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MBC every1 <무한걸스>(재방송)의 한장면이다.

<무한걸스>는 애초에 안티를 각오하고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보였다. <무한도전>이 버라이어티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지만, 이렇게 뻔뻔하게 제목까지 유사하게 지은 사례는 없었다.

더구나 대한민국 평균이하 남자 6명이 벌이는 국내 '최초' 리얼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과 다른 점은 6명의 여자가 등장하는 것 뿐이었다. 이미 국내에서 '여러번' 시도한 형식이다 보니 식상해 보였다.

예상을 깨뜨렸다. 방송 10회가 넘고보니 적어도 <무한도전> 만큼 웃긴 프로가 됐다. 성공이다. 멤버들이 각자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고, 심지어 김신영의 배치기를 한번만 당해보고 올해를 마무리 하고 싶다는 소망까지 생기게 만들고 있다.

그 뿐인가. 현재 <무한걸스>의 멤버는 송은이, 오승은, 신봉선, 김신영, 정시아, 백보람이다. 편을 갈라보자면 오승은과, 정시아, 백보람은 예쁘고 섹시해서 좋아하고, 나머지는 코미디언들이니 웃겨서 좋아할줄 알았다.

그런데 거꾸로다. 새로운 미의 장이 열리고 있다고 계속 주장하는 신봉선의 매력에 빠지고 보니 이제는 신봉선이 진짜 예뻐보인다. 성형수술도 자꾸 보니 자연스럽게 잘 된 것 같고, 타 프로그램에서 신봉선의 외모를 놀려도 왜 놀리는지 모를때가 생긴다. 자신감이 신봉선을 몇배로 예뻐보이게 만든다.

왕언니 송은이도 안정감 있는 진행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그래서 멋지고 아름답다.

송은이는 유재석과 유사한 캐릭터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유재석은 <무한도전>안에서 두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한다. 30대 중반의 겁많고 부실한 남성의 캐릭터이지도 하지만, 그는 현실세계에서 MC분야에서 1인자에 속한다. 그러니 멤버들은 유재석을 끊임없이 놀리면서도 그의 '라인'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송은이는 방송경력은 많지만 멤버들에게 '선배'이자, '언니'일 뿐이다. 송은이는 MC계에서 1인자가 아니다. 경쟁해서 뛰어넘어야 할 산이 아니라, 같이 즐길 멤버다. 이런 상황이 진행자 입장에서는 어려운 요인일수 있지만 자연스럽게 방송을 이끌어간다.

김신영도 귀엽다. 이날 방송에서 김신영은 함께 라디오를 진행하는 모델 이언이 회식자리에서 자신에게 두번이나 뽀뽀했다고 자랑했다. 타프로그램에서 그런 고백을 했다면 야유를 받았을지 모르지만, <무한걸스>안에서는 이해가 됐다. 원더걸스 흉내를 낼때면 소희만큼 귀엽다.

여자 코미디언들이 자신의 몸을 코미디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김신영처럼 '힘'을 캐릭터로 내세우는 일은 흔하지 않다. 김신영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다른 멤버들을 꿇어앉게 하고 배치기로 제압해 버린다. 김신영이 힘을 이용한 몸개그를 자유롭게 선보이면서 여자6명이 모였지만, 프로그램이 매우 동적으로 꾸며진다.

오승은과, 정시아, 백보람은 <무한걸스>안에서는 다른 세 여자들에게 밀린다. 아니 초기에는 밀렸다. 덜 웃겼고, 리액션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웃기려고 작정하자 상황이 바뀌는 중이다.

오승은은 긴장하거나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 할때마다 사투리가 툭툭 튀어나와 주변 사람들을 놀래킨다. 정시아는 생활기록부에 적힌 '융통성 없다'는 선생님의 평가가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남들보다 한템포씩 떨어지는 감각이 오히려 웃음을 준다. 인형같은 외모는 보이지 않는다. 백보람은 모델에 댄스가스 출신 코미디언이지만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춘다. 그래서 매회 웃음을 준다. 그동안 <웃찾사> 등에서 코미디 연기는 자연스럽지 못했지만 <무한걸스>안에서의 몸개그는 누구에게도 떨어지지 않는다. 주로 코를 이용한 웃음을 많이 주고 있다.

이들 여섯명이 모여 매주 새로운 과제들을 수행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들이 모여있는 것만으로도 볼꺼리를 준다. 마치 점심시간 여학교 교실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모여서 수다떨고, 일부는 거울이나 보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저렇게 활력이 넘치는 공간이다. 평범해 보이는 여학생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교실을 즐겁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김신영처럼 힘자랑으로 웃기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정시아처럼 청순한 외모를 가졌지만 엉뚱한 매력을 보여주는 친구들도 많다. 이런 점은 KBS <해피선데이> '하이파이브'와도 다른 느낌이다. 연령대도 어리고, '하이파이브'에 비해 신인급 여자 연예인들이 대부분이라 고정된 이미지가 적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무한도전>은 시청률이 1위가 되면서부터 슬슬 특유의 재미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 같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 남성들이 모였는데, 너무 많은 주목을 받다보니 어떤 연기를 해도 그들은 1등으로 보였다. 알만한 사람은 아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누구나 보고있고, 반드시 봐야 하는 프로그램이 되니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무한걸스>는 <무한도전>이 처한 딜레마로 고민할 일은 없어보인다. 6명의 여자들이 얼마나 웃긴지 알려지지 않은 편이며, 안티도 여전히 존재하는 모양이다. 서두르지 말고 한걸음씩만 나아가며 웃겨주길 빈다.

그런데 실컷 웃다보니 궁금해진다. '왜 웃긴 여자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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