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자유한국당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김성태 원내대표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우리 입장도 통 크게 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소선거구제의 피해자가 되면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입장 변화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을 연계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지난 6월 13일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왼쪽)와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받아들고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전 김성태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헌 논의가 이뤄지면 국가 권력 구조 개편과 함께 선거구제 개편, 권력구조 혁신 이 세 가지 문제는 필연적으로 맞물릴 수밖에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서 기존의 입장에 함몰되고 매몰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개헌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우리 입장도 통 크게 변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선거법 개정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여러 논의 중에서도 가장 핵심으로 손꼽힌 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해 9월 정동영 당시 국민의당 의원의 주최로 진행된 선거제도 개혁 민정연대 추진 간담회에도 자유한국당은 홀로 참여하지 않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외에도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 등이 선거제도 개혁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큰 흐름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쏠리는 분위기다. 앞서 지난 2016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권역별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새로운 선거제도 개혁방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반대한 이유를 특별히 밝힌 적은 없지만, 정치권에서는 '기득권 지키기'로 볼 구석이 많았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친박세력의 지역 기반인 대구·경북 지역을 독점하려는 의도로 보는 견해가 다수였다. 실제로 비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기류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소선거구제의 '피해자'가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자유한국당은 서울시의회 선거에서 25.24%의 지지를 얻었지만 의석은 5.45%를 차지하는 데 그쳤고, 부산시의회에서도 36.73%의 지지를 얻고도 의석점유율은 12.77%에 그쳤다.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자유한국당이 소선거구제의 피해자가 된 지금이 선거제도 개혁의 적기라는 목소리가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장벽 없는 정치시장을 위하여' 토론회에서 박주현 의원은 "(한국당의 지방선거 패배로) 자유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찬성하고 나설 기회가 생겼다"고 분석했고,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도 "한국당이 승자독식 정치구조의 수혜자에서 피해자로 바뀐 상태다. 이런 상태로 다음 총선을 치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는 이 시점이 선거제도 개혁의 좋은 시점일 수 있다"고 봤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미디어스와 전화통화에서 "자유한국당이 전국 평균 25%를 넘게 득표했는데, 표보다 훨씬 적은 의석을 가져간 상황"이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특히 수도권과 충청권 의원들은 이때까지 소선거구제의 이득을 봐왔다면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도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 공동대표는 "이게 총선에서도 나타난다면 당의 존립이 어렵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승수 공동대표는 "자유한국당이 선택을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만 소선거구제의 이익을 봤는데, 앞으로도 이런 식이라면 자유한국당은 지역정당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전국정당으로 승부를 보려면 선거제도를 개혁하고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혁신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라고 밝혔다. 하 공동대표는 "친박·비박 논쟁도 있지만, TK지역정당으로 전락할 거냐, 제대로 된 전국정당으로 자리매김 할 거냐,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하승수 공동대표는 김성태 원내대표가 개헌을 선거제도 개혁과 연계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하 공동대표는 "개헌을 연계하는 것보다 선거제도는 선거제도 대로 합의를 보고, 개헌은 개헌 대로 추진해야 한다"며 "현 시점에서 연내 개헌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거제도 개혁을 연내에 끝내고 개헌은 시간을 조금 가지고 논의할 수 있는 국회 공론화 기구를 만드는 등의 합리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승수 공동대표는 "개헌과 연계하지 않고 선거제도 개혁을 말한다면 민주당이 거부할 명분이 없다. 그러나 사실상 자유한국당이 6월 개헌을 막아선 입장인 만큼 개헌을 연계하면 민주당으로선 선거제도 개혁을 거부할 명분이 생긴다. 개헌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확실히 구분하자는 것"이라며 "선 선거제도 개혁, 후 개헌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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