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원장 후보로 40여명이 거론되는 상황 속에서 자유한국당이 비대위원장을 국민공모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다.

일단 40여명의 면면 자체가 기상천외하다.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 김황식 황교안 전 국무총리, 박관용 김형오 정의화 전 국회의장까지는 그렇다 쳐도 김종인 전 경제수석은 너무했다는 느낌이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맡은 것은 파격이라 쳐도, 다시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하라는 것은 거의 모욕에 가까운 제안이 아닐까?

황당한 건 여기까지는 오히려 양반이라는 거다. 팔순이 넘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는 “불쾌하다”고 했고,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이름을 빼달라”고 했으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농담하는 거냐”고 했다고 한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나 도올 김용옥 교수에 이르면 비대위원장을 구하는 게 맞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가 된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40여명의 추천 인사 명단을 언급하며 “본인 의사 확인이 안 된 구상 단계”라며 “후보군이 압축되면 그때 위원장직 수락 의사를 물어 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중구난방의 인사들 중에 이번 주말까지 5~6명의 후보를 확정해 다시 의사를 확인하겠다는 거다. 그때 가서도 한다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행태는 홍준표 전 대표의 서울시장 후보 영입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홍준표 전 대표도 이석연 전 법제처장, 홍정욱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을 언급하며 영입에 공을 들이는 시늉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 때문에 결국 ‘올드보이’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출마라는 모양 빠지는 그림이 완성되고야 말았다. 자유한국당이 이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인 것은 교훈을 얻지 못한 때문일까?

얼마나 인물이 없으면 이런 식이겠냐는 진단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보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는 해석이 나오는 게 더 문제이다. 홍준표 전 대표의 서울시장 후보 영입 때도 사실은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바 있다. 홍준표 전 대표가 지방선거 이후에도 당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항마를 키우지 않겠다는 의도로 서울시장 선거를 사보타주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김문수 전 지사가 출마하면서 이와 같은 해석은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닌 게 돼버렸다. 그러나 비슷한 얘기가 또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말하는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과연 구성을 완료할 수 있는 것인가? 친박계의 사생결단과 상임위원장 인선 및 상임위 배분을 결정하는 원구성 협상이 소용돌이치는 상황만 넘기면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국면을 통과해 연말이나 다음해 전당대회까지 사실상 ‘김성태 체제’로 어영부영 갈 가능성도 있다.

비대위원장을 ‘모셔 오는’데 천신만고 끝에 성공하더라도 그 결과는 신통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비대위원장을 맡는데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김병준 교수이다. 김병준 교수는 기자들의 물음에 비대위원장을 맡을 수도 있지만 자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바 있다. 지금의 국면이 이어지면 실제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아서 돌고 돌아 김병준 교수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소모되는 김병준 카드가 ‘혁신비대위’의 이름에 어울리는 것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미 지난 정권의 국무총리 내정 소동에서 이미 본 광경을 다시 보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때도 김병준 교수 카드는 국무총리가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 애매한 상태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런 예로 비추어보면 잘해봐야 허수아비 비대위원장이다.

이게 보여주는 바는 무엇일까? 친박계는 비대위 구성이 아닌 조기전당대회를 요구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가 중도사퇴 했으니만큼 임기 1년짜리 대표를 뽑자는 건 의도가 뻔하다. 새로 뽑는 대표가 2020년 총선을 앞둔 공천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친박계는 또 ‘혁신비대위’가 이른바 복당파 일색으로 구성돼 불공평한 처사로 일관할 거라는 우려 역시 내놓고 있다. 결국 당내 갈등의 본질이 다음 총선의 공천 문제를 염두에 둔 거라는 사실을 실토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공천 문제는 비대위원장이 갖는 실질적 ‘힘’과도 연계된다. 김성태 원내대표 등이 그린다는 ‘김종인 모델’은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에 관한 거의 전권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도록 문재인 당시 대표가 정치적으로 보장한 게 비결이다. 그런데 현재 논의 중인 혁신비대위에게는 여러 조건상 그런 권한이 주어질 수 없다. 강력한 대권주자의 영향력을 더한 공천권을 수단으로 하는 게 아니면 인적청산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혁신비대위’의 권한과 역할은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적당히 혁신의 시늉을 하고 당권경쟁 구도로 넘어가는 수순이다.

이러니 보수인사들 사이에서도 차라리 갈라서라거나 해산하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자유한국당이 사실상 공중분해 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바른미래당을 포함하는 정계개편이기 때문이다.

보수정치의 제대로 된 미래를 찾는 상당 부분의 책임은 보수정치의 몫이겠지만, 그래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런 상태로는 입법은 커녕 원구성도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원구성 논의는 사실상 정지된 상태고 개헌연대니 개혁연대니 하는 프레임 싸움만 계속되고 있다.

원구성 협상은 양당 중심으로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이 유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내홍이 계속되는 상태에선 김성태 원내지도부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의 한계가 명확하다. 그러니 이른바 친박계와 복당파가 최소한 국회를 가동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대승적 합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적어도 관례 수준까지는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선제적인 행동이 있어야 보수정치를 향한 국민들의 신뢰도 복구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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