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가 논란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10여 년 전 대학에 다니던 시절 이 문제로 논쟁을 벌인 기억이 생생하다. 45명이 참여하는 토론 수업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2명은 판단을 유보했고 나머지 42명은 반대 입장에 섰다. 수업 참가자의 대다수는 예비역 남성이었다.

당시의 논변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현실적 문제 대부분은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국방의 의무를 군사훈련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대다수의 반대론자들은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대체복무 대상의 종류와 기간을 조정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반론하였다. 실제 대체복무제를 운영하는 해외의 사례는 이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부 반대론자들은 군사훈련 그 자체를 신성시하며 대체복무로는 어떤 방법을 동원하여도 형평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오로지 국가의 필요에 의해 군사훈련을 강제하는 것만이 유일한 의무 이행의 방법이라는 것은 국가주의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참여정부 초기로 집단주의에서 벗어난 탈권위에 대한 열망이 부풀어 오르던 때였다.

1시간 내내 치열한 토론을 했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판단 유보를 선택한 2명이 수업이 끝난 후에 악수를 청해왔을 뿐이다. 단단한 벽을 실제로 체감하니 막막하고 난감하였다. 스스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볼까 고민했으나 여러 사회적 관계의 변화가 걱정돼 차마 그러지 못했다.

입으로 떠드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과 달리 끝내 병역거부를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 있다. 사법부는 이들의 의사를 존중해 고맙게도(?) 1년 6개월의 에누리 없는 실형을 빠짐없이 선고해왔다. 그러나 병역거부자들의 수가 계속 늘어가자 하급심에서나마 무죄 선고가 나오는 사례가 발생했다. 그리고 마침내 28일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여부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병역을 기피하는 자를 처벌하도록 한 것은 합헌이지만, 대체복무제라는 선택지가 없는 현행 법률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2019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법적 정비를 마쳐야 한다. 국방의 의무 이행 자체에 대한 거부와 군사훈련을 거부할 권리를 구분해 후자를 인정할 방도를 만들라는 것이다. 공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형평성이란 측면에서 대체복무제의 설계는 앞서 언급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8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전화 연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 설계는 현역 복무보다 좀 더 어렵게 만들면 된다”면서 자신이 대표발의한 대체복무제 법안 내용을 설명했다. 현역의 1.5배 기간을 합숙의 방식으로 복무하도록 하고 업무의 난이도도 간병이나 섬에서의 의료봉사 등으로 현역보다 어려운 수준으로 정하겠다는 것이다. 박주민 의원은 대만의 경우 같은 맥락에서 대체복무제를 설계했지만 실제 이를 선택하는 인원은 상한에 미달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국방부 역시 박주민 의원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을 고민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합리적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국방의 의무를 공동체적 필요가 아니라 신성의 영역에 밀어 넣는 것은 북한을 소재로 한 기만적 정치이다. 북한이 우리 공동체를 적대하기 때문에 우리도 이에 맞서는 폭력을 감행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불거질 내부의 모순 역시 폭력적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회 입법 과정에서 반드시 이런 논리가 다시 등장할 것이다.

이런 상황 인식은 조선일보의 29일 사설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조선일보는 “우리는 남북이 200만 가까운 무장 병력으로 대치하고 있는 나라다. 저출산으로 인해 병역 자원도 줄고 있다”면서 “대체복무를 도입하더라도 안보에는 일절 지장을 주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헌법재판소의 결론을 굳이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국가적 효율성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사고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보수정치는 이 논리를 효율성 추구의 신화와 결합해 세상만사에 적용해 기득권의 이익을 보장하는 통치 모델을 유지해왔다. 그런 차원에서 박근혜 정권의 파국적 결말 이후에야 대체복무제 도입을 공약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고 헌법재판소 역시 도입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대체복무제와 관련한 논쟁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적 틀을 정하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체제 원리의 문제와 맞닿는다. 폭력적 효율성보다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근본적 차원에서 우선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삶을 둘러싼 조건을 바꿔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실효성 있는 대체복무제의 도입은 동아시아의 평화 체제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전망을 목표로 한 정치가 힘을 발휘할 때에 가능할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의 고민은 어떤 개인이 대체복무제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세계 각국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군비를 확장하는 게 아니라 평화를 위한 공동의 합의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군사적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는 동아시아 각국이 평화군축을 위해 연대하도록 구체적인 대중적 압력의 행사가 가능해야 한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대체복무제를 굳이 선택할 필요조차 없는 세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아마도 이것이 인생을 건 실존적 결단으로 오늘의 결과를 만든 병역거부자들의 궁극적인 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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