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을 계속하며 2중대는 자신의 동료들을 묻어두고 왔던 바로 그 길 '로드 넘버원=1번국도'로 향합니다. 몇 달 전 마지막까지 남아 적과 맞서 싸우며 숨진 동료들을 가묘만으로 묻고 퇴각해야 했던 그들은 다시 그 자리에서 동료를 바라보며 작전을 수행하려 합니다.

전쟁이 만들어낸 가장 슬픈 이야기

1. 이념이 만들어 낸 참혹한 현장, 우물 무덤

북진을 계속하는 그들에게 거칠 것은 없습니다. 비록 작은 규모의 전투들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이미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연합군과 국군의 북진은 순조롭기만 합니다. 고지 탈환을 위해 시작된 전투에서 함정에 빠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중대장 장우는 소대장 태호에게 자신의 지시에 따라 퇴각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군 장교의 거짓된 증언을 따라 무모한 작전을 수행하다 잠복 중인 적군에게 부하들을 잃고 맙니다. 북한군 고급 장교를 잡으면 일계 급 특진이 이뤄지고 그렇다면 자신이 중대장이 될 수 있다는 달콤함이 그에게 무모한 결정을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 부하들을 죽도록 방치한 태호는 최악의 지휘관일 뿐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과 장우에 대한 시기심이 만들어 놓은 욕심은 결국 많은 인명피해를 불러왔습니다. 그런 태호에게 장교로서 스스로 자결하라며 총을 건네는 장우는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자신과는 달리 너무나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하는 장우에게 왜 너는 실패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지만 그건 명확하지요. 자신을 위함이 아닌 전체를 위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장우는 몸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사관 출신의 중대장이라는 불안정함이 지도력에 문제를 가져오기는 하지만 장우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친화력은 몇몇 장교를 제외하고는 충실하게 따르는 중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장교 출신의 태호가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비교되는 결단력 등은 그를 다른 부대로 전출을 꿈꾸게 합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고 장우를 중대장으로 모실 수도 없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는 없다는 판단에서이지요.

계속된 북진 중 장우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루트를 버리고 대대장에게 다른 루트를 요구합니다. 그 곳에는 까칠한 오종기 선임하사의 고향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군들 자신의 고향에 가보고 싶지 않은 이가 있을까요? 때론 악마 같은 종기도 자신의 고향에 발을 들여놓자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부인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마을 주민들은 인공기와 태극기를 양 손에 들고 누구를 환영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합니다. 전쟁으로 정신을 잃어버린 소녀 중매(?)만이 이 혼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뭔가 알 수 없지만 무겁게 내려앉은 마을에 종기의 부모나 부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피난을 가서 찾을 수 없다는 말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라진 가족들이 죽지 않은 한 남은 이웃들의 말처럼 피난을 갔을 거라는 말을 믿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게 오랜 만에 고향에서 맞이하는 하루는 그 어느 곳보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전쟁 중에 이런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특별한 공간인 이곳의 비밀은 어렵지 않게 드러나고 맙니다.

자신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을 정신이 나간 중매가 사실을 밝힐 것을 두려워해 광에 가둬두었는데, 전쟁터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온 부대원이 소녀를 겁탈하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서며 사건의 비밀을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뒤따른 태호에 의해 겁탈 전에 준매는 구해지지만 다시 한 번 겁을 먹은 그녀는 자신의 부모들이 있는 우물로 숨어들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부대원들에 대해 추궁하는 상황에서 놀란 달문은 부대원들을 우물로 이끕니다. 그리고 그 곳에 숨어있는 준매를 발견하게 되지만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그 안에는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 곳은 다름 아닌 우물 무덤이었던 셈이지요.

피난을 갔다는 종기의 부모와 부인도 모두 그 안에 묻혀 있는 것을 확인한 그가 미쳐 날뛰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현장에서 사살하려는 그를 막으며 중대장 장우는 군법 회의로 그들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비록 범죄자들을 넘기려는 과정에서 미군의 오인 사격으로 다수가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이는 오히려 의미 있는 상황을 만들어줍니다.

중대장인 장우를 싫어했던 종기는 자신을 위해, 부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본심을 알게 되며 인간적인 믿음을 얻게 됩니다. 병원 막사에서 깨어난 태호 역시 다른 부대가 아닌 장우와 함께 북진하는 길을 택하게 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난 그들은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며 전쟁의 참혹함을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2. 맛깔 나는 명품 조연들

'웰컴 투 동막골'에서 강혜정은 미친 여자 연기를 통해 자신의 연기력을 선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탁월한 그녀의 연기는 영화의 재미를 극대화해주었고 이를 통해 연기자 강혜정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는 없었죠. '로드 넘버원'에서는 강혜정과 비슷하지만 더욱 우울하고 슬픈 광녀를 연기한 황보라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만들어낸 정신병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인공기와 태극기를 양손에 들고 모두를 찬양하는 그녀의 모습은 전쟁 속에서 그 누구의 편일 수도 없는 민간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지요. 그녀의 행동과 우물 무덤은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무의미한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북한군이 처 들어와 국군과 관련된 마을 사람들을 처벌하고 그 일로 인해 또 다른 복수가 시작되고 연속되는 복수들은 낮에는 국군 밤에는 인민군이라는 웃지 못한 상황을 강요하기만 했었죠. 농사만 짓고 살아가던 순박한 사람들을 한 순간 악마로 만들어버린 전쟁의 참혹함은 종기 마을을 통해 효과적으로 잘 보여주었습니다.

결코 눈물은 흘릴 것 같지 않았던 종기가 가족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전쟁이라는 참혹함 속에서 악마처럼 변해가기는 했지만 그 역시 가족을 사랑하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음을 그는 뜨거운 눈물로 증명해 주었습니다.

여배우로서 미친 연기를 하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겁니다. 조금은 예쁘고 화려하게 나오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텐데, 더럽고 바보 같고 황당하게도 보이는 미친 연기를 그럴 듯하게 해보인 황보라의 연기는 대단했습니다. 과거의 그녀가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달리 좀 더 성숙해진 듯한 그녀의 연기는 이 후 그녀의 활동을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어수룩한 박달문의 아내 역으로 등장해 탁월한 연기를 선보였던 김여진에 이어 황보라가 보여준 연기는 단순히 얼굴만 내보이는 카메오의 개념을 넘어서 한 회를 장식하는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었습니다. 등장하는 시간과 상관없이 시청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서는 그녀들의 연기는 드라마의 완성도와 재미를 이끌었습니다.

우물 안에 있던 황보라의 모습과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전개되는 장면들은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섬뜩하게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실제 전쟁도 그렇듯 공포의 연속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니 더욱 무섭게 다가오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북한군 오만석, 국군 이천희, 여군 문채원 등이 이후에도 카메오로 등장한다고 하니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효과적인 연기를 선보이는지도 '로드 넘버원'을 보는 새로운 재미입니다.

주연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들과 함께 카메오들의 존재감 넘치는 연기들은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의외의 성과로 여겨지는 윤계상의 연기나 다른 조연들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는 전쟁 드라마의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동지들이 묻힌 고지가 보이는 강 앞에서 적들을 동태를 살피는 장우와 태호는 동일한 생각을 합니다. 강물을 건널 수 없어 묻어둔 중화기를 통해 적을 섬멸하자는 그들의 작전이 과연 성공할지는 내일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요. 매 회 전쟁이란 무엇이고 왜 전쟁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하는 '로드 넘버원'은 무척이나 소중한 드라마입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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