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를 축구 영웅이라고 불렀습니다. 뛰어난 발재간에 가공할 만 한 슈팅 능력, 그리고 시대를 앞서나간 패싱플레이까지...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그는 당대 최고의 축구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스타답지 않은 잇따른 구설수에 그는 이후 '영웅 답지 않은 영웅'으로 살아왔고, 한때는 죽을 고비도 넘겨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보란듯이 감독으로서 당당하게 팬들 앞에 돌아왔고 온갖 잡음 속에서도 조국을 모처럼 수준 높은 공격 축구를 구사하는 팀으로 만들어내면서 나름대로 월드컵 8강까지 오르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비록 또다시 논란거리를 만들어내며 감독직에서 물러나야만 했지만 많은 팬들은 그가 다시 감독직으로 나서 화려한 부활에 성공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덥수룩한 턱수염에 작은 체구가 유독 돋보였던 영원한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그 주인공입니다.

2년 가까이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맡았던 마라도나 감독이 '마라도나답게' 감독직을 내놓았습니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가 나를 배신했다"면서 또다른 논란거리를 만든 채 말입니다. 당연히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일방적으로 자기만의 주장을 펼친 마라도나 감독을 가만히 놔둘리 없었고 혹독한 비난을 쏟아내며 그를 만장일치로 감독직 퇴진을 의결했습니다. 월드컵에서 당당했던 모습,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팬들의 성원과는 전혀 딴판인 결과가 나왔지만 어떻게 보면 평소의 마라도나다운 마무리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 마라도나 감독의 다양한 표정들. 때로는 서 있기도 하고, 때로는 강렬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선수들을 불러 다독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진-김지한)
사실 마라도나는 감독과는 크게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간간이 축구장을 찾아 선수들을 위해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있었지만 한동안 워낙 심각한 개인적 구설수가 있었고 축구와 인연을 끊은 적도 있었기에 세계 축구의 흐름에 잘 맞아떨어지는 전술을 구사할 지에 대해 의문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뚜렷한 축구 철학, 리더십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감독의 기본적인 덕목조차 없는 것 아닌가하며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유일한 단점이 마라도나 감독이라는 말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라도나 감독은 의외로, 아니 어쩌면 결정적인 순간에 선수 시절 보여줬던 모습만큼 잠재돼 있던 능력을 월드컵 본선에서 발산해 내면서 주목받았습니다. 공격수를 대거 포함시킨 그의 기이한 엔트리 구성은 나름대로 효과를 발휘하면서 10골을 넣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 10골은 남아공월드컵 자체가 '실리 축구', '이기는 축구'에만 집중돼 있던 전반적인 트렌드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8강전에서 독일에 대패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 4경기에서 보여준 아르헨티나 축구는 분명히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습니다. 자신이 키워낸 선수들을 통해 마라도나 감독은 부활할 가능성을 보여줬고, 다시 많은 팬들의 영웅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친형같은 리더십'은 월드컵 기간 내내 주목받았습니다. 선수들과 어울리면서 축구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냈고, 경기 전후에는 선수들 한명한명을 일일이 껴안으며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경기 중에도 내내 서서 지켜보며 박수 치고 때로는 거칠게 항의하기도 하는 등 뛰지만 않을 뿐 마치 그라운드의 주장 같은 면모를 보여줘 '선수와 하나된'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실제로 한국과 경기를 벌였을 때 그를 경기장에서 봤던 저는 쉼없이 열정적으로 선수들을 지휘하는 마라도나 감독의 모습을 보며 '영웅답다'는 생각이 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비교적 담담하게 경기를 지켜봤던 허정무 감독과 다르게 마라도나 감독은 시종일관 자신이 있어야 할 라인 안에서 쉴 새 없이 제스처를 취하고 큰 소리를 질러 강한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저마다 감독들의 스타일이 있다고 하지만 마라도나 감독의 열정적인 모습은 매우 색다르게 느껴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랬던 그가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는 꽤 많은 자극제가 됐던 것 같고, 선수들은 신명나는 플레이를 선보이면서 최근 월드컵에서 좋지 않았던 내용들을 훌훌 털고 모처럼 우승후보다운 면모를 보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다소 불명예스럽게 퇴진된 마라도나 감독이었지만 그를 직접 봤던 제 입장에서는 그 열성적인 제스처 하나하나를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았고, 그래서 그의 퇴진 소식을 듣고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주류가 될 수 있음에도 비주류의 길을 택해 왔던 그를 어쩌면 당분간은 축구계에서 볼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팬들이 있기에 언젠가는 어떻게든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높습니다. 또다시 어떤 팀에서든지 감독을 맡아서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그때는 진심으로 감독으로서도 영웅에 오를 수 있는 면모를 보여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 축구 영웅을 그래도 가까이에서나마 지켜본 바가 있어 이렇게 글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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