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헥터가 장염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한 상황에서도 기아가 이겼다. 상대가 김광현이었다는 점에서 더 놀랍다. 기아 불펜의 미스터리함은 어느 날 갑자기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는 점이다. 헥터가 빠진 후 기아는 세 명의 투수를 앞세워 상대를 압도했다.

황인준 임기영 김윤동 무실점 호투와 안치홍의 4타점 맹활약

황인준이 선발로 나섰다. 의외의 카드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임시 선발에게 5이닝을 맡기는 전략은 아니었다. 최대한 경기에 집중해 최선을 다해달라는 요구가 있었을 듯하다. 빠른 공은 아니지만 브레이킹 볼을 앞세워 상대를 압도한 황인준에게는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아의 투수 3인방은 가장 많은 홈런을 만들어내는 SK를 상대로 무실점 호투를 했다. 최근 SK 타선이 침묵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SK다. 그런 SK를 상대로 에이스 헥터가 빠진 상황에서 이길 수 있을까? 그게 의문이었다. 더욱 이번 주 기아는 SK와 LG 에이스들과 6연전을 펼쳐야 한다.

KIA 타이거즈 임기영 [연합뉴스 자료 사진]

6연전 경기에서 상대 최고 투수들과 상대를 한다는 것은 최악이다. 1~3 선발 투수들이 연이어 등판하면 이기는 것은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화요일 경기를 기아가 잡았다는 것은 의외다.

기아로서는 운도 따랐다. 김광현이 4이닝까지 완벽하게 기아 타선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팔꿈치에 이상을 감지하고 내려가며 분위기는 기아의 몫이 되었다. 지난주 일요일 경기에서도 롯데에 지고 있었지만, 우천 취소로 기사회생했다. 김광현 부상 여부가 명확하지 않지만 기아에 득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기아는 4회까지 김광현에게 안타를 뽑은 선수는 이명기가 유일했다. 그만큼 완벽하게 김광현에게 막힌 경기를 했다. 팔꿈치 이상만 아니었다면 기아는 좀처럼 김광현에게 점수를 뽑기 어려웠을 정도로 잘 던졌다. 그런 김광현이 내려간 후 김태훈이 5회는 잘 막았지만, 6회 실점을 한 것은 아쉬웠다.

팽팽한 경기에서 상대 팀은 임시 선발에 이어 불펜을 교체해 운영하는 상황에서 선취점을 내주면 불안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아 임시 선발로 나선 황인준은 3이닝을 던졌지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불펜에서 꾸준하게 활약하고 있는 황인준은 3이닝을 무실점을 잘 막았다.

2회 삼진으로 시작했지만, 이재원과 김동엽에게 연속 4구를 내주며 위기를 자초했다. 갑작스럽게 제구 난조를 보인 황인준이 그대로 무너지는 듯했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정의윤을 삼진으로 잡은 것이 컸다. 이후 김성현에게 중전 안타를 내줬지만, 버나디나가 홈에서 이재원을 잡으며 실점을 막은 상황 역시 이번 경기 하이라이트였다.

KIA 타이거즈 버나디나 [연합뉴스 자료 사진]

버나디나가 단순히 수비 범위만 넓은 것이 아니라, 송구 능력도 뛰어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만약 이 송구로 이재원을 잡지 못했다면 황인준은 무너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무너지면 불펜 운영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버나디나의 이 아웃 카운트 하나는 절대적이었다.

버나디나의 활약은 6회에도 돋보였다. 4구를 얻어 나간 후 2루 도루에 성공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4할 타자인 안치홍이 앞선 두 타석에서 안타가 없었고, 1사 2루 상황에서 적시타를 치며 점수를 얻었다는 점은 경기 전체에서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버나디나는 이번 경기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1-0으로 아슬아슬하게 앞서가던 기아로서는 도망치는 점수가 필요했다. 그런 간절함 속에서 8회 다시 한 번 경기를 흔든 것은 안치홍이었다. 1사 상황에서 김선빈의 2루타와 버나디나의 내야 안타로 판은 벌어졌다. 그 상황에서 4할 타자가 등장하는 것은 상대 투수로서는 부담스럽다.

윤희상을 내세워 9회 마지막 반격을 꾀한 SK로서는 안치홍을 넘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듯하다. 밀어 쳐 3점 홈런을 만든 안치홍은 올 시즌 절정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타선에서 안치홍의 4타점이 경기를 지배한 이유였다면, 기아는 세 명의 투수가 나눠 던진 마운드의 힘도 특별했다.

KIA 타이거즈 안치홍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구 난조로 엉망인 경기를 했던 김윤동은 마치 보상이라도 하는 듯 2와 1/3이닝 동안 상대를 압도하는 투구를 했다. 8회 3개의 삼진으로 상대를 압도한 김윤동은 팀이 4-0으로 앞선 상황인 9회 다시 갑작스럽게 흔들렸다. 1사 후 최항을 사구로 내보내고, 김성현을 삼진으로 돌려 세워 투아웃을 만들었다.

SK 팬들로서는 김성현의 3구 3진이 황당했을 듯하다. 세 번째 공이 너무 빠졌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는 심판 고유 권한이라는 점에서 항의도 할 수 없다. 투아웃까지 잡은 상황에서 김윤동은 나주환을 4구로 내보내며 위기를 자초했다.

전 경기에서 허무하게 무너진 상황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윤동은 노수광을 1루 땅볼로 유도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기아는 헥터가 빠진 상황에서 세 투수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중요한 화요일 경기를 잡았다. 여기에 버나디나의 흐름을 주도하는 활약과 경기를 마무리한 안치홍의 4타점 경기가 기아에게 기운을 불어넣는 이유가 되었다.

운이 따라주는 기아. 이런 운을 실력으로 더해 상위권 싸움을 펼쳐야 할 시점이다. 아시안게임 휴식기 전에 최소 2위권 싸움에 기아도 끼어들어야 우승을 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그 흐름은 양현종의 어깨에 달렸다. 켈리와 선발 맞대결을 하는 양현종이 승리를 이끈다면 최악의 한 주가 최상의 한 주가 될 수도 있다.

안치홍은 잘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큰 최형우가 폭발해야 한다. 그리고 쉰 주전들이 제 몫을 해준다면 SK에게 우세 시리즈를 가지고, LG와 원정 주말 3연전을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야구는 흐름의 경기다. 흐름만 잘 타면 어떤 팀이든 연승을 이끌 수 있다. 결국 양현종이 얼마나 효과적인 피칭을 해주느냐가 이번 주 기아에게 중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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