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 이후 약 한 달 반 만인 것 같습니다. 한국 축구가 새로운 선장, 조광래 감독을 앞세워 다시 시작합니다. 조광래호는 11일 저녁,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아프리카 전통의 강호 나이지리아와 A매치 평가전을 갖습니다. 26명의 정예 멤버들이 총출동하는 가운데 조광래 감독의 데뷔전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번 경기는 월드컵 16강을 기념하는 성격의 경기입니다. 그래서 당초 아시아팀이 아닌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던 팀을 물색했고,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맞붙었던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을 갖게 됐습니다. 한 달 반만의 리턴 매치가 여러 가지 화제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과연 이번 경기를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전 포인트는 어떻게 될 것인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광래 감독의 데뷔전

이번 경기는 조광래 감독의 데뷔전이기 때문에 더욱 주목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령탑의 색깔 있는 축구가 어떤 면모를 드러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첫 경기를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겠지만 경기를 이기는 것보다는 내용에 조광래 감독이 더욱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여 결과가 주목됩니다. 내용도 좋고 덩달아 경기도 이기는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역대 대표팀 감독 중에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한 감독은 제법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 감독 가운데서는 핌 베어벡 감독이 대만과의 아시안컵 예선에서 3-0 승리를 거뒀으며, 조 본프레레 감독도 바레인을 상대로 2-0 완승을 거둔 바 있었습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단기간에 팀을 장악하면서 데뷔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고 내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강력한 첫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거스 히딩크 감독과 허정무 감독의 출발은 아쉬웠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홍콩 칼스버그컵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2-3으로 패해 씁쓸한 출발을 보였고, 허정무 감독 역시 남미 강호 칠레와의 경기에서 0-1로 패해 아쉬운 첫 출발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팀을 차근차근 정비하면서 리빌딩하는 작업을 벌였고 나중에 월드컵 4강, 원정 첫 승 감독으로 떠올랐습니다. 첫 경기가 모든 운명을 좌우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감독의 색깔을 엿볼 수 있다는 면에서는 꽤 중요한 시합임이 분명하기에 조광래 감독의 데뷔전이 어떨지 관심이 집중됩니다.

한국 축구가 변한다

하지만 이전 감독들보다 조광래 감독에게서 확연하게 달라진 면을 꼽는다면 바로 무조건 이기는 것보다 전술, 기술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는 것, 즉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기 내용을 더욱 중시한다는 점입니다. 그야말로 한국 축구의 체질을 바꾸고 궁극적으로 '탈아시아'급 선진 축구를 구사하겠다는 이야기인데요. 그에 따라 기존 전술과는 확연히 다르면서도 창의적인 전략, 패스를 활용한 플레이가 더욱 살아날 것으로 보여 첫 경기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 관심이 집중됩니다.

일단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전략은 바로 '토털 사커'와 '생각하는 축구', 그리고 '패스를 강조하는 플레이'입니다. 빠르게 이어지는 패스플레이와 공-수 전환, 점유율을 바탕으로 한 플레이를 통해 보다 세밀하면서도 유연한 공격 축구를 구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빼어난 체력보다는 개인 기술과 개인적인 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또 공격수들도 수비를 하고, 반대로 수비수들도 공격을 하는 이른바 '멀티형' 선수들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경기 내내 단순히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감각적인 패스플레이를 강조합니다. 그렇다보니 '뻥 축구'를 하거나 무작정 경기에서 서 있는 것은 조광래 감독이 보는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가차 없이 이번 대표팀에서 제외된 선수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세련되고 기술적인 축구가 선보여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요. 훈련량이 부족해서 완전하게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맛보기' 시합에서 과연 선수들이 어떤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스리백을 주목하라

이번 경기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진영을 꼽는다면 바로 스리백 수비입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 체제까지 한국 축구는 스리백 수비를 주요 전술로 내세웠지만 이후 허정무 감독 체제까지 8년간 포백 수비가 팀 주요 전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다 3백 수비의 신봉자라 할 수 있는 조광래 감독이 전략대로 다시 3백 수비 카드를 꺼내들면서 과연 불안했던 우리 수비진들이 잘 적응해내면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줄 지 주목됩니다.

조광래 감독의 스리백은 기존의 '플랫 3' 형태와는 다소 다른 개념으로 짜여 있습니다. 통상 스리백은 3명의 중앙수비수를 배치하고 유사시 측면 윙어들이 수비 라인에 가담 변형 4백 혹은 5백에 가까운 형태로 변신해 수비진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안정된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공-수 간격을 유지하기 어렵고 특히 중원 측면 자원들의 부지런한 움직임 없이는 미드필더 싸움에서 숫자에 밀린다는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광래 감독은 플랫 3 형태가 아닌 가운데 중앙 수비수를 공격시 조금 더 끌어올려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까지 맡게 해 중원을 강화하고 공격 자원을 늘리려 하고 있습니다. 또 활동량이 좋은 이영표와 최효진을 좌우 측면 날개에 배치해 수비시에는 수비를 적극 하다가 공격시에 폭넓은 움직임을 통해 기회를 만드는 등 안정적인 공-수 역할을 강조시켰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3백 수비, 그리고 전술적인 움직임을 위해 각 선수들에게 관련 자료를 돌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병폐라 할 수 있었던 수비 문제를 과연 이번 경기에서 변형 스리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기미를 조금이라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윤빛가람, 백지훈, 지동원을 눈여겨보라

▲ 윤빛가람 ⓒ연합뉴스
이번 경기에서 조광래호에 롱런할 수 있는 신예들이 누가 될 지 지켜보는 것도 관심이 집중됩니다. 가장 눈길을 모으는 선수는 바로 윤빛가람인데요. 지난 2007년 U-17(17세 이하) 대표팀에 발탁된 뒤 3년 만에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윤빛가람은 뛰어난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세밀한 패스플레이와 날카로운 움직임이 큰 장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또 4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백지훈 역시 빼어난 침투 플레이와 패싱 능력을 앞세워 기대되는 면이 많고, 19살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된 지동원도 부족한 골결정력을 높일 젊은 선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세 명은 공통적으로 축구 지능이 뛰어나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잘 할 수 있는 선수들로서 조광래 감독 코드에 잘 맞는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과연 조광래 감독의 눈도장을 받는 첫 선수는 누가 될 것인지 한 번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월드컵 멤버들의 활약 여부

신예들의 등장이 볼 만 하게 진행될 예정이지만 월드컵 멤버들의 활약 여부도 당연히 눈여겨 볼 만 합니다. 남아공월드컵에서 뛴 모든 선수가 나오지는 못하지만 나이지리아전 무승부를 통해 16강 진출을 일궈낸 주역들이 대거 출전해 월드컵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시 골을 넣었던 이정수와 박주영, 그리고 '캡틴 박' 박지성, '든든한 초롱이' 이영표 등이 모두 출전해 무더운 한여름 밤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들의 활약 여부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앞서 전한 것처럼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전략에 잘 맞아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줄 지도 관건입니다. 박지성의 경우, 허정무호 시절 측면과 중앙 미드필더로 중용됐던 것과 다르게 조광래호에서는 측면 공격수이면서 중앙으로 다소 좁혀 들어간 뒤, 원톱 공격수가 수비진을 흔들 때 뒤에서 침투해 공격 기회를 엿보는 이른바 '미들라이커' 역할을 소화할 것으로 보여 변신에 성공할 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포백 수비에 익숙했던 수비진 가운데 앞서 스리백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이전보다 많은 역할을 소화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조용형의 활약 여부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으로 꼽힙니다.

그들, 다시 희망을 본다

월드컵 최종엔트리 직전까지 갔다가 아쉽게 낙마한 선수들의 부활 여부도 눈길을 끕니다. 최종엔트리 발표 직전 부상으로 낙마한 곽태휘와 경쟁에서 밀려 탈락한 이근호가 다시 대표팀에 중용됐는데요. 특히 이근호는 조광래 감독으로부터 상당한 기대감을 받고 있어 시련을 딛고 다시 대표팀의 간판 선수로 주목받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박주호, 최효진 등 허정무호에서 활약하다 아쉽게 탈락한 선수들도 이번에 일부 포함돼 조광래호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이운재의 대표팀 은퇴

이번 경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또다른 요소는 바로 대표팀의 명수문장 이운재가 이번 경기를 끝으로 은퇴하는 것입니다. 전반전만 소화한 뒤 하프타임 때 은퇴식을 통해 대표팀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는 이운재는 16년간 정들었던 태극 마크를 반납하고 소속팀에만 매진하게 됩니다. A매치 131경기에 출전해 홍명보에 이어 두번째로 가장 많은 A매치를 뛴 이운재는 대표팀에서 온갖 경험을 하면서 한국 축구의 영광과 좌절을 두루 맛본 선수였습니다. 이번 경기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물러나는 이운재가 마지막 132번째 A매치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지 관심있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월드컵만큼이나 상당한 이야깃거리를 양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나이지리아전. 과연 어떤 결과로 축구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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