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30일 오후 국회 제9간담회실에서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한국방송학회 주체로 <4·27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한 방송 교류와 협력>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동·서독 통일의 사례에 비춰 방송이 남북 협력에서 해야 할 역할과 과제, 공영방송 KBS가 국가기간방송으로서 해야 할 역할 등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30일 오후 3시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4·27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한 방송 교류와 협력> 세미나가 열렸다. ⓒ미디어스

"남북통일시대, 공영방송 역할 스스로 인식해야"

발제자로 나선 박주연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남북 화해국면에서 방송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박 교수는 "통일에 이르는 과정에서 방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시청자가 경험할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하고 분단의 현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방송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통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분단 사회에 이해를 넓히는 다각정 정보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북한 관련 정보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인식으로 확대되고, 서로의 독립성과 문화적 일체감 등의 상태를 완화·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주연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방송법제 통일 관련 조항을 살펴보면 방송법 5조에 공적책임, 6조에 공정성, 공익성, 33조에 민족문화 창달과 민족의 주체성 함양에 관한 사항이 있다. 또 44조에는 KBS가 민족의 동질성을 확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방송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며 "그러나 통일 관련해 구체적 역할이 무엇인지, 책무가 어떤 책무인지 그런 규정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주연 교수는 "통일부 백서에 따르면 남북 교류 사업에서 2010년 이후 언론부분의 교류 언급은 없다"며 "남북 방송 프로그램 교류나 공동제작이 중단된 이후에는 정부가 통일 방송 프로그램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과 2016년, 명견만리와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했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국내 남북 통일 관련 프로그램 10년치를 분석한 결과 실제 프로그램들이 대북정책과 대내외 요인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박주연 교수는 독일의 사례를 들며 방송이 통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조했다. 박 교수는 "통일에 있어 방송이 기여한 사례가 독일"이라며 "방송 교류를 통해 양측의 사안이 동·서독 주민 모두에게 제공됐다는 게 통일의 기반이 됐고, 통일 이후에도 분단사회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1989년 독일이 통일되는 과정에서 동독시민들이 동독 정권에 반대해 외쳤던 슬로건 '우리가 바로 국민이다'가 서독 방송의 생중계 보도를 통해 확산되면서 통일의 촉매제가 됐던 '우리가 하나의 국민이다'로 변화되며 전국으로 확산됐다"고 밝혔다.

박주연 교수는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기반으로 경제, 과학기술, 문화, 통신, 언론 등의 교류가 시작됐고, 통일될 때까지 서독 인쇄물은 동독 반입 금지였지만, 방송은 동독에 수신됐다"며 "결국 통일 이전에 서독 대부분의 방송이 전체 독일 국민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제공했고, 이들은 객관적으로 현실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박주연 교수는 "이렇게 독일 공영방송이 분단 현실에 대해 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기반은 통일에 대한 공적책무의 명시였다"며 "ARD와 ZDF는 통일 지향적 방송임무를 실제로 공적책무에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통일 이후 신문은 시장 원리에 따라 처리됐지만, 방송은 통일된 법적 규정을 기반으로 헌법적 질서 안에서 진행돼, 16개 자치구역에 11개 공영방송을 구성해 방송이 전체적인 사회 통합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박주연 교수는 "방송사 스스로 공영방송의 역할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KBS에 통일 관련 공적책무를 부여하고 이행하는 부분에 있어 다양한 국제협력과 제작역량의 범위를 넓혀 새 미디어환경에 맞는 방송교류협력을 구현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BS 평양지국 설치해야"

홍문기 한세대 교수는 급변하는 남북관계에서 KBS의 역할을 강조했다. 홍 교수는 "최근 급작스럽게 전개된 화해·협력 무드에서 통일이 된다고 하면, 커뮤니케이션 환경, 방송 환경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며 "환경을 논할 때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남북관계교류협력에 대한 합의서 16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홍문기 교수는 "이 내용과 관련해 실제로 연합뉴스는 지금 연합뉴스 평양지국을 개설하기 위해 준비위원회를 설치하고 추진 중"이라며 "이미 AP, AFP, 교도통신, 신화통신 등의 통신사들은 평양지국이 있다"고 전했다.

홍문기 교수는 "독일의 경우 동·서독 기본조약 7조에서 거의 모든 사회 전분야에 있어 교류·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고, 언론도 서로 다른 양체제에서 서로 특파원을 파견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며 "이 과정에서 벌어진 문화와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는 언론의 역할 활성화가 결국 독일 통일의 가능성을 높였던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홍문기 교수는 "그렇다면 한국의 기간방송사인 KBS는 어떠냐"며 "방송법에서 KBS는 국가기간방송사로 명시돼있고,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실현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또한 대외방송, 사해교육방송을 하게 돼있다. 그런데 KBS에는 이런 부분을 찾기가 어렵다. 제가 말한 법조항은 아무리 봐도 통일이라든가 남북관계 개선이라든가 남북관계 개선이라든가 한민족 내에서의 화해·협력을 부각시키기 위해 방송사가 어떤 내용을 해야 하는지 명시가 안 돼있다"고 지적했다.

홍문기 교수는 "KBS가 통일시대를 준비하고 남북 화해·협력에 앞장서야 한다. 해외언론이 주도적으로 통일문제를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정보 제공자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KBS 평양지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홍 교수는 "KBS 평양지국 설치하는 것 자체가 KBS의 국가기간방송사로서 책임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동·서독 통일에서 배울 점, "저널리즘 원칙에 입각한 보도"

토론자로 나선 김영욱 카이스트 교수는 "(판문점 선언은) 우리에게 큰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한다. 이전에 가져보지 못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며 "그럼에도 옆에서 흔들고 발로 차고 이간질하는 듯한 그런 세력과 언론을 보면 굉장히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느나라 정치인이고 어느나라 언론이냐"고 지적했다.

김영욱 교수는 "동·서독과 남·북한은 매우 다르다. 가령 동독은 대부분 지역에서 주민들이 자유롭게 서독의 텔레비전을 시청했고, 이미 바이마르공화국 때 민주주의를 경험한 사회다. 서독의 공영방송은 완전하지 않지만 굉장히 정치적 독립성을 꾸준히 지켰다"면서도 "이런 차이에도 독일 통일과 언론의 역할에서 배울 것이 몇 개 있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보도, 저널리즘 원칙에 입각한 보도"라고 강조했다.

김영욱 교수는 "동·서독 통일이 방송 때문이라고 하면 저는 '아니다'라고 답하겠다. 그러나 속도와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물론 모두 긍정적인 건 아니다. 지금도 동·서독 앙금이 남아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서독 언론인이 통일을 지향한 것도 아니다. 서독도 통일과 멀어진 사회였다"며 "정치적 통합을 통일이라고 보면 서독의 공영방송은 통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영욱 교수는 "그들은 저널리스트로서 기본적인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동독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확하게 보도하려고 했다"며 "동베를린에 상주했던 공영방송인들은 동독 주민도 시청자라고 생각하고 취재아이템을 선택하고 보도했다. 동·서독의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갈등의 요소를 배제하거나 신화적 요소를 강조해 보도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김영욱 교수는 "남북한에 대한 보도가 북한 주민들의 태도형성에만 중요한 것도 아니다"며 "남한 주민들의 북한에 대한 이미지 형성에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한을 희화화하거나 불쌍한 존재, 악마로 묘사하는 미디어를 보면 걱정스럽다. 남북 화해와 협력이 주는 기회를 보기보다는 북한을 귀찮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생각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김영욱 교수는 언론이 최근 한반도 정세에 대해 장기적 안목에서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극적 상황이 전개되면 언론은 신속하게 보도한다"며 "그러다보면 그 사건 속에 매몰되고, 대중의 관심과 의견에 편승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동·서독도 마찬가지였다. 서독언론은 동독 주민을 자유의 투사로 묘사하고 격려했다. 그런데 통일이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현실이 정말 현실화 되자 동독주민들을 물질적 풍요를 위해 움직이는 주체로 묘사하기도 했다"며 "어쩌면 동·서독 통일이 서독이 동독을 점령하는 형태로 이뤄진 게 이런 보도도 한몫 했다고 추측한다"고 말했다.

김영욱 교수는 지속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보도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남북문제에 관련한 주요 현안이 발생하면 스튜디오에 북한 전문가 여러명이 앉아 해석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에 KBS 기자가 좀더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KBS기자가 3~4명 있고, 북한 전문가 한 명을 초대하는 거다. 북한에 문제가 있을 때 KBS의 해석이 전세계에 인용되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욱 교수는 북한에 특파원을 파견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KBS나 연합뉴스가 지국을 세우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정부가 이런 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상당한 협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우정 계명대 교수는 기술적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최 교수는 "서독 방송을 동독의 주민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방송 방식이 같아서였다"며 "지금 우리는 북한과 다른 방송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공동제작을 하고 남북한에 전송할 수 있는 소재가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우정 교수는 서울과 평양의 교류만 주가 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황해도, 함경도도 있는데 왜 서울과 평양의 문화만 주가 되는 거냐"면서 "전체 교류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하나는 디지털화되는 시점에 우리 방송법을 어쩔거냐의 문제도 있다. 통합방송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이 방송인가가 공론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남북통일이 되면 어떤 방송이 되느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