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제정책을 1년 만에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보완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이다. 그런데 최근의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의는 이런 일상적 차원을 넘어 정치화된 상태다. 이게 무엇을 보여주는지,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발단은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된 이후 재계와 보수언론은 최저임금이 또 비슷한 폭으로 인상될 경우 대한민국 경제가 곧바로 붕괴할 것처럼 주장해왔다. 이런 기류는 보수세력을 넘어 관료 일반과 중도적 지향의 여당 내 일부에까지 번져나갔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임금에 부정적 영향을 줬을 걸로 예상한다고 발언하고 국회 환노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논의를 졸속으로 서둘러 끝마쳤던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을 거다.

1분기 가계소득동향 조사 결과 하위 20% 가계소득이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청와대가 긴급회의를 소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어쨌든 소득주도성장인데, 부정적 영향을 시사하는 증거가 나왔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김동연 부총리는 ‘작심 발언’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 등 정부 정책 기조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청와대 참모와 관료의 전형적 대결구도가 재현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은 기존의 노선을 유지하는 거였다. 지난달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온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발언은 그야말로 의도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정부 1년이 지나도록 혁신성장에선 아직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혁신성장에 대해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이 더욱 분발해 달라”고도 했다. 그간 논의에서 혁신성장은 김동연 부총리와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것으로 돼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전체 그림은 청와대가, 그 중 일자리 정책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경제민주화 관련은 공정거래위원장이 담당하는 그림이다. 김동연 부총리 입장에선 수모를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된 셈이다.

그러나 ‘90% 발언’의 근거가 문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출처 불명의 자료를 근거로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보수언론 중심으로 제기되자 청와대가 다시 나섰다. 일요일인 3일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발언의 근거가 된 통계자료를 공개했다. 통계청 조사의 원자료(raw data)를 한국노동연구원과 보건사회연구원이 재가공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조사 대상 가구 중 ‘근로자 외 가구’를 제외하고 1인당 소득을 대상으로 분석하면 전체의 90%에 해당하는 근로자가 지난해보다 소득증가율이 개선됐고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도 줄었다는 점이 확인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논란은 식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를 주장하는 쪽에서 보면 홍장표 수석의 설명은 ‘동문서답’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은 과도한 인건비 부담 때문에 소득이 줄고 저소득 노동자는 이들로부터 해고돼 실업 상태가 됐다는 게 회의론자들의 시각이다. 이들이 가구주인 경우 ‘90%와 나머지 10%’에 포함되지 않는 ‘근로자 외 가구’로 분류됐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 홍장표 수석의 설명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소득분배 악화 원인 및 소득주도성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개인기준 근로소득 증가율 표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전히 더 분석해봐야 할 일이고 논란이 계속되겠지만, 적어도 거듭 확인되는 것은 가장 불리한 조건에 놓여있는 계층의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여전히 크지 않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책을 지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언론은 김동연 부총리와 기획재정부가 중심이 돼 노인 일자리 사업, 근로장려세제 확대, 기초연금 인상 등을 핵심으로 하는 대책을 만들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포함시킬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과감한 대책을 모색해볼 필요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에 모든 논쟁이 집중돼버린 것은 그것 외에는 달리 소득 분배에 관한 논의를 할 거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가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치명적일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회안전망이 전반적으로 부실하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의 실업은 근본적으로 안정적 일자리가 늘어나야 해결할 수 있는데 이것 또한 현재로서는 해결 불가능한 과제이다. 경기 침체가 예고되고 있으므로 기업이 번 돈을 일자리 늘리는데 쓰지 않고, 개별화 분절화 된 상태인 노동자들 역시 노동조건의 하락 등을 감수하면서도 안정적 일자리를 지키는 데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정노동을 벗어날 수단이 없다. 이런 조건들이 ‘헬조선’을 만드는 악순환으로 귀결되고 있다.

문제 해결은 기업의 양보가 노동자들의 연대로 이어질 때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틀에서 보면 이는 사회적 대화로 시작돼야 한다. 그런데 이미 지적한대로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은 사회적 대화를 당분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노동계와의 관계 개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아울러 복지 정책에 대한 철학의 방향을 재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아동수당이나 기초연금 등을 제외하면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이들을 재편입시키는 수단으로서의 복지를 중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된 근로장려세제의 경우다. 근로장려세제는 장점이 많은 제도이지만 결국 ‘생산적 복지’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외의 복지제도는 부양의무자 기준 등 이런 저런 허점을 노출한 상태로 그저 방치돼 있다. 사람이 기본적 삶의 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권리로서의 복지제도를 확충하려면 고소득층과 기업에 대한 증세가 필요하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이런 과제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경제민주화도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현재 경제민주화는 재벌기업의 왜곡된 지배구조 개선과 ‘갑질’에 방점이 찍혀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전담하는 듯 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경제민주화를 ‘1원 1주’의 주주자본주의 원리 관철과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의 중소기업 애로사항 해소의 틀 안에서만 사고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 경제민주화가 경제 주체들의 생태계에 관한 점이라는 걸 볼 때 결국 목표는 대기업 집단과 재벌의 힘을 축소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프랜차이즈 본사와 대리점 사이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자본과 노동 사이의 문제도 중요하다. 이를테면 경영에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국정과제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명시한 바 있으나 법적 제도적 정비가 없이는 실효성 있게 추진되기 어렵다.

핵심을 찌르는, 보다 창의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논란을 통해 우리가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오직 논란만 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퇴행을 다시 반복할 것이다. 지방선거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날 분위기지만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그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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