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에는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과는 다른 기묘하게 숨어있는 장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출연자중 그 누구도 메인 MC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당연히 강호동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프로그램 안에서 강호동의 위치는 전체의 방향을 움직이고 상황을 정리하는 진행자의 자리가 아닙니다. 동생들을 이끌며 압도하고 흐름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의 1인자이긴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다른 출연자들과 함께 좌충우돌 여행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 자신의 자리를 한정시킵니다. 1박2일에서의 강호동은 메인MC가 아닌 6명의 형제들 중 장남의 모습으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을 뿐이에요.

여행을 계획하고 출연진을 이끌고, 방송 분량의 단서를 던져주며 끊임없이 상황을 만들어내고, 그 상황을 정리한 뒤에 그 안에서 각자의 캐릭터들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 1박2일의 메인MC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카메라 밖에 있는 인물인 다름 아닌 나영석 PD입니다. 근래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던 1박2일 위기의 실체는 바로 메인MC의 부재, KBS 파업참여 때문에 일어난 나영석 PD의 자리 비움이었어요. 제작진의 역량에 따라 그 내용의 질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라지만 이번 주 방송을 보고나니 요 몇 주간의 1박2일만큼 질적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방송이 또 있었나 싶더군요. 그는 PD이자 동시에 메인 MC였으니까요.

이런 차이는 1박2일의 전임 우두머리였던 이명한 CP가 담당했던 요 몇 주의 방송을 보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그 역시도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위해 수시로 카메라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 존재감이 너무 과했어요. 강한 승부사의 기질을 내보이며 출연진과의 밀고 당기기를 시도했지만 그 정도가 지나친 나머지 전체 구도를 제작진 대 출연진의 대립 모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형식의 진행이 처음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재 1박2일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렇게 제작진과 기싸움을 하며 협상과 협상을 거듭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김종민의 투입, 김C의 하차로 흐트러진 구도를 재설정하고 서로들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좀 더 시급했어요.

워낙 이명한 PD의 승부사 캐릭터가 부각되다 보니 여섯 형제들 역시도 자신들의 대표로 큰 형 강호동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각종 미션들은 틀이 꽉 정해져있는 외통수들이었고 그런 정해진 틀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강호동과 제작진의 지루한 밀고 당기기 협상뿐이었고, 그런 빡빡함을 비집고 나올 수 있을 만큼의 익숙함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승기와 이수근의 개인 능력 뽐내기가 다였죠.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갈팡질팡했던 1박2일의 초창기 시절에야 이런 포맷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1박2일 사람들에겐 좀 더 리얼하고 편안한 틀 만들어주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내용들을 뽑아낼 수 있거든요. 마치 이번 주의 복불복 대잔치처럼 말이죠.

확실하게 각각의 단계를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보상과 과제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 실행과 내용 만들기에는 한 발짝 물러나서 출연진들의 역량과 관계에 의지합니다. 활동 공간이 많아진 이들은 좀 더 편안하게 화면에 얼굴을 드러내면서 각자의 분량 찾기에 골몰하죠. 특정인물 몇 명만이 부각되었던 근래 1박2일의 내용과는 달리 이번 주 방송만큼 김종민과 MC몽이 자주, 많이 화면에 잡힌 적이 또 있었을까요? 자기들끼리 팀을 조직하고 게임을 만들면서 내용을 짜나가는 자연스러움이 내용을 주도했던 적이 있었을까요? 이런 차이는 소재와 여행 장소의 차이가 아닌 다름 아닌 현재 1박2일에 가장 적합한, 유능한 메인MC 나영석 PD의 존재감 때문이에요.

여행 프로그램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일반인과의 소통과 접점을 최고 장점으로 내세웠던 시절이 옛날이었던 것처럼 지금의 1박2일은 복불복에 집중하는 게임 버라이어티가 되고 있습니다. 준비한 꼭지들을 소화하기 어렵게 만드는 연속된 악천우와 기상악화 같은 불운, KBS의 파업 같은 불가피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멤버들끼리 친해지는,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각자의 캐릭터와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그 어느 때보다도 메인MC이자 제작자인 나영석 PD의 호흡조절과 자막, 그리고 진행능력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잘나가는 모든 프로그램이 모두 그러하듯이 1박2일은 바로 그렇게 한 사람이 빠져서는 그 맛이 나지 않는,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거든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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