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KBS 적폐청산 기구인 '진실과미래위원회'가 출범을 앞두고 난항을 겪고 있다. KBS 감사실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조사권한 등 세부 내용에 대한 KBS 이사들의 입장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기존 원안대로 출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KBS 이사회는 30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정기이사회를 열어 'KBS 진실과 미래위원회(이하 KBS 진미위) 설치 및 운영규정 제정(안)'을 의결사항으로 상정했다. 앞서 해당 안건은 지난 23일 이사회에 보고사항으로 상정됐으나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된 바 있다.

KBS 사옥(KBS)

이 자리에서 양승동 KBS 사장은 해당 안건에 대해 "지난 주 경영진은 이사회에 관련 보고를 드렸다. 이후 이사님들의 다양한 의견제시가 있었고, 이 의견들을 적극 반영해 법률검토를 강화했다"며 "불필요한 오해소지를 없애기 위해 안을 단순화했다. 이사님들께서 대승적 차원에서 안을 통과시켜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호소했다.

이어 양 사장은 "주지하다시피 지난 시절 KBS는 정치권력의 방송개입과 내부적 협조로 공정방송을 둘러싼 갈등이 있어왔다. 이로 인해 냉소적인 조직문화가 팽배하고 신뢰도가 크게 추락하는 등 비정상적 상황"이라며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기존 조직만으로는 이 문제를 다루기에 한계가 있어 진미위 설치가 절실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KBS 경영진의 수정안 제출에도 불구하고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는 해당 안건이 통과되지 못했다.

KBS 진미위 위원장을 맡게 되는 정필모 부사장은 "이사님들이 주신 의견을 종합해 수정안을 만들었다"며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 수정안에 따른 KBS 진미위는 방송 공정성 및 독립성을 침해한 사건에 조사를 집중,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에 초점을 두게 된다. 정 부사장은 "진미위가 무소불위의 기구처럼 비친다는 지적을 감안해 사내 비정규직 문제, 성평등 관련 문제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구에서 현안을 해결해나가도록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안에서 KBS 진미위는 진실소위, 미래소위, 성평등소위 등 총 3개 소위원회를 구성해 관련 문제들을 다룰 예정이었다. 정 부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진실소위만이 가동될 가능성이 높다. KBS 진미위의 활동기간도 기존 1년에서 10개월로 변경됐다. 활동기간 연장에 관한 사항도 1회에 한하여 최대 6개월까지로 제한됐다. 또한 진미위 의결 규정에는 특별다수제가 도입되었으며 조사 원칙에 있어 최소한의 범위에 한해 관계 법규를 준수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KBS 경영진은 기존안에 비해 상당부분 축소된 수정안을 이사회에 제출했으나 이는 이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KBS 진미위가 여전히 감사실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있으며 명백한 불법적 사유에 한해 조사를 진행할 것, 위원회 구성에 있어 다양성을 고려해 위원을 위촉할 것 등의 문구를 제정안에 포함시키자는 의견과 감사권 침해소지가 없으며 이 이상의 수정은 진미위 설치의 취지를 퇴색케 한다는 의견이 이사들 사이에서 충돌하면서 결국 다음주로 의결이 미뤄졌다.

김상근 KBS 이사장은 오는 6월 5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KBS 진미위 설치안과 관련해 모든 이사의 표결 참여를 전제로 한 '원포인트 의결'을 제안했다. 더이상 수정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이사들은 김 이사장의 제안을 수용하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권태선 이사는 "솔직히 의결 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영진이 이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수정했다"며 "또다시 회의를 연기하자는 것은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선의에 대한 배신을 당하는 느낌이다. 합의 정신으로 이사회를 운영하자는 방침에 따라 반대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들을 거쳐왔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장주영 이사는 "일부 이사분들이 안건에 대해 반대·수정을 얘기하셨지만 그 분들의 본심이 독립기구를 출범시키자는 것인지 반대를 위한 반대인 것인지 헷갈렸다"며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해 미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KBS 이사회가 자꾸만 (출범)시기를 연기시키는 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서중 이사는 "지나치게 정반대로 역행하는 느낌이 든다. 일상적 감사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일상적 조직이 그 권한을 가지고 있을 텐데 특수한 상황, 특수한 시기에 하는 것을 일상감사의 권한을 제약한다고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김 이사는 다양성을 고려한 위원 위촉에 관해서도 "이런 위원회에 다양성이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어떻게 보면 피조사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들어와 조사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영일 이사는 "바로 이 자리에서 부당징계, 부당인사를 가지고 무수히 싸웠다. 정연욱 기자 인사발령, 노조 공정방송 추진위 징계, 인천상륙작전 과다홍보와 관련한 징계, 전부 법원에서 졌다"며 "그 시기에 감사가 없었나? 만약 감사실이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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