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대한민국 축구협회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전무이사가 언론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들은 앞으로 '후안무치'라는 고사성어를 설명할 때 가장 적합한 시청각 자료로 사용될 수 있어 보인다.

1. 4년 전보다 더 뻔뻔해진 정몽규 회장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연합뉴스 자료 사진]

4년 전 브라질 월드컵에서 1990년 이태리 월드컵 3전 전패 이후 가장 처참한 실패를 맛본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두고 정몽규 회장은 대한민국 축구의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이루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대한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 감싸기에 급급했다. 처참한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홍명보 감독을 지키려 했던 대한축구협회의 '으리'는 여론의 거센 포화를 맞고 한 발 물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4년 후 대한축구협회는 '실패한 감독' 홍명보를 이번에는 행정가 자리로 모시면서 꿋꿋하게 '으리'를 지킨다. 지난 4년 동안 대한축구협회가 보여준 행보는 이미 많은 기사를 통해 설명이 되었고 축구팬들은 그 답답한 장면들을 목격하고 수많은 굴욕을 봐야만 했다. 역량이 부족한 외국인 지도자 슈틸리케를 영입한 이후 대한민국 축구는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카타르와 중국에게 패하고 최종지역예선 내내 원정에서 단 한 번의 승리를 챙기지 못하였다.

최종지역예선에서 아시아 최강이라는 위용은 온데간데 없었던 한국축구에 기대할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슈틸리케 후임으로 임명된 신태용 감독 또한 대표팀을 잘 알아왔기 때문에 명확한 처방을 내려줄 장본인이라는 기대를 뿌리치고, 최종예선 2경기에서 단 한골도 기록하지 못하는 답답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이런 와중에 9연속 월드컵 진출에 대한 찬사보다는 '진출당했다'는 비아냥과 조롱이 대다수 여론을 형성하였다.

게다가 러시아 월드컵 조 추첨에서 독일, 스웨덴, 멕시코라는 강팀들과 함께 편성되니 지역예선에서 보여준 경기력을 볼 때 축구팬들의 기대치는 더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관심도 하락은 축구협회의 잘못된 선택(슈틸리케 감독의 선임 및 경질 타이밍을 놓친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정몽규 회장은 놀라울 정도로 답답한 현실인식 수준을 보여줬다. 우선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의 굵직한 국제 정세 이슈로 인해 월드컵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킬 수 없었다는 멘트로 물타기를 시작했다. 이러면서 유소년 축구의 근본적인 문제가 축구 대표팀의 기술 발전을 더디게 한다는 느닷없는 거시적인 관점의 멘트를 던졌다. 그럼 정몽규 감독은 유소년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 개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언급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마치 축구협회 외부에 있는 사람마냥 국민들이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했던 '유체이탈' 화법으로 모든 문제를 언급하였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언급한 것처럼 월드컵 때마다 대한민국 축구가 고쳐야 할 부분은 4년마다 녹음기를 틀어놓고 재생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엄습하게 만드는 정몽규 회장의 인터뷰였다. 4년 전에는 반성이라도 했다면 이번에는 반성은커녕 모든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뻔뻔함이 업그레이드 된 모습이었다.

2. 후배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성과를 외면한 홍명보 전무이사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4년 전 브라질 월드컵의 참담한 실패 이후 그가 밟아온 대표팀의 엘리트 승진은 대한축구협회의 철저한 비호 속에 진행되었던 것임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기사가 공개되었다. 지도자 자격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협회의 철저한 관리 속에 그는 온실속의 지도자로 2012 런던 월드컵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증명해야 하는 무대인 월드컵에서 그는 민낯을 드러냈다. 상대팀에 대한 전술대처능력 부족 및 원칙 없는 선수 선발 등은 2000년대 월드컵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장면들이었다. 2002 월드컵의 성공을 처참하게 뭉개버리는 실패를 통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시계는 90년대로 되돌려졌다.

그런 실패를 제공한 장본인인 홍명보 전무이사는 인터뷰에서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 90년대의 암담했던 시절이 떠올라 괴로웠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번 월드컵에서 방송 3사 중계해설을 맡은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 등에 대한 노골적인 저격이었다. ‘선배들과 달리 월드컵에서 실패를 경험하지 못해 후배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지 못한다.' '현장에서 지도자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깊이가 부족하다'는 등의 뉘앙스와 멘트로 이들 해설위원을 비판한 것이다.

이에 대한 축구팬들의 반응은 홍명보 전무이사가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연세대와 더불어 축구협회 인맥의 양대산맥을 구축하고 있는 고려대 출신의 홍명보 전무이사와는 달리 안정환(아주대), 박지성(명지대), 이영표(건국대) 등은 이른바 축구협회의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있는 출신 대학 선수들이 아니었다. 흙속에 가려져 있던 그들은 처절한 자기계발을 통해 기회를 부여받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살린 덕분에 국민들에게 짜릿함을 선사함과 동시에 본인 커리어의 향상을 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홍명보 전무이사는 그들에게 대놓고 선을 그었다. 이른바 자신은 90년대 온갖 실패를 맛보고 이를 바탕으로 2002월드컵 성공의 핵심 주역이 된 것이고 당시 새카만 후배였던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 등은 그 성공에 무임승차했다는 논리로 포장을 한다.

이영표, 박지성, 안정환 해설위원

최종 예선 때부터 온갖 실망을 안겨준 대한민국 축구에 이번 월드컵에서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고 중계를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이들 해설위원의 선수 때 경험을 바탕으로 한 명쾌한 해설도 일정부분 공헌 지분을 가지고 있다. 만약 홍명보 전무이사의 언급대로 이들이 그저 온실 속의 화초로 키워진 존재들이었다면 팬들은 이미 중계를 외면했을 것이다.

박지성은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자리를 꿰차고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퍼거슨 감독의 인정을 받으며 레전드로 거듭 났다. 그 와중에 국가가 부르면 무릎에 물이 차오르는 고통을 감수하며 장거리 비행기를 탄 후,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 헌신하였다. 이영표 또한 네덜란드, 잉글랜드, 독일, 캐나다 리그 등을 거치며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수비수로서 자신을 포지셔닝하였다. 안정환 또한 월드컵 이탈리아 전의 골든골로 인해 애꿎게 자신의 커리어에 손해를 당했지만, 꾸준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대한민국 대표팀 공격수 역사상 가장 탁월한 결정력을 선보였다.

현역시절의 홍명보의 업적 또한 폄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게 따르는 부정적인 시선도 늘 존재한다. 홍명보 전무이사가 선수시절 및 지도자 시절 팬들과 타 축구인들에게 모범사례로 기억될만한 행보를 지속해왔다면 어제 인터뷰의 작심 비판도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홍명보의 인터뷰는 꼰대 논란을 불러왔다.

대한축구협회의 핵심 요직을 꿰차고 있는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전무이사의 인터뷰를 보면서 느낀 점은 여전히 대한축구협회는 국민들의 수준을 무시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프레임 속에 갇혀 벽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홍명보 전무이사가 언급한 벽은 수십 년 동안 축구협회의 기득권을 놓지 않고 있는 무리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자신 또한 그 무리에 속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었다.

그들의 '후안무치'를 보면서 여전히 대한축구협회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을 통해 살아난 국민들의 희망도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될 것임이 명백해졌음을 '증명'해준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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