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재미도 물론이거니와 때때로 신문 만평 못지않은 풍자로 세태를 투영해왔다. 그런 이유로 해서 개념예능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번에도 깜짝 놀랄 짧은 풍자 한 컷이 시청자를 속 후련하게 해주었다. 쓴 소리 전문 박명수가 이번에도 제대로 한 번 해주었다. 이것이 즉흥 애드리브를 살린 자막의 힘인지 아니면 전부를 준비한 것인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춘천으로 떠난 무한도전 시크릿 바캉스에서 노홍철은 미리 자신이 진행하는 FM라디오 생방송을 준비했었다. MBC 이동스튜디오가 춘천 중도까지 들어온 것이다. 이벤트로 알고 끌려온 멤버들은 사기꾼 노홍철에게 불만을 터뜨리는데 갑자기 박명수가 스튜디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때는 노홍철이 라디오 방송 중이기 때문에 아무리 무한도전이라도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물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간 박명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서 기가 막힌 자막이 터졌다. “스튜디오 난입, 대본 검열?”이란 자막이 이어졌다. 시사에 약간의 관심이 있다면 최근 개그맨 김미화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그 사건과 함께 김미화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대본을 경찰이 사전검열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었었다.

당시 김미화는 경찰 고문논란과 관련해 실적주의를 비판한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의 인터뷰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 사실을 안 서울경찰청 소속 한 경위가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로 담당 PD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 질문지 제출을 요구했었다. MBC 노조 및 사측은 동시에 서울경찰청의 공식 사과와 관련자 처벌을 요청했던 사건을 이 말없는 상황과 자막으로 통렬하게 풍자한 것이다. 이것을 시크릿 바캉스 베스트 오브 베스트로 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촌철살인의 의미로 충분해야 함을 무한도전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상으로 끌고 가지 않고 멈추었다. 그 절제가 오히려 풍자보다 더 돋보였다. 그리고 이후 또 하나의 놀라운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야외 스튜디오라 엄청난 벌레가 이번엔 진짜로 무단 난입했는데 거기에 말벌도 있었다. 그것을 하하가 잡으려다가 그만 실패하고 말벌은 옆에 있던 유재석의 허벅지를 쏘고 말았다.

말벌에 잘못 쏘이면 대단히 위험하다는 상식은 누구나 갖고 있는데, 유재석은 다들 걱정하는 가운데에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다들 침착하시기 바랍니다 제 다리예요”하고 친친 방송을 무사히 진행되도록 고통을 참아냈다. 이후 적절한 조치를 했겠지만 평소 겁쟁이 메뚜기의 모습이 아니라 무한도전의 중추로서의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서 시청자들을 감탄케 했다. 유재석의 투혼이 담긴 “제 다리예요”를 베스트 2위에 올린다.

그런 투혼에 대한 상이었을까? 유재석은 이어 벌어진 박명수의 유원지 나이트에서 정형돈과 꼭 닮은 일반인을 발견해서 한참 동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유원지 나이트에는 스윗소로우와 유재석, 노홍철, 하하의 <못클놈> 댄스도 있었지만 이 정형돈 닮은 일반인이 주인공이 돼버렸다.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실감나게 해줬다면 비약일까? 그렇더라도 말벌에 쏘이고도 침착하게 방송을 살렸던 프로 정신은 어떻게든 칭찬해주고 싶은 장면이어서 베스트 3위로 정했다.

그런가 하면 총무를 맡은 정준하는 쓸 일만 생기고 회비를 걷어주지 않는 멤버들의 몰아가기에 종일 당하는 모습을 통해서 웃음과 재미를 주었다. 그래서 베스트에 두 개를 넣었다. 첫 번째가 중도에 들어가기 위해 티켓을 사려다가 뱃삯만 35만원이 들자 멤버들에게 돌아가면서 “중도하차”라고 소심하게 애드리브를 던진 것이 제대로 먹혔다.

그리고 닭갈비집을 나와 중도로 이동하던 중 차 안에서 쿨 가이인 척 하면서도 자기가 계속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오해받을까봐 걱정된다는 말을 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최근 레슬링 프로젝트에서 우수교보재로 쩌리짱의 신화를 재현하고 있듯이 역시 정준하는 좀 당하는 모습에서 재미있는 애드리브를 많이 만들어낸다. 그래서 정준하에게 4.5위를 주었다.

그 외에도 레슬링을 할 때 유재석, 정형돈의 쌍바위골 자막이라든가, 겨우 2시간 자고 일어나 감을 잡지 못한 멤버들 대신에 제작진이 살려준 이지비오프 애드리브 등 주옥같은 장면들이 빼곡하다. 역시 무한도전은 자막의 맛이 반은 먹여 살린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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