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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하드디스크 디가우징, 사법부 존재가치마저 지웠다사법정의 실현해야 하는 법원이 증거 인멸
장영 기자 | 승인 2018.06.27 12:40

사상 처음 시도되는 검찰의 법원 수사는 난항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적극 수사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현실은 다르다. 문제가 된 하드디스크를 달라는 검찰에 법원은 종이 자료만 제출한 채 거부하고 있다. 주는 정보만 가지고 수사하라는 법원은 양심마저 저버렸다.

법원의 사법 정의, 사법개혁 대상이었던 검찰 조사 받는 법원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하드디스크는 디가우징을 통해 완전히 파괴했다.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법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핵심 인물들의 증거 인멸이 노골적으로 자행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법원 자체 조사는 수박 겉핥기였다. 이미 자체 조사에서 그들이 밝힐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결과 역시 모두가 예상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과 핵심 인사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못한 채 끝난 자체 조사에서도 디가우징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법원행정처로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용했던 컴퓨터가 지난해 10월 디가우징 됐다는 사실을 전달 받았다. 박병대 전 대법관의 컴퓨터도 디가우징 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컴퓨터 하드디스크(CG) [연합뉴스TV 제공]

검찰 관계자는 요청한 하드디스크는 오지 않고 핵심 인물들의 컴퓨터가 지난해 10월 디가우징 됐다고 밝혔다. 디가우저란 장비에 하드디스크를 넣고 돌리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파괴된다.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정보를 복구할 수 없도록 지우는 기술을 디가우징이라고 한다.

디가우징은 2008년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불거졌을 때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증거인멸에 사용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3년 '국정원 정치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서도 경찰 수뇌부가 검찰 압수수색 직전 관용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한 사건이 있었다. 

디가우징이 대법관의 PC에도 적용되었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대법원 측은 전산장비운영관리지침에 따라 퇴임자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들을 디가우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양 전 대법관 시절 이 기준이 바뀌었다는 점에서도 씁쓸하다. 

문제는 디가우징 시점이다. 지난해 10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따른 대법원의 2차 조사가 착수된 시점에 디가우징이 이뤄졌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4년 하반기 디가우저 도입이 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상고법원' 총력전이 펼쳐지던 시점 디가우저가 도입된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디가우저 도입 이전까지 '포맷 후 폐기'가 근거조항에 적시된 '소거조치'였지만, 2014년 도입 후 대법관 PC에 대한 '소거조치'는 디가우징으로 변한 것이다. 사법권 남용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높아지고, 자체 조사를 하던 시점 디가우징을 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순수하게 바라볼 수 없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컴퓨터 하드디스크(CG) [연합뉴스TV 제공]

양 전 대법원장은 그 조사에 임하지도 않았고, 중요한 자료가 존재했을 하드디스크마저 디가우징으로 완전히 지워버렸다. 이는 범죄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로 읽힐 수밖에 없다. 법을 가장 잘 알고 판결을 해왔던 법관이 오히려 법을 악용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검찰은 지난 19일 대법원에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사용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대법관들의 관용차 운행일지, 법인카드 사용 내역 제출을 요청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원행정처를 통해 자체 조사 결과 의혹과 직접 관련이 있다고 분류한 410개 문건 파일을 원본 형태로 제출한 게 전부다. 그나마 문건을 어떻게 추출했는지 보여주는 자료를 추가했다는 것이 조금의 성의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는 정도다. 

원본은 숨기고 자신들이 준비한 자료만 주고 조사하라는 대법원. 그건 수사가 아니다. 대법원이 요구하는 결과를 검찰에게 지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스스로 법원의 존재 가치를 떨어트리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판사는 형을 집행하는 최종적인 존재다. 그들의 한 마디에 인생이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법치국가에서 판사는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실제 판사는 각각이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그만큼 그들의 위상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법치국가에서 그들에 대한 존엄은 지켜져야 한다. 그게 무너지는 순간 법치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검찰로 넘어간 ‘재판거래 의혹’… 대법관 13명 “근거없다” 반발(CG) [연합뉴스TV 제공]

하지만 판사가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질문이 될 수밖에 없다. 양승태 전 대법관은 사법거래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과거 판사 시절 간첩조작사건의 1심 판결을 담당하며 수많은 가짜 간첩을 만들었던 그가 이명박근혜 시절 대법관이 되었고, 그렇게 사법 유린을 해왔다. 

절대권력을 누리기 위해 '상고법원'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이 좋아할만한 판결을 해왔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만약 '사법거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양승태 전 대법관은 가장 무거운 벌을 받아야 한다. 법치국가에서 독립된 사법기관의 수장이 해서는 안 되는 가장 악랄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법원장들과 대법관들만 검찰 수사에 부정적이다. 일선 판사들은 철저한 수사로 사법 신뢰 회복을 바라고 있다. 자신들의 잘못은 은폐하면서 국민들의 잘못을 판단할 수 있을까? 양승태 전 대법관 사태는 사법 존립 자체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심각한 수준의 사건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사법신뢰 회복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인 양 전 대법관과 박 전 법원행정처장의 하드디스크가 디가우징 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검찰이 확보하고자 하는 문건의 0.1%에 불과한 410개의 파일만 문서로 전달한 후 사법행정권 남용의 실체를 조사하라는 법원. 그들은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렸다. 그들이 수사를 회피하면 할수록 국민들의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법부의 존재 가치마저 부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들은 스스로 사법부를 무너트리고 있을 뿐이다. 

장영 기자  mfmc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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