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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이 보여주는 것당시 청와대가 '발주처'일 가능성 높아… 해체 수준의 개혁 불가피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18.07.09 08:36

지난주 공개된 충격적 문건이 논란이다. 국군 기무사령부가 지난해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계엄과 합수 업무 수행을 위해 작성한 문건이 공개된 것이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기무사는 헌재 결정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치안 불안 등에 대비하려는 목적으로 계엄이 선포될 경우에 대해 구체적 실행계획을 세웠다. 여기에는 기갑부대와 특전사를 활용해 시위를 진압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있다.

이철희 의원과 시민사회단체 등은 이 문건이 최소한 기무사의 월권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기무사가 12.12 사태를 연상케 하는 쿠데타 계획을 세운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반면 보수언론 등은 군이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것에 불과하고 오히려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탄핵 기각과 인용 양쪽 모두 극단적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현실 인식이 문건에 드러나므로 정치적 편향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논란이 있지만 무엇보다 이 문건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작성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엄령 이후 병력동원 등은 합동참모본부가 논하고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므로 기무사가 이러한 계획을 실제 했다면 월권이다. 또, 기무사가 짠 계획이 실제 작동됐을 경우 병력의 공백 때문에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비할 수 없게 된다는 지적도 함께 봐야 한다.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것은 12.12나 5.18에 비견할만 하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제 작동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첫째로 당시 촛불시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그야말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선의 군이 지시를 거부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 헌법재판소의 결정보다 오히려 계엄령 선포가 국민의 감정을 자극해 ‘혁명적 상황’을 앞당겼을 가능성이 높다. 셋째로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선 미국이 제동을 걸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집권세력이 무능했다지만 기무사의 엘리트 군인들이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대선 기간 직접 박근혜 정권의 계엄 선언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조선일보 등은 책임있는 정치인이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지금와서 보면 군 내의 ‘제보’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들도 이러한 계획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그럼에도 이런 몰상식한 내용의 문건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 이 문건을 작성해야 할 이유가 따로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누군가 계획을 요구했고 기무사가 이에 부응한 것이라면 결국 그 이유는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문건을 보면 여론의 부담을 언급하면서 보수인사 일부가 계엄령 선포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술돼있다. 권력을 쥔 누군가가 이에 공감해 계통을 무시하고 기무사에 계엄 선포 이후 구체적 실행계획을 요구했다고 보면 비교적 합리적으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다.

문건에 ‘진보(종북)’이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디까지나 기능적인 시각에서 보면 굳이 ‘진보(종북)’이란 적대적 표현을 쓸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문건은 형식적인 것이긴 하지만 계엄 선포의 근거를 탄핵 인용과 기각 모두의 경우에서 찾고 있다. 진보나 보수 모두가 소요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굳이 한쪽에만 ‘진보(종북)’이란 표현을 쓴 것은 그 계획을 최종적으로 받아볼 사람을 의식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계엄령 선포를 말리려고 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 정도다.

지난 1월 기무사 정치적 중립 준수 선포식'에서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이 손을 씻고 백색 장갑을 끼는 '세심 의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보면 ‘발주처’는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였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기무사의 중간다리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기무사령관은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어 권력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성경쟁’ 속에서 정치적 종속관계가 지속적으로 심화돼온 결과가 이 문건이라고 볼 여지도 다분하다. 실제 박근혜 정권에서 기무사는 ‘알자회’ 등 사조직의 진원지 중 하나로 지목되는가 하면 김관진 전 실장 라인과 박지만 씨 라인의 권력다툼이 벌어지는 곳으로 묘사되기도 했었다.

기무사가 자신들의 업무 영역을 넘어 세월호 참사 문제에 손을 댄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국방부 사이버댓글사건 조사TF는 지난 2일 기무사 요원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사찰하고 회유하며 보수단체와 협력해 여론 통제를 시도한 정황을 드러내는 백서를 공개했다. ‘방첩’ 업무를 한다는 기무사가 시민단체 활동가 등을 ‘종북’으로 몰아 사찰을 한 사례는 많이 있지만 이념과는 별 관계가 없는 사건에 이런 식으로 개입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례적인 일을 굳이 이렇게 열심히 한 것은 윗사람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해 좀 더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한 결과일 것이다.

이런 식이니 ‘셀프 개혁’으로는 안 되고 사실상 기무사를 해체하는 것에 준하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애초에 기무사가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없는 이유는 막대한 힘과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방첩 업무를 제외한 대다수의 권한은 문민통제를 직접적으로 받는 다른 기관에 넘기고, 여기서도 민감한 권한은 바람직한 방식으로 최대한의 제약이 가해진 상황에서만 행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런 제도적인 보완을 넘어 계속 되풀이되는 정치적 문제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 문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의 안정을 추구하려는 권력자와 계통을 무시하고서라도 사익을 추구하려는 군의 충성경쟁이 만들어 낸 결과물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정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종북 세력’의 위협은 늘 과대포장 되고 있다. ‘북괴’가 호시탐탐 남침 야욕을 불태우는 이때에 무슨 한가한 민주주의를 말하며 계통을 따진단 말인가?

사실 이런 감각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늘 ‘현실론’이라는 외피를 쓰고 등장해 가치를 추구하자는 주장을 ‘이상’으로 치부하고 실제 문제를 외면하도록 한다. 지금 우리가 힘든데 무슨 대북 지원이냐,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노조의 파업권이냐, 정규직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비정규직 철폐냐, 우리 젊은이들이 죽어 가는데 무슨 난민이냐…. 이런 구도는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만 말하는 사람들을 설명하기 위해 쉽게 음모론을 불러낸다. 종북이라서 그렇다, 귀족노조라서 그렇다, 이슬람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그렇다 등등.

물론 이런 ‘감각’은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세계관의 확산은 그 뒤에 숨은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나 당시의 기무사 주요 인물들에게나 좋은 일이며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니라는 점에서 큰 문제이다. 권력이 보는 세계관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세계관을 찾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기무사의 황당한 문건 사태는 공동체가 이 일에 성공할 때에야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수 있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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