는 일을 자신이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삼기로 한 그는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위해 뉴욕에서 유명했던 잔디 맨을 보고는 친환경 테마와 월드컵을 모아 상암구장 잔디로 자켓을 만들어 대통령이 입고 개회사를 하면 특별할 수 있겠다는 발상의 전환은 흥미롭기만 했습니다. 생각을 하자마자 곧바로 뉴욕으로 향하는 결단력 역시 현재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었을 겁니다.

생각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과는 달리 행동으로 옮기는 그의 기민함은 칭찬받아 마땅했습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정말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하지요. 누군가가 바꿔주기만을 바라며 스스로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 현재의 우리에게 서경덕은 몸소 실천해 보여주었습니다.

2005년 '독도 광고'는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광고비는 자비로 충당하고 디자인은 모두 무료로 지원받아 실은 광고는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는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세탁소에서도 택배회사에서도 그 광고를 싣고 한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계 각지에서 유력 일간지에 광고를 해 파급효과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일본 우파의 자극적인 이야기보다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나이든 어느 한국인의 한마디였습니다.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데 일본이 우리에게 얼마나 잘했는데"라는 말은 참담하게 다가옵니다. 일제 치하에서 굴욕의 시대를 보내야 했고 광복을 맞이해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친일청산을 끝맺지 못한 채 세상은 현재까지도 친일 인사와 그 후손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명망가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친일파 송병준의 손자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하는 올 해 다시 조상 땅을 되찾겠다며 소송을 거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2010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만약 프랑스나 영국 등 유럽이라면 나치에 동조하고 앞장섰던 이들에게 내려진 땅을 이제 와서 자손이 되찾겠다고 국가에 소송을 건다는 것은 생각 자체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나치에 동조했던 이들을 철저하게 마지막 한 명까지 찾아내 단죄를 했기에 나라를 팔아 자신의 안위를 챙겼던 매국노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라들과는 달리 광복을 이후 친일파를 다시 권력의 중심에 내세우며 그들에게 모든 권력과 자유를 부여함으로서 나라를 팔아먹고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다시 한 번 나라가 어려워진다면 매국하는 이들은 일제시대 보다 훨씬 많아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매국을 해도 다시 나라를 되찾으면 호령하며 살 수 있는 나라이니 말입니다.

익히 알려진 김장훈과 만나 연속적인 광고 캠페인을 벌인 서경덕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바르게 알리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역사 교육마저 내팽개쳐 버린 대한민국이지만 이에 반해 자발적으로 역사를 알아가고 나라를 진정 사랑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많은 이들이 있기에 그나마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게 볼 수 있을 듯합니다.

"독도와 역사에 대한 가장 큰 적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다"

라는 서경덕의 말처럼 우리 안에서 스스로의 역사를 버리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도 바뀔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조금씩 실천하고 관심을 가지려는 노력만이 왜곡되어가는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되겠지요. 작지만 긍정적인 마음이 모여서 커다란 울림을 만들어냈듯 제 2, 제 3의 서경덕이 지속적으로 나와 긍정의 힘으로 흥겨운 우리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엉망이 되어버린 역사와 독도에 대한 현 정권의 무지하고 당황스러운 사고 속에서 그의 등장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놓치고 방기해버린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일으켜 세우고 가꾸는 일은 힘없는 대중들의 몫이었지만 우리의 힘으로 충분히 바꿔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해서 즐거웠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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