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사무총장(미디어스 편집위원)은 <열린미디어 열린사회>(2007 하반기호)에 기고한 글(‘쫄쫄이 저널리즘’에서 ‘알리바이 저널리즘’으로)에서 한국 신문의 정파성이 크게 2번의 전환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정부 중반기만 하더라도 한겨레를 제외하고 천편일률적인 보도경향을 보여온 것이 한국 언론의 풍경이다. 양문석 총장은 이 같은 기조가 김대중 정부 후반기 경향신문이 한화그룹으로부터 독립해 자생적인 언론사로 자리매김하면서 한국 신문의 정파성이 첫 번째 전환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한겨레만 다뤄온 개혁진보진영의 일반적인 담론을 경향이 다루기 시작하면서 담론의 지평을 한 단계 넓혔다는 것이다.

▲ 경향신문 1월1일자 1면.
‘중간지대’ 구축했던 한국일보 … 이제 다시 오른쪽으로 전환?

양 총장에 따르면 또 하나의 계기는 한국일보의 변화다. 그동안 사주와 일가친척들의 회사 돈 횡령 등으로 경영난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일보가 2006년부터 사주권력이 약화면서 최소한의 기자양심이 지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 양 총장은 “삼성광고 그늘에서 숨어있는 한국언론의 문제를 통렬하게 질타하는 보도까지 등장시키며, 종합일간지 성향상 중간지대 쪽으로 나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양 총장은 이른바 ‘조중동’을 비롯해 국민 문화 세계일보가 극우 또는 우파신문으로 묶이고, 경향과 한겨레가 중도파, 서울신문과 한국일보가 중도우파 정도로 분류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 한겨레 1월1일자 5면.
하지만 2008년 한국신문의 정파성은 양 총장이 분석한 구도에서 약간의 변화를 겪을 것 같다. 중도우파 그룹으로 분류가 됐던 한국일보의 ‘2008 기류’가 좀더 오른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매년 1월1일자로 발행되는 신문의 지면(1면과 사설)을 보면 대략 해당신문이 비중을 두고 있는 가치와 비전이 보인다. 오늘자(1일)만 봐도 이 같은 가치와 비전의 차이가 대략 읽힌다. 중앙일보와 한국일보는 오는 4월9일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를 예상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싣고 있고, 동아일보의 경우 사설에서 이명박 정부의 상징인 ‘선진한국’이라는 제목을 아예 달았다. 나머지 신문은 전반적으로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쪽으로 지면을 배치했고, 서울신문 정도만이 ‘성장과 빈부격차’ 해소를 나름 균형 있게 보도했다.

생태와 평화 강조한 경향·진보적 가치 방점 찍은 한겨레

‘천편일률적일’ 만큼 동일한 지면배치를 보이고 있는 곳에서 탈피한 쪽은 경향과 한겨레 정도였다. 경향신문이 ‘개발·성장보다 생태와 평화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한겨레가 진보적 가치의 유의미성을 되새긴 것을 제외하면 2008년 한국신문의 전반적 기조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전략과 별로 큰 차이가 없다. 좋게 말하면 언론과 정부의 가치가 묘하게 일치하는 셈이고, 좀 냉정히 살피면 ‘자발적 정언유착’의 기미마저 보인다.

한국일보의 오늘자(1일) 지면배치를 주목한 것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2008년 한국신문의 전반적 기조는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전략과 별로 큰 차이가 없지만, 그건 양문석 총장이 분류한 극우 또는 우파진영으로 묶이는 신문에 한해서다. 이른바 ‘조중동’과 국민 세계일보가 여기에 해당한다.

중도파로 분류됐던 경향과 한겨레가 어떤 지면배치를 선보였는가는 이미 위에서 언급했고, 중도우파로 구분했던 서울신문이 오늘자(1일)에서 어떤 지면배치를 선보였는가를 한번 살펴보자. 다른 지면배치보다 서울신문이 3면에 게재한 신년사설 가운데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우리는 친기업, 친시장 정책이 반드시 반서민 정책을 의미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성장의 혜택이 서민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한편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 ‘따뜻한 경제’를 지향할 때 비로소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성장과 분배가 함께 갈 수 있다고 믿는다. ‘따뜻한 시장경제’를 세워 나가는 원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서민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서울신문 1월1일자 3면 사설.
서울신문과 한국일보의 ‘작지한 중대한 차이’

반면 ‘중도우파’로 분류됐던 한국일보는 오늘자(1일) 1면 <여론 ‘이명박 코드화’ 뚜렷>에서 “대선 이후 대북 정책과 부동산 정책, 대입 3불 정책 등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여론의 흐름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제시한 정책과 닮아 가는 ‘이명박 코드화’가 뚜렷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6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고 있는 이 기사에서 한국은 “새 정부의 경제 운용 방향에 대해 응답자의 71.5%가 ‘성장 위주’ 라고 답했고, ‘분배 위주’는 21.7%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 한국일보 1월1일자 1면.
한국일보는 또 같은 날 5면 <“국정안정 위해 총선 투표” 70% … “새 정부 견제” 23%>에서 오는 4월9일 실시되는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된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며,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한 조사에서도 찬성의견이 반대의견보다 많았다는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일보 입장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전했을 뿐이라고 해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자(1일) 다른 신문들 가운데 한국일보와 전혀 다른 조사결과를 싣고 있는 곳도 있다. 단적인 예로 같은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서울신문의 경우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해 재검토나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여론이 65%로 집계됐다. 정리하면 결국 아무리 여론조사로 해도 해당신문의 ‘가치와 비중’이 일정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새해 첫날 싣는 여론조사의 경우에는 특히 그런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우려되는 한국일보의 ‘우향우’

그런 점에서 한국일보의 오늘자(1일) 지면배치는 상당히 우려된다. 양문석 총장이 지적한 것처럼 “한국일보의 중간지대 구축은 서울신문의 논조에 영향을 주고, 역으로 서울신문의 논조가 한국일보의 논조에 영향을 주면서 차별성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 왔던 그동안의 구도가 일거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중동을 ‘추종하는’ 아류그룹에 한국일보가 포함될 경우 이 같은 흐름이 서울신문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나마 점진적이게 진행돼 왔던 한국신문의 다양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도우파’ 한국일보 좀더 오른쪽으로 전환?>. 이 기사의 제목이다. 아직은 물음표를 달고 있지만 이 물음표가 떼어질 확률이 현재로선 더 높아보이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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