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조선일보가 북핵문제에 대해 다소 누그러진 논조의 칼럼을 내놨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북핵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늘 강경한 입장을 함께했던 조선일보였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의 충격이 큰 모양이다. 자유한국당은 칼럼을 작성한 양상훈 주필의 파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31일 조선일보는 양상훈 주필 명의로 <역사에 한국민은 '전략적 바보'로 기록될까> 칼럼을 내놨다. 양 주필은 "북핵 문제를 알면 알수록 북이 핵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라며 "김정은은 대북 제재로 1~2년 안에 숨통이 막힐 지경이 돼 핵 협상에 나왔다"고 했다.

▲31일자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

양상훈 주필은 "'북에 숨겨진 핵폭탄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북은 NCND로 나올 것"이라며 "국제사회는 시간이 흐르며 북을 이스라엘과 같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취급하게 된다. 이것이 김정은이 추구하는 목표라면 상당히 현실적이고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양상훈 주필은 "이렇게 되면 한국민은 바보가 된다"면서도 "그런데 때로는 바보가 이기는 경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양 주필은 "북한 땅 전역에서 국제사회 CVID팀이 체계적으로 활동하게 되면 그 자체로 커다란 억지 효과가 있다"며 "북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될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대놓고 '서울 핵폭발' 위협은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양상훈 주필은 관계자 발언을 빌어 "북이 속이겠다고 작정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다만 한동안 도발은 하지 못한다. 그 기간에 북 정권이 어느 정도 개혁·개방해 폭력성·위험성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북에 국제 자본이 들어가면 실제 그런 효과가 생겨날 것이다. 결국 북이 무너질 수도 있다. 누가 알겠나"라고 전하며 "그렇게 되면 한국민은 전투에서는 져도 전쟁에서는 이기는 '전략적 바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양상훈 주필은 "물론 최악의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대북제재가 해제되고, 주한미군이 축소·철수·변경되고,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없게 됐을 때 '북에 핵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공개될 수 있다"며 "북이 지금과 같은 폭력 집단 자세로 한국을 깔고 앉으려 나오면 한국민은 진짜 바보가 되고 만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양상훈 주필은 "누구나 기적을 바라지만 어느 날 북핵이 싹 없어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지금 북핵 급류는 어느 굽이를 돌고 있다. 이 굽이 다음에 무엇이 기다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고비에서 시간과 역사는 결국엔 노예제 스탈린 왕조가 아니라 자유와 인권의 편일 것으로 믿을 뿐"이라고 말했다.

양상훈 주필의 칼럼은 단계별 비핵화 로드맵조차 거부하던 최근 조선일보의 북핵 대응 논조와 비교하면 확실히 누그러진 논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을 분석하고, 북핵문제 해결의 현실적 어려움까지 보수의 관점에서 제대로 짚어냈다고 판단된다.

▲홍준표 대표(왼쪽)와 강효상 의원. (연합뉴스)

그러자 자유한국당이 반발하고 나섰다. 조선일보 출신이며 홍준표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했다. 강 의원은 "조선일보의 오늘자 지면을 읽고 나서 이렇게 사장님께 공개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양상훈 주필의 칼럼을 보고 한겨레신문을 보고 있는지 깜짝 놀랐다"며 "피 흘려 지켜온 대한민국의 운명과 민족의 생존을 상대로 장난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효상 의원은 "양 주필은 칼럼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은 기적이니 북한 체제의 붕괴를 기다려보자는 주장을 폈지만,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일어나기 힘든 기적"이라며 "북한의 핵폐기는 오롯이 김정은의 의지로 가능하지만, 핵을 보유한 북한 체제의 붕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양상훈 칼럼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패배주의자들의 말장난이고 속임수"라고 주장했다.

강효상 의원은 "공교롭게도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조선일보를 협박한 이틀 뒤에 이런 칼럼이 실렸다. 관련성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건 마치 조선일보가 청와대에 백기 투항을 한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이번 조선일보 비난 논평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라며 "북미회담을 앞두고 조선일보를 겁박해서 길들여, 강력한 비판세력을 제거하려는 고도의 술책"이라고 주장했다.

강효상 의원은 양상훈 주필을 비난하며 파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강 의원은 "양상훈이 제대로 된 조선일보 기자라면 사장님께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대한민국을 지켜달라고 진언 해야 한다. 사장님이 변한 겁니까. 아니면 양상훈이 오버한 겁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양상훈이 정권과 결탁하여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입니까. 도대체 조선일보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강효상 의원은 "사실 양상훈의 기회주의적 행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며 "TK정권 때는 TK출신이라고 하다가 세상이 바뀌면 보수와 TK를 욕하고 다니질 않나, '삼성공화국'이란 괴담을 퍼뜨려 놓고도 삼성언론상을 받아 상금을 챙겼다. 박근혜, 홍준표에 대해서는 그렇게 저주를 퍼부었으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언제 인신공격을 한 적이 있었느냐"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이런 이중인격자를 두고 있으면 조선일보도 이중인격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이런 패션보수, 거짓보수는 당장 파면해야 조선일보의 명예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효상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홍준표 대표와 얘기된 것이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고 혼자 독자적 판단과 주장을 하는 사람"이라며 "홍 대표와 연결짓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홍준표 대표 페이스북. (사진=페이스북 캡처)

홍준표 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양상훈 주필을 비난하는 글을 2차례나 올렸다. 홍 대표는 "나는 30년 조선일보 애독자"라며 "오늘 조선일보 칼럼을 보니 조선일보 사주가 어쩌면 이 사람으로 바뀔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정권에 영합하지 않으면 언론도 참 힘든 세상"이라며 "조선일보의 문제라기보다 조선일보의 그 사람이 항상 문제였다"고 주장했다.

다른 글에서 홍준표 대표는 "2006년 3월 서울시장 경선 때 그 사람이 정치부장하면서 자기 고교 후배 편을 들어서 조선일보를 만드는 것을 보고 내가 정론관에 가서 조선일보가 오세훈이 찌라시냐고 극렬하게 실명을 거론하면서 항의한 일도 있었다"며 "참 끈질긴 악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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