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사월간지 '신동아' 8월호에서 파문을 일으킬 만 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바로 전임 축구대표팀 감독이었던 허정무 감독이 "히딩크와 후임 외국인 감독이 한국 축구를 말아먹었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허정무 감독은 외국인 감독에 대해 “까놓고 말해서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걱정해서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을 짠 게 있느냐”며 “그는 철저하게 단기적인 것에만 집중했다”고 말해 히딩크 감독이 일궈놓은 성과를 다소 폄하하는 듯 한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히딩크의 뒤를 이은 쿠엘류, 본프레레, 베어백도 다 마찬가지였다. 코앞의 성적 올리기에만 몰두했지, 밑바닥에서부터 유망주들을 발굴하려는 노력은 없었다”면서 “좀 심하게 말하면 이 사람들이 한국 축구를 말아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에 대해 축구팬들은 허정무 감독의 발언에 상당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허정무 감독은 직접 다른 언론사를 통해 "히딩크 감독이 아닌 다른 외국인 감독을 지칭한 것이었는데 왜곡 보도했다"면서 한때 법적 소송까지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허정무 감독의 발언 파문이 아직까지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알고 보니 허정무 감독의 발언이 일파만파 커진 것은 이를 실은 신동아가 다소 왜곡된 제목을 썼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원정 월드컵 16강 시조 허정무-세대 교체 실패, 히딩크가 한국축구 말아 먹었다"라는 제목을 사용한 신동아는 자극적인 제목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게 만들었고, 이를 본 다수의 일간지, 인터넷 언론들은 다른 내용은 보지도 않고 제목에만 중점을 둔 기사 전달로 허정무 감독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유언비어' 식의 기사가 퍼지면서 단순히 제목만 본 축구팬들은 당연하게 발끈할 수밖에 없었고 파문이 엄청나게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극적인 기사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던 어느 매체의 욕심이 만들어낸 제목 한 줄이 그야말로 불과 몇 시간 만에 월드컵 16강을 일궈낸 감독을 완전히 수렁으로 빠뜨리게 한 꼴이 됐습니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은 있었습니다. 차범근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서 불명예 퇴진한 뒤 월간조선과 가진 인터뷰가 바로 그랬습니다. 당시 월드컵에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차범근 감독은 그에게 '은인'인 장덕진 전 축구협회 회장의 아들이었던 월간조선 기자에게 축구계 이야기를 8시간동안 허심탄회하게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 하나도 걸러지지 않고 모두 기사화돼 승부 조작설, 정치판 같은 축구계 등 모든 것을 그야말로 '까발리는' 기사가 나왔고, 여기저기 오해를 살 만 한 '적나라한' 발언들이 나오면서 한동안 축구계를 큰 충격에 빠지게 했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 차범근 감독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면서 축구협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고, 상당한 상처를 입으면서 언론에 대한 신뢰를 한동안 저버리기도 했습니다.

언론은 정당하고 적절한 비판을 하는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소상히 밝힌 인터뷰를 자극적인 제목 한 줄로 시선을 끄는 것이 과연 '좋은 기사'인지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1천원을 주고 PDF 파일을 통해 이 기사를 본 결과 히딩크에 대한 언급이 단 2줄 정도에 불과할 만큼 적었고 전체 기사의 흐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12페이지 분량의 기사 전체 제목으로 뽑아낸 것은 조금 '의도'가 엿보이는 듯 했습니다. 기사를 보니 네티즌 악플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돼 있었지만 어쨌든 제목 하나로 허정무 감독은 그야말로 악플을 부르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됐습니다.

언론의 보도도 문제가 있었지만 허정무 감독의 발언에도 오해를 살 정도로 상당한 문제가 있기는 했습니다. 그는 외국인 감독이 코앞의 성적에만 급급했다면서 유망주들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들은 나름대로 선수 발굴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작 '결과, 성과주의'에만 집착했던 축구협회가 이들을 가만 놔두지 않았던 게 화근이 됐고, 과정보다 결과에 신경 쓴 언론 보도가 주류를 이루면서 결국 '희생양'이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움베르투 쿠엘류 감독이 월드컵까지 상당한 기간이 남았음에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불가리아 등 세계적인 강팀들과 평가전을 가지면서 차근차근 팀을 리빌딩하는 작업이 대단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으며, 핌 베어벡 감독의 포백 시스템 정착 역시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단순한 성과, 이에 따라 요동치는 냄비 여론에 떠밀려 외국인 감독들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을 뿐 이들이 남긴 크고 작은 씨앗은 분명히 세계 16강에 또 한 번 오를 수 있는 비결이 됐던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밑바닥부터 유망주를 발굴하려 안 했다'면서 노력을 아예 안 한 것처럼 발언한 허정무 감독의 태도는 조금 경솔하게 느껴졌습니다.

히딩크 감독에 대한 언급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허 감독은 "철저히 단기적인 것에만 집중했다"고 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단계별로 팀을 만들어나가면서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 허정무 감독이 키웠다고 한 능력 있는 선수들을 전면으로 내세워 실력을 다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일월드컵 몇년전까지 실업팀을 전전하던 이을용이 대표팀에 뽑혔고, 학연, 지연을 무시한 능력 위주의 대표 선발은 그야말로 현재 한국 축구가 강해질 수 있었던 초석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단기적인 것에만 집중했다는 허정무 감독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입니다.

뭐 나름대로 개인적인 생각을 쓴 것이지만 어쨌든 이번 파문은 잘못된 언론 보도와 한 지도자의 오해를 살 만 한 경솔한 발언이 복합적으로 문제가 되면서 겉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진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20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것들이 또 한 번 나타난 것 같은 기분인데요. 이제는 더 이상 소모적이고 도움이 안 되는 이 같은 자극적인 제목이 달린 기사, 오해를 살 만 한 발언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축구계 전체나 또 언론에서나 좀 더 신경 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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