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파랗게 물들었다. 파란이 일어났다. 6.13 지방선거 결과는 놀라웠다. 승리와 패배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린 선거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광역단체장에서 자유한국당은 대구와 경북 두 곳에서만 승리했다. SNS에서는 “북한이 변했는데 TK는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 우스개로 퍼져나갔지만 사실은 다소 다르다.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40% 가까운 득표를 한 것은 매우 유의미한 변화인 탓이다. 경북도지사에 도전한 민주당 오중기 후보 역시 34%를 넘겼다. 지역색은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 막대기만 꽂아도 보수당이 된다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된 것이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는 틀리지 않았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조사한 것은 당선여부만은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함께 조사했고, 발표했다. 무려 80%가 나왔다. 이 결과를 보고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나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가 줄기차게 주장했던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의 표본보다 대상을 대폭 늘린 결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여론조사 결과보다 훨씬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MBC 선거 개표방송 <선택2018> (보도화면 갈무리)

선거방송 중에 정치인들 특히 자유한국당이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출구조사 결과에 놀라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는 것이 시민들 반응이다. 지방선거 결과에 놀랐을 정도로 자유한국당 및 야당들은 민심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심은 진작부터 경고하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일부 좌파의 책동’ 정도로 애써 외면하고, 부정한 결과일 따름이다.

일 년쯤 지났다고 탄핵당한 대통령과 구속된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 모두 끝났거나 잊었을 거로 생각했던 오만함과 경솔함에 대한 심판이었다. 유시민 작가는 이번 선거의 의미를 “자유한국당에 대한 탄핵‘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야당은 낮은 자세로 국민의 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국회에 만 건이 넘는 법안을 묵혀두지 말았어야 했다. 온 세계가 환영하고, 온 국민을 설레게 했던 대북정책에 ‘김정은이 민주당 선대본부장’ 운운하는 판깨기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 대 야당의 대결이었다. 특히 9년간 단절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경색된 대북정책과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정책의 승부였다. 투표 전날 있었던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서 언론들이 매우 인색한 평가를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여당에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보탰다. 그런 민심도 모르고 “종전선언 절대반대”를 거리낌 없이 말했던 자유한국당의 처절한 패배였다. 아니 문재인 대통령의 승리였고, 평화의 위력이었다.

6·13 지방선거 출구조사 발표로 여야가 상반대 표정을 보였다. Ⓒ연합뉴스

그러나 언론은 민심의 심판을 보고도 엉뚱하게 정계개편에만 관심이다. 선거 결과에 반성해야 할 것은 야당뿐이 아니다. 언론도 포함된다. 야당과 언론이 핑퐁처럼 주고받으며 없는 논란을 만들어왔던 것에 대한 진력과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게 소위 6개월은 간다는 허니문도 없이 닦달한 언론과 야당이었지 않은가.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김경수 당선자의 경우를 보자. 한 달이 넘게 야당과 언론은 드루킹 사건을 추궁했다. 가뜩이나 험지 출마를 결정한 김경수 후보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울 수 있었다. 그러나 김경수 후보는 오히려 보란 듯이 경남에서 승리를 거뒀다. 물론 선거의 승리가 결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야당의 노림수가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김경수 당선자는 동시에 자신의 존재감을 훌쩍 키울 수 있었다. 드루킹 사건으로 인해 김경수 당선자는 곤란을 겪기는커녕 일약 차기 대선주자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야당과 언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당 차원에서 매크로를 운영했다는 사실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입을 닫았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모를 리 없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가 14일 새벽 경남 창원시 성산구 STX 빌딩에 있는 자신의 선거 사무소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이 파란색으로 뒤덮인 ‘파란’의 선거였다. 그러나 민주당의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쁘기야 하겠지만 무작정 승리에 도취될 일도 아니다. 민주당의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의회가 거의 민주당으로 꾸려졌다.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니다. 무풍지대에서 스스로 혁신하지 않는다면 2년 후 총선에는 오히려 역풍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작년에 정발위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후퇴한 민주당 혁신이 제대로 가동되어야 할 이유이다. 공교롭게도 민주당 전당대회가 다가온다. 민주당이 민심 앞에 겸허하게 자기혁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번의 승리는 오히려 미래의 독이 될 것이다. 민주당의 풀어야 할 진짜 숙제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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