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부에서 벌어졌던, 믿을 수 없던 '설'이 사실이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거기에 또 하나를 더하게 됐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11월 18일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군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돌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당시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유언비어라며 추미애 대표를 거칠게 공격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추 대표를 ‘유언비어 유포자’로 규정하고 비난했다.

조선일보 말대로 추 대표의 ‘계엄령 설’은 누구라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선일보처럼 유언비어라고 일축하고 추 대표를 비난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계엄령 설에 촛불시민들은 움츠리기보다는 더 강한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계엄령은 없었다.

그때로부터 1년 반 넘게 지난 현재, ‘설’에 그쳤던 군의 계엄령 준비가 사실로 드러났다. 국군 기무사령부가 박근혜 탄핵심판을 앞두고 위수령 발동과 계엄선포를 검토한 내무 문건이 공개된 것이다. 이 문건에는 기갑여단과 특전사 등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군 병력을 동원해 시민들을 무력 진압하는 구상이 담겨 있다.

2017년 2월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계엄령선포촉구범국민연합 주최로 열린 탄핵 기각 계엄령 선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기무사 계엄령 문건은 2017년 3월에 작성된 것이고, 그때에 소위 태극기집회라는 박사모 집회에는 계엄령을 요구하는 팻말들이 넘쳐나기도 했다. 기무사의 계엄령 계획이 단지 기무사 내부에 국한되어 진행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하는 근거이다.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기무사의 계엄령계획을 폭로한 군인권센터의 주장에 따르면 기무사는 탱크 200대, 장갑차 550대를 투입해 촛불시민을 진압하려고 했다.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특전사를 투입하려는 계획은 흡사 1980년 광주를 연상하게 한다. 만에 하나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서울 광화문광장은 평화와 개혁이 아닌 살육의 역사로 기록됐을 것이다.

과거 보안사령부에서 민간인 사찰로 인해 이름만 바꿔서 존치되어온 기무사령부는 계엄령 계획 이외에도 댓글 공작과 세월호 유가족 사찰까지 저질렀음이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이쯤 되면 기무사라는 군조직은 개혁이라는 느슨한 말이 아닌, 해체가 당연한 수준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위수령 문건 작성 참여자가 ‘기무 개혁 TF’…셀프개혁?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그 이유는 기무사 TF로 더욱 확실해졌다. 기무사는 지난 5월부터 국방부 주도로 기무사 개혁 TF를 설치해 운영해오고 있다. 그러나 6일 KBS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세월호 사찰 문건과 계엄령 검토 문건에도 참여한 군장성이 이 TF를 이끌고 있다고 한다. 검찰과 법원에 이어 기무사도 셀프 개혁으로 시민들의 눈을 속이려 한 것이다.

기무사의 개혁이 이런 수준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기무사의 정치개입이 국군역사에서 마지막이 되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지만 태스크포스 구성 인물부터 거르지 못한 국방부와 기무사가 과연 사건수사와 개혁을 제대로 해낼지는 의문이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과 계엄령 문건에 개입한 사람이 TF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기무사 셀프 개혁의 한계와 무의미한 의지를 말해준다. 기무사 개혁은 TF부터 개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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