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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처우개선 없는 공영방송 정상화는 허상"[인터뷰] 한빛센터 탁종렬 소장·이한솔 이사 "노동시간 단축에 비정규직의 목소리 넣겠다"
윤수현 기자 | 승인 2018.06.12 08:45

[미디어스=윤수현 기자] 공간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공간이 있어야 모임을 형성할 수 있으며, 집단행동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동안 방송계 비정규직·프리랜서를 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의 구심점이 될 공간은 없었고,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빛미디어 노동인권센터

1월 24일, 한빛미디어 노동인권센터가 출범했다. 그리고 5월 3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휴 서울 미디어 노동자 쉼터가 생겼다. 이곳에선 방송계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에게 공간을 마련해주고 노동 처우에 대해 상담을 해 준다. 방송사, 직군에 상관없이 비정규직·프리랜서라면 이용할 수 있는 쉼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동안 이들을 위한 공간이 없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한빛 센터는 변화의 계기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한빛 센터는 고 이한빛 PD의 희생을 계기로 만들어진 단체다. 고 이한빛 PD는 지난해 10월 방송 제작현장의 부당한 노동환경을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한빛 PD의 희생 이후 방송계 전반의 부조리한 관행이 밝혀졌고, 한빛센터의 출범까지 이어졌다. 한빛 센터는 방송계의 문제점 지적을 넘어 시스템 변화에 힘쓰고 있다.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의 처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려 한다. 

미디어스는 7일 상암동 미디어 노동자 쉼터에서 한빛센터 탁종렬 소장(이하 탁종렬), 이한솔 이사(이하 이한솔)를 만나 방송계 비정규직·프리랜서의 처우 개선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의 목표와 방향에는 한국 방송계가 지켜가야 할 상생의 길이 있다.

탁종렬 한빛 센터 소장(미디어스)

Q. 쉼터가 잘 꾸며졌다. 방송계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를 위한 쉼터는 최초다

탁종렬 – 서울시가 공간을 지원해줬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빛센터가 박원순 시장에게 쉼터 개소를 요청했고, 1월 24일 약속을 받았다. 공간을 제외하고 방송계 비정규직·프리랜서 지원을 위한 사업비와 운영비는 한빛 센터에서 맡고 있다.

Q. 사업비와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되나

탁종렬 – 개인 후원과 언론노조 산하 조직의 후원을 받을 계획이다. 앞으로는 후원금을 넘어 직접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영화산업을 예로 들면 영화진흥위원회의 법률에 따라서 영화 제작 노동자 복지를 위한 지원이 이뤄진다. 극장 수입 일부가 영화 제작 노동자 복지를 위해 쓰이고 있다. 

방송 제작 노동자는 그런 지원이 전혀 없다.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조성은 방송노동자들이 조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기금의 상당수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이 들어가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방발기금은 단 한 번도 비정규직을 위해 쓰인 적이 없다. 앞으로 방발기금이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쓰여야 한다.

Q. 한빛 센터 출범 이후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있나 

탁종렬 – 개인적으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모 지역의 지상파 방송국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시는 분들이 상담을 요청했다. 이분들은 자신들이 하는 업무가 다른 지역에선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지 현황을 조사해왔다. 고용 형태, 정규직 규모, 급여, 방송국 파업 시 급여 지급 여부 등을 말이다. 방대한 조사였다. 어떻게 조사했냐고 물으니 “절박해서 했다”고 하더라. 

이분들은 방송국이 파업했을 때 급여를 받지 못했었다. 자신들이 원해서 파업을 한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평판을 얻지도 못했다. 너무 놀랐다. 2012년 언론노조의 조직실장을 역임했을 때 관련 실무책임자였는데, 이런 희생이 있는 줄은 몰랐다. 현재 이분들은 노조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만약 한빛 센터 일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이다.

휴 서울 미디어 노동자 쉼터(미디어스)

Q. 비정규직 노동 처우 개선과 관련해 실질적인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탁종렬 – 맞다. 한빛센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최근 MBC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부당해고와 관련해 시위를 벌인 적 있다. 그런 경우 한빛센터가 지원하고, 그분들의 편에 설 수 있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MBC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장소를 마련해주고, 여러 편의를 제공했다.

드라마 스텝들이 제보를 주기도 한다. 그럴 때 한빛센터가 나서서 방송국에 공문을 발송하고, 개선책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빛센터가 만들어진 후 생긴 변화다.

이한솔 – 한빛센터를 시작하기 전 방송계의 현실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문제점을 체감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방송 제작현장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처우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기간이 있었다. 한빛 센터가 만들어진 후 이분들을 위한 공간이 생겼다.

Q.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활동은 어떤 게 있었나

탁종렬 – 최근 건설·영화산업 노동조합을 초청해 강연했다. 최근 방송계 갑질 119가 방송계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를 위한 노동조합 출범을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도 강연 활동 같은 지원을 하고 있다. 또 첨예한 대립이 있는 사안에 대해선 관련자를 초청해 대화의 장을 만들 것이다. 향후 한빛센터는 방송계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조합 출범에 적극적인 지원을 할 계획이다.

이한솔 – 그동안 방송계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는 오프라인 장소가 없었다. 한빛센터와 미디어 노동자 쉼터가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이한솔 이사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을 것 같다(이한솔 이사는 고 이한빛 PD의 동생이다)

이한솔 – 상징적인 역할이 주어졌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한국사회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당사자라고 생각한다. 방송국이 더 큰 압박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역할을 할 것이다.

나아가 기준을 성립하는 역할도 하고 싶다. 그동안 했던 일과 일정 부분 관통하는 맥락이 있다.(이한솔 이사는 청년 주거권 확보를 위한 청년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에서 활동한다)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의 방향성, 기준점을 제시하는 일을 할 때 진정성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한솔 한빛 센터 이사(미디어스)

Q. 방송계에선 주 52시간 근무제가 뜨거운 감자다

이한솔 – 사업 규모 등에 따라 도입 시기가 달라진다. 이런 디테일한 법 규정 때문에 방송사나 제작사가 편법을 쓸 수 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법의 테두리에 넣을 수 있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프레임을 만들고, 방송국에 요구해야 한다. 현재 관련 사례를 모을 수 있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Q. 2017년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방통위·문체부·과기정통부·고용부·공정위 5개 부처가 합동으로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탁종렬 – 곧 합동 대책안 발표 1년이 된다. 장기적으로 올해 12월이 되면 합동 대책안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정부에 시정을 요구하는 활동을 할 것이다. 단기적으론 방송 제작 기자간담회 같은 곳을 가서 피켓 시위를 할 계획이다. 또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상징을 만들 것이다. 세월호 참사 배지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 

Q. 그동안 방송계 노동실태는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이한솔 - 보도를 통해 사건이 알려지는 것이 일반적으로 굳어지면 곤란하다. 보도는 사실을 알리는 역할을 하지만 실질적인 문제 해결로 이어지기 힘들 수 있다. 일회성이 될 가능성도 크다. 우선 한빛센터나 관련 기관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그게 풀리지 않으면 제보를 통해 알리는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한다.

Q.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한다

탁종렬 – 공영방송의 정상화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프리랜서·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 권리, 처우 향상이 없는 공영방송 정상화는 허상이다. 공영방송에 근무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는 무수히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공영방송 정상화는 프리랜서·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본권이 회복되었을 때 완성될 수 있다.

이한솔 – 방송계의 권력 관계가 공고하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상황이다. 그 속에서 한빛센터가 신뢰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비정규직과 을의 위치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 신뢰를 가지고 한빛센터를 지켜봐 줬으면 한다. 우리와 함께 방송계 비정규직·프리랜서 노동실태를 개선해나갔으면 좋겠다.

윤수현 기자  melancholy@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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