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결과는 예상대로 됐다. 여당의 대승과 보수야당의 붕괴라는 결말은 애초에 정해져 있었지만 실제 눈앞에 펼쳐지니 역시 당황하게 된다. 온통 파란색으로 뒤덮인 지도는 ‘1당독재’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

보수야당 입장에서 보면 ‘백약이 무효’라고 할만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절대적 지지는 강고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대화는 이런 상황을 떠받치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오죽하면 문풍(文風)과 북풍(北風)에 장사가 없었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올 정도이다.

그런데 과연 문풍과 북풍의 위력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결과일까? 이보다는 오히려 이런 결과를 보수야당이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걸 짚지 않을 수 없다. 이 와중에 경남지사 선거전에서 비교적 선전한 김태호 전 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 당선자의 사례를 보면 그렇다. 두 사람은 반성과 새로운 길을 말하며 최대한 정략적으로 보이지 않을만한 행보를 거듭해 성과를 거뒀다. 자세를 낮추고 성의를 다했어야 겨우 기본을 할까 말까한 선거였다는 것이다.

홍준표식 선거 캠페인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이제는 사퇴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자기 위주로 공천을 하고 당내의 반발은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식으로 무시하며 여론조사 결과를 ‘가짜’로 폄훼하면서 민의를 외면했다. 이러한 행보는 본인의 기득권 유지에 방점을 찍은 결과로 보인다. 선거에서 대패하더라도 조기전당대회를 통해 다시 당권을 잡고 2020년 총선에 공천권을 행사해 당 조직을 완전히 장악한 후에 2022년 대선에 다시 나서겠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붕괴 직전이지만 홍준표 전 대표의 이런 ‘플랜’은 아직도 실행 도중에 있다.

이런 상황은 유권자들의 눈에 어떻게 비쳐졌을까? 첫째로 자유한국당의 선거 대응은 ‘정략’적이라는 이미지이다. 둘째로 자유한국당의 이 ‘정략’은 겉으로는 명분을 말하면서 개인의 사익을 채우는 도구일 뿐이다. 이런 인식은 박근혜 정권을 붕괴시킨 촛불시위의 참가자들이 지난 보수정권 9년을 규정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권을 사실상 ‘종북’으로 규정하고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란 구호를 들고 나온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해석되었다. 자유한국당이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 연장을 위해서 색깔론과 같은 구태한 정치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자 ‘탄핵’ 국면의 기시감이 다시 형성되기 시작했다. 즉, 보수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새롭게 선보일 정치의 평가를 구했어야 했지만,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는 자신들에 대한 ‘심판’ 구도를 스스로 자초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어디까지나 ‘공학’의 측면에서 보자면 보수야당의 전략은 네거티브 캠페인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의외로 정석적인 것이었다. 네거티브 전략의 기본은 정치적 냉소주의에 호소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겉으로는 정의를 부르짖고 있으나 드루킹 사건이나 미투 폭로 등에서 보듯 사실 속으로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고, 김기식 전 금감원장의 사례처럼 사익을 채우는 데만 급급하며, 이를 다 알면서도 운동권 출신들끼리 서로 봐주고 있다는 ‘스토리’가 그렇다. 아마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이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조차도 ‘백약이 무효’로 귀결된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도 자체가 ‘적폐청산’의 프레임 속에 갇혀 버렸기 때문이지만, 남북정상회담과 북미대화가 갖고 온 효과 역시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유권자들을 감동시킨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어떤 민족적 동질성의 확인이나 군사적 긴장 완화에 의한 안도감의 형성이라기보다는 그것을 가능케 한 정치의 어떤 ‘효능감’일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를 제대로 뽑으니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던 문제에서 무언가 성과가 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보수 정권이 국가의 자원을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것에만 사용해 나라가 엉망이 되고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게 촛불시위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일반적 인식이다. 달리 말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것은 정권이 사리사욕이 아니라 원래 써야 할 곳에 공동체의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NSC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권은 바로 이런 논리에 따라 정치적 냉소주의의 덫에서 벗어났다. 이에 따라 여당은 ‘양품’이 됐고 자유한국당은 ‘불량품’이 됐다는 게 이번 선거의 결과를 만든 한국 사회 인식의 단면 중 하나다. 이런 구도에서 정의당은 가격 대 성능비가 좋은 중소기업제품처럼 보였고 바른미래당은 자유한국당의 유사품 중 하나인 것처럼 인식됐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동반 몰락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히 전국민적인 불매(?)운동 끝에 파멸에 이른 보수야당을 재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으로서는 실마리를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반대급부’만을 노리는 기만적 정치가 아니라 제대로 된 보수정치의 노선을 신실한 자세로 관철시키겠다는 태도의 전환이 먼저 필요한데, 이를 상징성 있게 수행할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유한국당의 차기 당권을 겨뤄보겠다는 인물의 면면은 ‘탄핵 구도’를 연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뿐일 듯 하다.

이런 이유로 당분간 여당 독주의 구도가 이어지겠지만 그렇다고 통치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있다. 정치적 문제로 보자면 드루킹 특검이 여당 핵심부를 겨냥하고 있고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의 뒤처리도 쉽지 않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먼저 노동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최저임금위원회가 정상화해야 하고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대책이 다음 달 정도에 나올 2018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포함되도록 논의를 세심하게 해야 한다. 정부가 국가교육회의에 공을 넘긴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도 8월 말에는 확정돼야 하고 부동산 보유세 개편 또한 9월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속도감 있게 추진돼야 한다. 일감몰아주기 근절 등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도하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역시 길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점으로 보면 적어도 여의도 정치의 영역에서 여당의 독주가 이어지겠으나 사회적 영역에서는 반발이 거듭될 수 있고 오히려 이게 정권에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을 해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자라난 정치적 냉소주의가 기만적 정치의 양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반발을 무릅쓰고서라도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국정 전반을 다 잘했다고 평가하고 보내준 성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며 “지켜야 할 약속들과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쉽지만은 않은 일들이다. 그러나 국정의 중심에 늘 국민을 놓고 생각하겠다”고 했다. 바람직한 태도이다. 개혁을 위한 신실한 비판과 건강한 야당의 역할이 있어야 이런 자세도 유지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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