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가 세 모녀가 모두 포토라인에 섰다. 고개를 숙인 채 변호사들이 주문한 답변만 앵무새처럼 되뇌게 되는 자리 포토라인, 이 자리에 한 가족의 세 모녀가 차례대로 선 것은 기이한 일일 수밖에 없다.

돈이 많아서 돈이 없어서;
칼레의 시민과 칼의 사람들, 한진가와 송파 세 모녀의 삶

폭언과 폭행 논란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부인 이명희는 두 번 연속 조사를 받았다. 이는 구속영장 청구를 위한 행위로 읽히고는 한다. 이명희의 경우 처벌을 원하는 피해자가 11명이나 된다는 점에서 구속영장 청구 신청은 할 것으로 보인다.

조씨 일가의 만행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태어나보니 재벌가 사람이었던 그들에게 세상은 만만했을 것이다.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것을 쉽게 얻으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자들. 그들에게 세상은 자신들을 위한 것일 뿐이었다.

KBS 2TV <추적60분> ‘비행가족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편

물컵 갑질 폭로로 시작된 한진가 몰락은 갑작스럽지 않다. 모든 것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에서 던져진 물컵은 움츠렸던 '을'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조 에밀리 리와 조현아가 포토라인에 섰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고음의 소유자인 그들의 어머니 이명희까지 기자들 앞에 서서 준비한 사과만 반복하는 모습은 기괴한 풍경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2014년 2월 송파에서 안타까운 죽음이 발견되었다. 두 딸은 병이 있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 딸들을 위해 어머니가 일을 해왔지만 부상으로 그나마 하던 일도 할 수 없게 되며 지독한 가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사망 3년 전 구청에 생활보호 복지를 문의했지만, 두 딸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단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들이 느꼈을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런 딸들을 보며 움직이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어머니. 그들의 선택은 극단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지막 가는 길에 전 재산 70만 원을 봉투에 넣고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로 유서를 대신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을 집주인에게 남긴 채 사망한 송파 세 모녀는 그렇게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세 모녀 법'이 국회에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송파 세 모녀'가 남긴 메모 [연합뉴스 자료사진]

복지는 포퓰리즘이고 국민들을 나약하게 만든다며 반대만 하는 보수정당들의 행태는 수많은 '송파 세 모녀'들을 만들어왔다. 체계적이고 섬세한 복지 정책이 준비되고 실행되지 않으면 우리는 수많은 '송파 세 모녀'들을 볼 수밖에 없다. 부산에서 반복되던 '고독사' 사건들이 이어지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 복지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너무 많이 가져서 주체하지 못하는 세 모녀와 너무 없어 세상과 작별해야 했던 세 모녀. 우린 그 극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중간이 사라진 채 마치 자석의 S극과 N극만 존재하는 듯한 사회다. 그 사라진 중간지대를 두텁게 하고 보다 안정적인 사회를 만드는 역할은 결국 정부 당국과 정치를 한다는 국회의원들의 몫이다.

재벌가 갑질과 가난한 세 모녀의 극단적 선택은 모두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이다. 재벌들의 방종을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이를 실행하는 이들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복지정책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었다면 '송파 세 모녀'와 같은 희생도 없었을 것이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은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통해 한진 세 모녀를 위시한 재벌 총수 일가 이야기를 전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중 영국 공격을 오랜 시간 버텨낸 칼레 시민들은 끝내 항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영국 국왕은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항복의 징표로 시민대표 6명을 뽑아 처형대 앞에 내 놓으라 요구했다.

[앵커브리핑] '칼레의 시민, 칼(KAL)의 세 모녀'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여기서 로댕이 '칼레의 시민'을 조각한 이유가 등장한다. 이때 스스로 끈을 묶은 채 나선 사람들은 칼레의 가장 부자와 시장, 법률가, 귀족이었다고 한다. 요행히 타인보다 무언가를 많이 갖게 된 자들의 의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때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고 한다. 칼레 시청사 앞에 있는 '칼레의 시민' 동상이 그렇게 지나는 이들과 어깨라도 스칠 듯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칼의 로열패밀리들은 최소한의 역할도 방기한 채 태어나자마자 주어진 부를 악용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국토부 차관의 딸로 태어나 이해관계가 있던 대한항공으로 시집온 이명희. 그렇게 갑작스럽게 성장한 대한항공은 재벌이 되었다.

법마저 무시한 채 무소불위 행동을 하던 그들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을'들의 반란은 당연한 것이다. '촛불 혁명' 후 시민들은 깨어났다. 임계점을 넘긴 시민들은 더는 사회적 부조리를 더는 방치하지 않는다.

여전히 사법부는 가진 자들의 편에 서 있다. 그런 사법부 역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으로 불거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강력한 '사법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사법부만이 아닌 국회와 다른 곳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사회는 시민들의 분노와 함께 조금씩 진화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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