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 한 장과 중고 화물트럭을 바꾼다면 세상 누구라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교환이 됐다. 물론 티셔츠와 트럭을 맞교환한 것은 아니다. 세 젊은이가 전국을 돌며 생고생을 하면서 조금씩 불려가서 이룬 말도 안 되는 기적이다. 차라리 모세의 기적을 믿을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성현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진정한 복자라고 했지만 보면서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물론 방송의 힘이 적어도 반 이상은 작용했다. 아무나 티셔츠 한 장을 들고 나가서 일주일이 아니라 일 년을 돌아다닌다고 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라면 그 방송의 힘 얼마든지 남용해도 좋을 것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서 시청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남다른 탓이다.

7일간이 기적은 결코 불우이웃돕기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큰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 김제동이 갑갑한 사람이라고 욕을 했다는 PD 네 명이 이 프로를 제작한다. 흥미롭게도 그들 중 세 명이 <불만제로>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불만제로를 통해 고발하면서 우리 사회에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고민했었나보다.

김제동의 7일간의 기적 첫 주인공은 단칸방에서 삼남매를 어렵게 키우는 아버지의 작은 소망으로 시작됐다. 아이들이 셋이나 되면서도 그 흔한 컴퓨터 하나 없는 가난한 살림을 혼자 꾸려가는 아버지는 중고 화물트럭 하나만 있으면 생선행상을 해서 아이들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울 수 있겠다는 참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그것은 커가는 아이들을 위한 최소한에 불과한 소원이기도 했다.

7일간 온전히 발로 뛰어야 하기에 MC 김제동이 전부를 다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하루 만에 후딱 해치울 수도 없었다. 오프닝을 해놓고도 중간에 남해까지 다녀와야 했다. 교환원정대가 따로 있다고 해도 김제동은 최소 사나흘을 모습을 비춰야 할 것이다. 7일간의 기적의 교환활동을 위해 뽑힌 교환원정대는 중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멤버가 바뀌는 일을 겪어야 했지만 무사히 임무를 마쳤다. 이들이 처음 찾은 곳은 순천의 한 고등학교 야구부였다. 이승엽의 티셔츠니 교환하기에 가장 수월한 곳이다.

그곳부터 남해의 마늘까지가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후 교환단위가 커지면서가 첫 방송의 주인공인 삼남매의 아버지에게 더 중요하겠지만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줄 수 있는 핵심적인 내용은 아직은 너무 크지 않은 단위의 교환에서 더 크게 담겼다. 투수로 첫 등판할 때 사용했던 야구 글러브, 그것은 사회인 야구동호회의 투수로 활동하는 사람의 캠코더와 교환됐다.

그는 부친이 일찍 돌아가셔서 그 글러브를 통해 어릴 적 받지 못한 아버지의 정을 채웠다. 그 캠코더는 남해의 한 농가의 마늘 다섯 망과 바꿔졌다. 그 농가에도 아이들이 여럿 있었지만 아직까지 동영상을 찍어본 적이 없어서 아이들 엄마는 캠코더에 눈을 떼지 못했다. 글로브와 캠코더만 교환된 것이 아니라, 마음과 사연이 전달되었다.

어떤 물건을 사도 사용설명서나 제품보증서는 몰라도 거기에 사연은 있을 턱이 없다. 그것도 직접 손으로 쓴 쪽지는 교환된 물건의 의미를 더 소중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인터뷰는 계속 됐지만 그 손편지 릴레이는 마늘망에서 그쳤다. 그래서 거기까지의 교환과정이 물건의 가치보다도 더 의미 있다고 본 것이다.

7일간의 기적은 상식을 깨뜨리고 있다. 거래라 하면 보통 등가교환을 의미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7일간의 기적이 추구하는 것은 비등가 교환이다. 원시 자급자족시대의 교환에서의 가치는 서로간의 필요에 의해서 정해질 뿐이었다. 첨단 상업시대에 7일간은 원시적 교환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그만큼 순수한 거래라는 것이다. 누가 이득이고 손해고를 따질 필요가 없는 선의의 주고받음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기적의 내용이다.

이런 류의 프로그램을 보면 사람들은 흔히 "세상은 아직 살 만하구나"하고 안도하게 된다. 그러나 이 7일간의 기적이 다르고 특별한 점은 아직 살 만하다는 선행의 확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세상을 위한 사람잇기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물물교환 속에 숨겨진 7일간의 기적이 노리는 진짜 기적은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 두 사람이 서로 기대서 쓰러지지 않고 견디는 모습이 사람 인(人)자의 형상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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