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지만 실제로 도전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길을 과감하게 도전하려 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하게 확정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도전만으로도 값지고 대단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누구 이야기냐고요? 바로 스피드 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승훈(한국체대) 선수 이야기입니다.

지난 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예상하지 못한 역주로 1만m에서 금메달, 5천m에서 은메달을 따냈던 '괴력의 사나이' 이승훈이 본래 주종목이었던 쇼트트랙에도 다시 도전장을 던지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재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을 동시에 소화하고 있는 이승훈은 내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리는 전지훈련 성과를 토대로 쇼트트랙과 병행해서 본격적으로 도전할 지를 판단한다고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성사되고 잘 유지돼 4년 뒤 열리는 올림픽에서 나란히 입상까지 성공한다면 이는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하지만 입상 여부를 떠나 도전 자체만으로도 세계 빙상계에 꽤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사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또는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쇼트트랙으로 전향한 선수는 많습니다. 미국 빙속계의 최강자로 불리는 샤니 데이비스는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흑인 최초로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뽑힌 바 있었으며, 여자 500m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역시 스케이트를 처음 탔을 때 종목은 쇼트트랙이었습니다. 링크 크기가 다를 뿐 기본적으로 얼음 위에 스케이팅을 해서 가장 빨리, 가장 먼저 들어오는 특성이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에 종목 간에 전향하는 선수가 많은 건 사실입니다.

▲ 이승훈 ⓒ연합뉴스
하지만 두 종목은 엄연히 큰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쇼트트랙은 직선 주로가 짧고 반대로 곡선 주로가 길다 보니 코너를 돌 때의 기술이 중요하고 그래서 스케이트화도 곡선에 잘 적응하도록 제작됩니다. 반면 스피드 스케이팅은 직선 주로가 길어서 스케이트화도 그에 맞게 일자로 제작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경기 승부를 가르는 규칙 자체도 기록경기인 스피드 스케이팅과 4-5명의 선수가 나란히 나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선수를 가리는 쇼트트랙이 서로 다른 만큼 그에 맞는 훈련법이나 전략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렇다 보니 동시에 나란히 도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다름없었으며, 전향한 선수들 역시 크게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승훈은 '무모한 도전'과 다름없는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 동시 도전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빙상계에 있던 통념 자체를 깨는 사실상 첫 사례를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선수로 여전히 안현수를 꼽을 만큼 뼛속깊이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자부심이 남아있는데다 올림픽 금메달의 꿈은 이뤘어도 스케이트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주된 종목이었던 쇼트트랙에서는 아직 금메달을 따내지 못한 아쉬움을 털겠다는 목표 의식도 갖고 있다보니 내친김에 '동시 석권'이라는 엄청난 기록에도 도전장을 던지려 하고 있습니다. 쇼트트랙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해 단 7개월 만에 세계 챔피언에 오를 만큼 탁월한 운동 신경을 갖고 있는 이승훈은 꾸준한 노력이 이어지면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 모험과 같은 이 도전을 해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 도전이 단순히 말로만 끝날 것 같다면 그저 넘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땀방울을 흘려가면서 의지를 보이는 것은 그의 도전에 박수를 쳐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올림픽 후에도 약 한 달 동안만 각종 행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승훈은 곧바로 마음을 다 잡고 조용하게 훈련에 임하면서 선수로서의 본분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자칫 세계챔피언에 올라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텐데도 운동에만 전념하며 조용히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하나의 큰 꿈을 실천하기 위한 의지로도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묵묵하게 과감한 도전을 준비하는 모습 자체가 뭔가 해 볼 만 할 것 같았고, 듬직함이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물론 동시 도전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만약 동시에 도전한다 할지라도 대회 출전, 훈련 일정 등으로 제대로 운동을 소화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다소 걱정이 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스피드 스케이팅이든 쇼트트랙이든 두 종목이 서로를 보완하는 종목이라는 점에서 도전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고, 훈련 일정만 잘 짠다면 성공 가능성도 그리 없는 건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이승훈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도 스피드 스케이팅 훈련을 주로 하면서 쇼트트랙에도 소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쇼트트랙에서 기본기를 충실히 익혀 스피드 스케이팅에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활주 능력과 코너링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스피드 선수로서도 빨리 적응할 수 있고 특히 순발력과 곡선 주로에서 쇼트트랙 훈련은 스피드 스케이팅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덕에 이미 쇼트트랙이 몸에 베여있던 이승훈은 이를 적극 잘 활용하여 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두 종목을 동시에 소화한다면 그만큼 훈련량이나 방법에서 달라지는 면이 있겠지만 운동에만 전념할 줄 아는 이승훈이라면, 또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에서 세계 챔피언에 올라봤다면 '동시 도전'이 충분히 해볼 만 한 도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올림픽까지도 아직 3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고, 그 기간동안 꾸준하게 좋은 기량을 보여줄 지도 장담하지 못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둘 다 도전하는 것보다 차라리 잘 하는 종목에만 올인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안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보다 의지를 나타내며 도전해 보겠다는 자세만으로도 우리는 그의 도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보다 충분히 가치 있다고 여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떻게 도전했든지 간에 세계 챔피언을 지키기 위해, 또 자신의 존재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빠른 시간에 마음을 잡고 새 도전을 준비하는 자세만으로도 우리는 이승훈을 대단하다고 여겨야 할 것입니다. 4년 뒤 러시아 소치에서 또 한 번 영광을 재현하려는 이승훈의 도전을 계속 해서 지켜보고 또 응원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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