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0일 경기도 지원 유세 중에 한 발언이 논란이다. 추 대표는 “쓸데없는 것 가지고 말들이 많다. 도지사는 일하는 능력 보면 된다”고 하면서 “요새 우리 젊은 친구들이 자꾸 이상한 데 관심 쏟고 있다. 1번, 2번 사이에 찍어서 무효표 만들겠다고 한다. 그렇게 어깃장 놓으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물론 추미애는 당대표로서, 선대위장으로서 자당 후보를 감싸고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더라도 민주당이 지켜온 원칙과 가치를 훼손하는 말까지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현재 이재명 후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비토하는 이들은 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추 대표 역시 그런 현실을 알기에 자유한국당이 아니라 “젊은 친구들이 자꾸 이상한 데 관심 쏟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모한 훈계였다. 당 지지자들의 의지를 젊은 치기로 폄하한 것이라는 비난쯤은 감수할 수 있겠다고 각오한 것이었을까?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0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롯데마트 시흥배곧점 앞 사거리에서 열린 6·13 지방선거 임병택 시흥시장 후보 지원유세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와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당원들이 당의 원칙과 가치를 지키자고 외치는 것에 대해 민주당은 선거라는 상황 논리와, 우리 편이라는 진영 논리 외에는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추 대표의 말을 들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올 초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었다. 우연인지 예언인지 문 대통령은 “부패하면 유능할 수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특정인을 겨냥한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공직자나 정치인이 ‘일만 잘하면 돼’라고 할 수는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기도 했다.

굳이 과거 정동영의 발언을 예로 들지 않겠지만 이런 식의 거친 발언은 선거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더군다나 청년이나 당원들이 가만히 듣고만 있을 거로 생각했다면 그것도 큰 착각이다. 무엇보다 언제나 시대의 부조리를 향해 맨몸으로 저항했던 것은 그래도 청년들이었다. 그런 청년이란 단어를 이상한 데 관심이나 쏟는다는 뉘앙스로 폄하하는 것은 적어도 6.10 민주항쟁의 날에는 삼가야 했다.

정치인이 지지자들의 집단적 의미와 맞서서 꺾으려는 것은 무모하거나 오만한 것이다. 작년 언론 몇몇이 독자와 시민들과 싸우자고 도발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는 새삼 거론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금 추미애 대표와 일부 민주당 인사들은 당원과 시민들과 싸우자고 하는 것으로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공직자가 그렇듯이, 정치인은 더더욱 시민과 싸워서는 안 된다. 새삼 민주당에게도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을 상기시켜야 하겠는가. 시민은 유일한 주권자이고, 정치인은 그들로부터 대의를 위임받을 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그걸 모르거나 무시하고자 하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자유한국당을 보고도 모르는가.

결과적으로 추미애 대표의 발언은 그가 지키고자 했던 이재명 후보에게도, 자신에게도 무엇보다 민주당 전체에도 득이 되지 못했다. 현안에 대해서 더 치열하게 파고들고, 민심을 듣고자 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하다못해 추미애 대표의 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왜 당원들이 “1번과 2번 사이에 찍어 무효표를 만들”고자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은 경솔함은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KBS 뉴스 9 (보도 화면 갈무리)

무엇보다 김부선 스캔들이 사실이라는 가정을 하자면, 오래전을 일을 잘 매듭짓지 못하고 이렇게 큰 논란으로 만들 정도면 능력도 그다지 믿을 만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살면서 실수하고, 잘못하는 일이 누군들 없겠는가. 그 상대자 혹은 피해자들과의 문제를 어떻게 마무리 했느냐가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위기관리능력이라고 할 것이다.

떼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던 선거가 흔들릴 정도로 논란이 커진 이후 민주당은 리스크 관리에 치명적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깨끗하자”는 당원들의 요구에 “쓸데없다”로 억누르는 것은 어떻게 포장해도 민주당의 방식이라고는 인정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오래 싸워왔던 적폐의 방식이 아닌가.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는 한국의 비극적인 현실이라면 정치 지도자의 자질로 먼저 요구되는 것은 도덕과 윤리여야만 한다. 능력은 그 다음이다. 논란이 있어도 일 잘하면 되지 않느냐는 ‘욕망의 투표’라는 평가를 들어야만 했던, 2007년 대선의 논리이자 비극의 선동이었다. 추미애 대표가 뭔가 착각에 빠진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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