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 등의 문제를 다룬 국군 기무사령부의 문건 수사를 지시했다. 육군과 기무사 출신이 아닌 군 검사들로 독립수사단을 구성하고 국방부 장관이라도 지휘를 할 수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독립수사단 구성 지시는 창군 이래 처음이다. 그만큼 ‘문건’의 문제를 심각하게 본 것이다. 청와대는 이 문건을 사실상의 ‘실행계획’으로 본다고도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는 ‘셀프개혁’으로 귀결되고 말았던 과거 국가정보원이나 기무사령부의 사례를 답습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떠들썩하게 진행됐던 국정원 개혁이 어디로 귀결됐는지를 돌이켜 본다면 그야말로 적절한 지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보수언론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조선일보는 11일 사설에서 “군의 입장에선 국가 전복·마비 상황이 실제 벌어질 경우에 대비한 비상 계획과 법적 절차 등을 검토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수 있다”면서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검토 문건을 두고 '쿠데타' 운운하는 것은 적폐 청산을 이어가려는 목적은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문건에 대한 자유한국당 등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지난 3월부터 불거진 이번 사건이 이달 들어 쟁점화된 것에는 현 정부의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란 오해를 살 수 있다”면서 “벌써부터 군 내부에선 현 정부와 대척점에 있었던 특정인을 염두에 둔 수사라는 수군거림이 있다”고 했다. ‘개혁’이 아니라 ‘보복’이란 프레임을 또 다시 꺼내든 셈이다.

물론 기무사 문건의 작성 의도, 실제로 실행됐을 가능성, 이를 친위쿠데타로 볼 것인지 등은 논란거리일 수 있다. 이를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라도 공정하고 엄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무사 문건이 만들어진 맥락 자체를 정상적인 과정으로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10일 과천 기무사령부 입구 (연합뉴스)

기무사는 과거부터 정치권력과의 부적절한 유착을 통해 스스로의 권력을 부풀려왔다. 여러 사례를 말할 수 있지만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일은 그 중에서도 유별나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2013년 4월 임명된 장경욱 기무사령관이 6개월 만에 경질된 게 시작이다. 1년 반에서 2년 정도는 직을 유지하는 관례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일이었으므로 그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이후 드러난 사실은 장경욱 사령관이 청와대에 민감한 내용의 보고를 한 게 화근이었다는 거다.

당시 기무사의 보고서는 육사 출신의 요직에 있는 인물들이 군 인사권을 장악하고 전횡을 저지른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알려졌다. 특히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의 경우는 독일 육사 출신을 지나치게 우대한다는 이유로 아예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덧붙여지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당사자인 국방부 장관을 건너뛰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달됐지만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을 거쳐 김관진 장관에게까지 전달됐다고 한다. 장경욱 사령관에 대한 이례적 조치는 이 영향이라는 것이다.

후임으로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사람은 이재수 중장이다. 이재수 중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씨와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박지만 라인’이라고 불리는 육사 37기의 독주 시대가 오는 것 아니냐는 일부 언론의 전망이 있었다. 이재수 중장이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것은 자연스럽다는 주장도 있고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2014년 10월 이재수 사령관이 또 6개월 만에 돌연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좌천된 배경에 대해서는 정치적 맥락이 있다는 지적이 당시에도 나왔다. 정윤회 씨와 박지만 씨의 권력 암투가 본격화된 결과라는 거다.

이때는 정윤회 씨 측이 박지만 씨에 미행을 붙이고 ‘문고리 3인방’ 등을 동원해 견제하고 있다는 추측성 기사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다. 세계일보는 문건 유출 사건 등을 언급하며 이재수 당시 사령관이 ‘비선’ 문제를 조사하다가 밀려났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이후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사람이 바로 조현천 중장이다. 조현천 중장은 이번에 문제가 된 문건이 작성될 당시에도 기무사령관직을 유지했다.

2014년 말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은 권력의 중심축을 이너서클 중에서도 최순실 씨 쪽으로 완전히 기울게 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을 처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우병우 비서관은 민정수석으로 승진하면서 이너서클 진입에 성공했다. 박관천 경정 등의 문제로 경찰의 인사검증 기능이 무력화되면서 국정원과 기무사의 영향력이 확대됐다. 우병우 수석은 검찰, 기무사, 국정원을 완전히 틀어쥐었다. 후에 나온 보도를 보면 조현천 중장을 기무사령관으로 추천한 사람으로는 우병우 수석의 오른팔이라고들 한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이 지목돼있다.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을 종합하면 비선실세가 만든 기무사령관이 위수령과 계엄 선포의 실행계획을 만드는 데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기무사가 어떻게 권력의 핵심부와 완전히 한몸이 되고 정권의 첨병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기무사의 월권이나 계엄령 관련 문건의 문제만큼이나 이 과정 자체를 평가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기무사 문건의 또 다른 본질은 국정농단 그 자체이다.

이 모든 과정에 긴밀히 개입한 인사 중 한 사람이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일 수밖에 없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우리 아빠는 김관진하고만 형님 동생 한다”고 했다고 했다. 김관진 전 실장이 정권 초기부터 스스로 비선실세들의 편에 서서 행동했을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기무사 문건이 국정농단의 문제라면 우병우 전 수석의 손발노릇을 한 검찰과 정보기관의 인물들과 최순실 씨, 나아가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뒤집어 말하면 보수언론이 벌써부터 ‘정치보복론’을 내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번에도 지적했듯 애초에 문제는 국정원이나 기무사 등의 정보기관이 비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 이를 충분히 남용할 수 있다는 게 문제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 표정을 바꿀 수 있다. ‘나쁜 권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권력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는 현실 자체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보복론은 물타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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