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하나 내겠다. 다음 5개 기사의 공통점은? (아는대로 답해 보라.)

1.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 전패를 기록한 북한 축구 대표팀의 김정훈 감독이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의 믿음을 저버린 행위'를 저지른 죄로 강제노역형을 선고받았다고 영국 대중지 '더선'이 1일 보도했다... 운운.

2. 줘따페이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연구원과 허칭 저장대 예술대학 교수 등 80여명은 20일 '유토피아'란 웹사이트에 발표한 글에서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 한국인들의 분노가 중국으로 쏟아지고 있다'며 '중국이 책임을 다하는 대국 역할'을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운운.

3. 지난 4월 5일 경기도 과천 지식경제부 6층 대회의실. 최경환 장관을 비롯한 국장급 이상 간부 전원과 정보통신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과장급 등 50여명이 아이폰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도청 시연회를 열었는데, 도청 위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돼 청와대 지급계획이 백지화됐다... 운운.

4. 태국 당국이 억류 중인 북한 수송기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인 대포동 2호의 부품들이 조립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됐다고 로이터 통신이 16일 보도했다. 대포동 2호 미사일 부품들은 화물기에서 발견된 40t 분량의 무기들 가운데서 발견됐다... 운운.

5. MBC 드라마 ‘대장금'에 출연했던 탤런트 양미경(48)씨가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운운,

눈 밝은 분들은 대번에 답을 알아 맞히셨을 게다. 그렇다. 상기한 5개 기사의 공통점은 우선 죄다 사실과 동떨어진 오보라는 것, 그리고 대부분 <조선일보> 단독기사라는 거다.

▲ '김정훈 강제노역설'을 가장 먼저 지면에 올린 2010년 7월 28일자 <조선> 만물상 칼럼

첫번째 '김정훈 북한축구팀 감독의 강제노역설'은 <조선>이 7월 28일자 '만물상' 칼럼 「북한 축구팀 사상비판」에서 자유아시아방송을 인용해 '카더라' 형식으로 토스한 것을 '엘로우저널리즘'의 선구 <더 선>이 받아서 스파이크한 것이다. 여유 있으신 분들은 <조선> 자매지 <스포츠조선>에 올려져있는 '김정훈 강제노역설 사실무근'(08.03) 기사도 마저 찾아 읽어보시라.

두번째로 소개한 '중국 지식인들의 북한 비판설'은 2010년 5월 21일자 <조선일보> A6면에 게재된 「"中, 과감한 조치로 '북한의 인질'에서 벗어나라" 중국내 진보적 지식인들 촉구」기사에서 비롯된 내용이다. 이후 중국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소속 줘따페이 연구원이 "완전 날조"라며 강력 항의하자, <조선일보>는 26일 '바로 잡습니다' 코너(A2)를 통해 정정기사를 내보냈다.

정부 시연회 결과 애플사의 '아이폰'이 도청 가능하다는 세번째 글은 <조선일보>가 「스마트폰 도청 위험」이란 제목을 달아 지난 5월 20일자 1면톱으로 보도한 단독기사다. 그러나 당시 정부시연회에서 도청 사실이 드러난 스마트폰은 '아이폰'이 아니라 삼성전자의 옴니아2였다. 애플사의 항의 직후 <조선일보>는 '아이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름만 바꿔 기사를 수정했다.

네번째로 소개한 글 역시 <조선일보>가 2009년 12월 17일자 1면 톱으로 큼지막하게 보도한「태국 억류 北 수송기 "대포동 2호 부품 나왔다"」기사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조선일보> 보도 직후 태국 정부 대변인은 "태국에 억류된 북한발 무기 수송기에서 대포동 2호 미사일 부품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선일보>가 이에 대해 정정보도를 했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마지막으로,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탤런트 양미경 자살설'은 <조선일보> 온라인판인 <조선닷컴>이 2009년 12월 17일 단독으로 내보낸 '오보 오브 오보' 기사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가수 양수경씨의 동생 고 양미경씨를 탤런트 양미경으로 착각한 케이스. 파문이 커지자 <조선닷컴>은 홈페이지에 '양미경씨 관련보도는 사실무근'임을 밝히고,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

자! 어떤가. <조선일보>의 작문실력이? 신문은 '사실'로 말하고 기사는 '정확'해야 한다는 세간의 인식을 가뿐히 즈려밟고 오직 소설가들에게만 허락된 픽션과 환타지의 신천신지까지 거침없이 내닫는 <조선일보>의 창작열이 이 정도다, 존경스럽다 못해 욕지기가 솟구치지 아니한가. 보는 이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조선>의 걸작 콜렉션은 사실 이것들 말고도 많다.

김정일 방중 한 달 전에 작성한 사설「미묘한 시기에 이뤄지는 김정일 중국 방문」(04.02)을 비롯, 신문의 상상력을 만화의 경지로 끌어올린 '北공작원 13명, 반잠수정 타고 공격'(04.20, A4)과 '인간어뢰'(04.22, A1), 그리고 美보안전문가들마저 고개를 내저은 '사이버테러 북한 배후설'(2009.07.11, A1) 등에 이르기까지, '팩트'를 거세시킨 <조선일보>의 소설들은 이 모양 차고 넘친다.

이쯤에서 문제 하나 더. 창간기념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신문은?

"이런 기본정신 아래 우리가 간단없이 채찍질해야 하는 것은 정확성이며 공정성이고 균형감각이며 정직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성이다. 신문의 책임성은 이 시대적 상황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 우리는 방대한 ‘사이버 언론 ’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신문이 갖는 책임성의 상대적 의미를 우리는 통감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보도의 책임성 정확성을 신속성위에 두려는 노력을 배가할 것이며 우리가 그 책임성에 위배되는 일을 했을 때 엄중한 사회적 징벌을 피해 갈 수 없다는 자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답은 뻔하니까. <조선일보> 아니면 어느 누가 이렇듯 당당하고 이렇듯 뻔뻔하게 '언론의 정도'에 대해 남말 하듯 떠들어댈 수 있겠는가(참조.「조선일보의 正道」, 2002.03.05). '보도의 정확성'과 '신문의 책임성'은 이 땅에서 이미 폐기처분된지 오래다. 일상화 되다시피 한 <조선일보>의 '오보 퍼레이드'가 그 증거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조선일보>는 창간 82주년 기념사설에서 "보도의 책임성 정확성을 위배했을 때 엄중한 사회적 징벌을 피해갈 수 없다는 자각을 하가에 이르렀노라"고 설레발 떨었지만, 그러나 <조선일보>는 오늘도 여전히 대한민국 여론을 장악한 '태평로 보스'로 군림하고 계시다. 잘못된 신문지에 '사회적 징벌'을 가할 주체가 부재한 탓이다. <조선일보>가 거짓에 용감한 것도 그 때문 아닐까? (201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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