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회를 맞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60년 이상 작품 활동을 지속해온 아녜스 바르다의 첫 협업작이자, 바르다의 세계관과 영화 스타일이 집약된 흥미로운 영화다.

우연히 외벽에 흑백 사진을 붙이는 퍼포먼스로 유명해진 사진작가 JR를 알게 된 바르다는 그와 함께 프랑스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의 얼굴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그들이 살고 있는 건물 외벽에 사진을 붙이는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스틸 이미지

노안으로 예전만큼 사물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바르다는 늘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JR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55살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톰과 제리 같은 티격태격 케미를 보여주는 바르다와 JR은 철거를 앞둔 폐광촌, 농촌, 공장, 항만부두 등을 찾아다니며 농부, 노동자, 옛 광부들의 얼굴을 카메라로 담는다.

바르다가 JR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성장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소외된 존재들이다. 이는 노동자, 농부들뿐만 아니라 목장에 살고 있는 동물들도 예외가 아니다.

바르다와 JR은 강성노조로 이따금씩 질타를 받는 항만 남성 노동자를 찾아가 그들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지지자인 부인들의 사진을 그들이 운반하는 컨테이너에 붙이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독일군 사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노르망디 해변의 한 벙커에 수십 년 전 자신과 함께 작업했던 모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붙이며 고인이 된 그를 추억한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스틸 이미지

노안과 기력 쇠퇴로 예전처럼 많은 곳을 다닐 수 없게 된 바르다는 자신의 눈과 발을 찍은 사진을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는 화물 기차에 붙이며 세상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관찰하고자 한다.

유명하지 않아 잊혀져 간 사람들과 그들이 살았던 공간은 바르다와 JR가 찍은 사진과 외벽 전시를 통해 ‘토템’이 되고, 바르다가 만들었던 영화 속 얼굴들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거장들의 초상화 못지않은 예술 작품으로 기억된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흑백 사진을 외벽에 붙이는 작업으로 주목받는 예술가 JR의 협업을 다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오는 7일까지 열리는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간 내 상영 이후, 14일 극장 개봉으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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