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역사라는 틀 속에서 기억되고 기록됩니다. 개인이 기록되는 경우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존재외에는 불가능하지요. 거대한 사건과 사고가 아니라면 역사에서 기록되기도 힘든 게 우리의 삶입니다. 전쟁 그 거대한 아픔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 모두 살아남은 자의 몫이고 의무일 겁니다. 그렇기에 윤계상이 연기한 신태호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의 목격자, 전쟁의 슬픔을 기록하다

전쟁에서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찾는 이들은 전쟁을 통해 이득을 얻어내는 존재들 외에는 없을 겁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도 하지만 전쟁은 절대 환영받을 수 없고 환영해서도 안 되는 비극일 뿐입니다.

전쟁의 참혹함은 가족이 형제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이 알고 혹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그런 비극은 민족상잔일 경우 극단적으로 커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어렵게 다시 만난 수연과 함께 둘만의 삶을 찾아 떠나는 장우에게, 중대장이라는 직책도 전쟁 이후 자신에게 주어질 명예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장우와 수연은 전쟁으로 모두가 지옥 같은 생활을 하는 중에도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그들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하루일지도 모르는 달콤한 그들의 행복은 태호로 인해 끝이 납니다. 자신을 배신하고 마음 깊은 속에서부터 인정하기 시작한 중대장을 사지로 몰아넣을 수 없는 태호는 중대 결정을 내립니다.

연합군이 평양을 점령한 상황에서 수연은 약자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합류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녀는 적군이거나 그들을 도운 반역자일 뿐입니다. 그렇게 태호는 자신이 절대 데리고 갈 수 없는 장우가 아닌 수연을 데려감으로서 자연스럽게 중대장이 복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승전파티는 연합군들에게는 승리를 목전에 둔 행복한 축제입니다. 탈환이 목적인 적군에게는 고위급 지도자들을 해치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서로의 이해가 갈리는 이 승전 파티는 그렇기에 모두에게는 중요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수혁에게는 이 파티가 자신의 존재감을 당에 내보일 수 있는 특별한 공적을 세울 수 있는 절호의 장소 입니다. 어설픈 이념을 내세우는 이기적인 존재인 수혁에게 지금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자신의 존재감일 뿐입니다. 그런 자신의 존재감을 찾기 위해서는 당이 만족할 만한 성과가 절실하고 그에 부응하는 결과는 승전 파티가 열리는 클럽을 폭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무모한 계획이 성공일리는 없습니다. 파티 장에 온 동생 수희에 의해 발견된 수혁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파티장 정중앙에 마련된 폭탄에 불만 붙이면 모든 것이 끝나는 상황에서 수희는 클럽 내부 사람들에게 폭탄이 있다며 대피하도록 합니다.

폭탄에 불을 붙이려는 수혁에게 장우는 총을 발사합니다. 자신을 죽이려던 순간에도 쏘지 않았던 장우는 다른 이들을 죽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수혁을 저지합니다. 과거의 관습에 의해 종이어서, 성장해서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의 오빠이기에 감히 넘어설 수 없었던 수혁을 장우는 넘어섰습니다.

어린 동생을 만나 여동생들에게 오빠로서 역할도 하지 못해 미안하다던 수혁은 끌려가던 지프에서 수류탄을 터트려 자결을 합니다. 끌려가는 오빠에게 안부라도 전하러 달려가던 수희도 그 폭파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그녀는 자신이 사랑했던 단 하나의 존재인 태호의 품에 안겨 "사랑 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평양에 남기고 홀로 피난을 가야만 했었던 인제는 겨우 동생을 찾았지만 이미 죽은 후였습니다. 클럽을 폭파하려던 주범 중 하나를 총을 쏴서 잡았지만 그게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동생일 줄은 상상도하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환자를 돌보던 인숙에게 모두를 죽일 수 있는 이번 임무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전쟁은 사람을 살리려는 이에게 사람이 죽도록 강요하고 이를 견디지 못해 뛰쳐나가는 동생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오빠가 죽이는 극한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동생을 만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악착같이 전쟁에서 살아남았던 인제는 전쟁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전쟁은 그렇게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인제가 찾아 헤매던 동생을 죽이고 동생들에게 참회하기 위해 자살을 택한 수혁은 그 일로 인해 어린 동생도 죽게 만들었습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이런 상황은 모두 전쟁이 만들어 놓은 비극일 뿐입니다.

조금은 의도적인 설정들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들의 죽음은 지독한 전쟁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였습니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전쟁터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그런 비극들이 모여서 전쟁이 역사에 기록되어지는 것이겠지요.

그 역사의 현장에서 태호는 시대의 목격자로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장우는 시대가 낳은 비극에 휘둘리고 아파하는 존재라면 태호는 그 모든 것을 직접 목격하고 기록하고 기억해내는 시대의 목격자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로드 넘버원>은 바로 태호의 시각에 의해 기억되어진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군사법정에 선 수연과 증언을 하는 태호, 이를 지켜보는 장우의 극단적인 상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전쟁. 그 지독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자신의 아픈 기억들을 그렇게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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