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네덜란드에서 열린 U-20(20세 이하)월드컵 조별 예선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렸던 백지훈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잘 생긴 외모에 나이답지 않은 대담한 플레이, 지능적인 패싱 능력은 향후 한국 축구를 이끌 확실한 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였다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백지훈은 이후 성인 대표팀에도 자주 이름을 올리며 마침내 월드컵 대표팀(2006년 독일월드컵) 엔트리에도 발탁되는 쾌거를 맛봤습니다. 비록 월드컵에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지만 아직 젊었던 백지훈에게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백지훈의 소식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갑자기 팀을 옮긴 뒤에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슬럼프를 겪으면서 시련은 닥쳤습니다. 당연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없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서서히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또 한 명의 축구 천재로 불렸던 선수가 추락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2010년 올해 보란듯이 일어섰습니다. 넓은 시야와 날카로운 전진 패스 능력, 탁월한 개인기 등이 살아나면서 백지훈의 플레이가 서서히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윤성효 감독으로 소속팀의 사령탑이 바뀐 뒤 다시 '중원사령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백지훈은 결국 그토록 바랐던 대표팀에도 다시 이름을 올리는데까지 성공하면서 최고의 한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팀 성적이 다소 처져있어도 최근 그의 상승세 덕에 다시 살아나고 있기에 백지훈은 그야말로 '자신을 위한, 또 팀을 위한 한 해'를 장식하기 위해 최근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지훈의 최근 상승세가 K-리그 판도 자체를 뒤흔들 수 있을 만큼 놀랍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17일 대구FC와의 리그 13라운드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한 뒤, 21일 수원시청과의 FA컵 16강에서 두 골로 8강행을 이끌었던 백지훈은 7일 저녁, 인천과의 리그 16라운드 경기에서 또다시 1골을 터트리며 최근 한달새 4골 2도움의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백지훈의 공격포인트가 모두 팀 승리로도 이어진 것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예전의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하면서 경기 감각을 회복한 것이 고무적이었습니다.

▲ 백지훈 ⓒ연합뉴스
백지훈의 최대 강점은 중원 사령관으로서 창의적인 패스 공급과 공간 침투를 능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경기를 침착하게 운영할 줄 알면서 패스의 강약 조절이 잘 이뤄져 날카로운 공격으로 연결되는 모습은 백지훈의 전매특허와도 같았습니다. 그동안 이런 모습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지만 최근 '패스 축구'를 추구하는 윤성효 감독 부임 이후에 이것이 완전히 살아나면서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과 더불어 과감한 중거리 슈팅, 기회가 있을 때마다 터트리는 날카로운 슈팅이 잇달아 골망을 가르며 공격력에서 어느 것 하나 크게 흠잡을 것 없이 전체적으로 완전히 살아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플레이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이렇게 충실히 해내다보니 소속팀 수원 역시 더욱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었고 최근 무서운 상승세를 탈 수 있었습니다.

살아난 백지훈에 대해 '페스 축구'를 신봉하는 조광래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 역시 가만히 있을 리 없었습니다. 백지훈의 기량을 높이 평가하면서 대표팀에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는 그를 과감하게 대표팀에 발탁시켰습니다. 기술보다 체력적으로 많이 뛰는 선수를 중원에 배치시켰던 과거 대표팀 중앙 미드필더들과 다르게 정교한 패스를 구사할 수 있고, 순발력과 날카로운 경기 운영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선수들을 선호하는 조광래 감독의 스타일상 이에 적합한 선수로 백지훈이 낙점됐고, 그에게 강한 기대감을 나타내기까지 했습니다.

이미 '기술 축구', '스페인식 패스 축구'를 구사하겠다는 뜻을 조광래 감독이 밝힌 만큼 백지훈이 현재의 상승세를 대표팀에서도 이어간다면 단순한 백업 자원이 아니라 핵심 자원으로까지 거듭날 가능성도 높습니다. 기술과 스피드와 함께 약점으로 지적된 피지컬에서도 정상급 수준으로 끌어올라 어느 정도 경쟁력이 갖춰진 만큼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정교한 패스 플레이와 빠른 공-수 전환에 맞게 제대로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다면 그동안 대표팀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경쟁자들과도 충분히 주전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강력한 중거리 슈팅이 좀 더 가다듬어진다면 다양한 공격 옵션으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어 조광래 감독이 이를 놓치지 않고 주력 자원으로도 활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복귀한 선수들이 늘 그렇듯 백지훈이 성공적으로 대표팀에 안착하려면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팀 플레이, 그리고 여전히 건재한 월드컵 대표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표팀 자체가 새로운 감독 아래 새로운 스타일로 새출발하는 가운데서 처음에 제대로 눈도장을 받는다면 기량 자체만을 놓고 봤을 때 꾸준하게 롱런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이번에 얻은 기회를 정말로 잘 살려내면서 4년동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아쉬움을 씻고 '조광래호의 황태자'로 거듭나는 백지훈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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