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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루시!’- 보편 속에 숨겨진 특별한 이야기, 단 한번의 포옹이 불러온 변화[미디어비평] 톺아보기
meditator | 승인 2018.07.01 10:55

‘혼밥'이 어느덧 특별할 것 없는 문화가 되었다. 지난 2016년, 한 이동통신 회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9.6%가 혼밥을 경험했다고 할 정도로 혼밥은 더 이상 생소한 것이 아닌 세상이다. 이 응답자 중 66.8%가 일주일에 10회 이상 홀로 밥을 먹는다고 응답했다. '한국사회동향 2015'에 따르면 15세 이상 응답자의 55.8%가 홀로 여가 시간을 보낸다고 답을 했다. 지난 2007년에 비해 12%가 증가했다.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나홀로족'인 사회에서 어쩌면 더는 이상할 것이 없는 현상이다(2015 기준). 

하지만 그저 사회적인 현상뿐일까? 자발적이거나 불가피한 나홀로족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사회에서 격리한 '자폐’ 나홀로족이라면? 6월 28일 개봉한 <오 루시!>는 사회관계망에서 방출된 '히도리모노(ひとりもの, 독신자, 싱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히도리모노, 사회인이지만 히키코모리

영화 <오 루시!> 스틸 이미지

중년 여성 세츠코는 오늘도 변함없이 출근을 하기 위해 지하철역에 섰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지하철, 그 순간 그의 뒤편에 있던 남자가 그녀의 귀에 이별인사를 남긴 채 달려오는 지하철에 뛰어든다. 놀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그런데 정작 가장 충격을 받았어야 할 세츠코는 요동이 없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출근을 하여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워 문다. 

그런 그녀를 유일하게 걱정해 주는 나이 지긋한 동료 여직원. 하지만 세츠코는 친절하게 그녀가 건넨 과자를 아래 서랍에 던져 넣는다. 거기엔 그녀가 준 것으로 보이는 과자 등 군것질 거리가 가득 차 있다. 세츠코는 '히도리모노'이다. 언니는 있지만 일찍이 그녀가 사랑했던 이와 결혼하는 바람에 '의절'한 거나 마찬가지고,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회사 내 그 누구와도 '친'하지 않다. 콜록거리는 그녀에게 담배 좀 끊으라고 상사가 잔소리를 하고, 앞자리의 나이 지긋한 동료 여직원이 친절을 베풀어도 그녀의 표정엔 변함이 없다. 

사회 내에 속해있지만,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은 세츠코는 '히키코모리'의 사회적 유형에 가깝다. 그나마 집밖에서 그녀는 멀쩡해 보인다. 쌓인 고지서를 발로 밀어 넣고 들어선 그녀의 집은 옷가지며 물건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이는 그녀의 삶이 제대로 순환되고 있지 않음을 한눈에 알려준다.

그런 그녀에게 곰살궂게 다가온 사람이 있다. 바로 언니의 딸인 조카 미카. 비싼 돈을 내고 등록한 학원에 대신 다녀달라는 그녀의 응석어린 청을 냉정한 세츠코가 거절하지 못한다. 미카 대신 간 영어학원, 하지만 학원이라기엔 야시시한 분위기의 룸에서 진행되는 1;1 맞춤 수업에 세츠코가 당혹스러워 하는 것도 잠시, 그녀에게 '루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금발 가발을 안기며 '찐한 포옹'으로 수업을 시작한 강사 '조~온'에게 그만 그녀는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다음 날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간 학원에서 존이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은 세츠코. 그런데 실망해서 학원을 나오던 그녀가 목격한 건 조카 미카와 사랑에 빠져 함께 차를 타고 떠나는 존. 그러나 세츠코는 포기하지 않는다. 중년여성 세츠코를 일본에 남기고, '존의 제자 루시'가 되어 선생님 존을 찾아 미국으로 떠난다. 미카를 찾는 그녀의 언니와 함께. 

두 자매의 로드 무비인가 싶던 영화는 쉽게 선생 존을 만난다. 이젠 미카도 떠나고 돈도 없는 백수가 된 존을 만나고, 다시 미카를 찾아 길을 떠난다. 오지랖이라는 언니의 지청구에도 아랑곳없이 존의 밀린 월세를 내주고 자동차도 빌리고, 그를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세츠코, 아니 루시가 바라는 건 존이 해주었던 예의 포옹, 그리고 그가 미카를 위해 했듯 '사랑 애(愛)'자를 서슴없이 새기는 맹목적인 사랑이다. 

세츠코와 루시, 냉담과 맹목 사이

영화 <오 루시!> 스틸 이미지

세츠코는 대번에 그녀의 나이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꾸미지도 않고, 딱딱한 사무원 복장을 박제라도 된 양 입고 다니는 여성이다. 그녀는 옆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벽을 두거나, 나이든 직원의 환송회에서 동료 직원들의 험담을 폭로하며 위장된 사회관계에 대한 산통을 깨는 식의 '일방적이고 악의적인 관계'밖에 맺지 못한다. 혈육이라고 다를까. 오랜만에 온 언니는 집에 발도 못들이게 하고, 실연의 상처를 입은 조카에게 역시나 악담을 퍼부어 사고를 유발하고야 만다. 

도대체 세상 그 누구와도 상종하기 힘든 그녀. 그런 그녀가 수업인지 치근거림인지 알 길이 모호한 존의 수업 중 '포옹' 한 번에 달라진다. 그를 찾아 미국으로 달려가고, 그에게 맹목적으로 사랑을 갈구하다 못해 추근거릴 정도로 변했다. 존이 준 노란 가발을 쓰고, 그가 발음 교정을 위해 물려준 노란 탁구공을 입에 물고, 길게 끄는 발음으로 느끼하게 '조~온'하며 변신하기 시작한 세츠코. 거기엔 '히키코모리'에 가까운, 고독이 몸부림치는 그녀의 삶이 있다. 

지난 2009년 일본의 명문대학 화장실에는 '화장실 내에서의 식사를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붙었다. 혼자서 식사하는 걸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하는 학생들이 홀로 화장실에서 식사를 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한, 양 옆으로 칸막이가 쳐진 일본의 일인 밥집. 이 나홀로족의 문화에는 '나 홀로 식사를 하는 건 친구가 없기 때문이고, 친구가 없는 건 내가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식사를 하면 내가 매력이 없다고 주변에서 평가할 것이 두렵다'는 '런치 메이트 증후군'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담겨 있다. 

영화 <오 루시!> 스틸 이미지

80년대 중반 이후 서구 사회에서 시작된 '개인화 현상'은 2000년대 들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도 사회적 현상으로 두드러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 개인화의 현상은 아시아 지역에 오면서 지역적 특징이 더해진다. 즉,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일본이나 한국에서 그런 집단주의 문화에 반발하여 나홀로 문화를 선택한 '선택적 나홀로족'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세츠코는, 사실은 동료 직원들이 관종이라거나 눈치가 없다고 손가락질 했지만, 그래도 퇴직을 앞두고 한껏 칭송해 마지않던 나이든 동료 직원에게 그런 집단의 진실을 폭로하면서 집단주의의 위선을 한껏 까발린다. 언니나 미카에게도 마찬가지다. 자매라는 혹은 이모와 조카라는 혈연으로 그녀를 얽어맸던 위선을 내던지며, 그녀들이 자신에게 가한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을 거침없이 폭로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거칠 것 없는 솔직함'에 대해 돌아오는 건 동료의 외면과 결국 암묵적인 사표의 강요다. 그리고 늘 이용하기만 했던 언니와 미카의 '피해자 코스프레'이고. 

‘선택적 나홀로족'은 치열한 경쟁으로 점철된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선택이자, 자기방어의 수단이라 진단된다. 즉, 현대인은 관계로부터 상처를 받아 차라리 '고독이 몸부림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관계로부터 상처를 입거나, 관계가 스트레스가 된'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을, 단 한번의 포옹으로 맹목적으로 돌변하는 루시를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토록 자신을 닫아걸었던 세츠코가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으며, 얼마나 진심어린 관계에 목말라했는가를 그녀의 외사랑은 대변한다.

영화 <오 루시!> 스틸 이미지

관계로부터 상처를 받아 자신을 닫아 건 채, 사회에 속했지만 히키코모리와 같은 삶을 살던 세츠코는 단 한 번의 포옹으로 '루시'로 거듭나고자 한다. 하지만, 그 루시가 그저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편의적으로 그녀에게 붙여진 이름인 것처럼, 그녀의 선택의 대가는 공허하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쌓아두었던 그녀의 성은 단 한 번의 포옹으로 무너질 만큼 위태로웠던 것이다. 한 사람의 자살로 시작하여, 맹목적인 루시로 삶에 도전을 했던 세츠코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위기. 다행히도 영화는 '진심어린 포옹'의 슬픈 위로로 끝을 맺는다. 영화는 '톰'이었던, 그녀만큼 그 포옹을 목말라했던 타케시를 통해, 그의 포옹을 통해 구원의 희망을 얻는다. 하지만, 그래서 더 그동안 얼마나 세츠코가 외로웠는가를, 사회로부터 스스로 단절된 이의 삶이 고단했던가를 보여줘 슬프다. 

더 이상 1인 가구, ‘나홀로족'이 특별한 것이 아닌 게 된 세상이다. 소통이나 인간관계가 취약해지면서 세상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비자발적’으로 집단에서 방출되어 나홀로가 된 이들조차 그저 ‘나홀로족'이란 보편적 트렌드에 묻혀 갈 수도 있다. 바로 그 '보편' 속에 숨겨진 '특별한 이야기'를 영화 <오 루시!>는 테라지마 시노부의 실감나는 연기와 뜻밖의 조쉬 하트넷의 조화로, 그리고 촌철살인 같은 야쿠쇼 코지의 등장으로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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