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그전에 우리 스스로를 놀라게 했던 촛불혁명이 있었다. 촛불에 정치권은 놀랐고, 언론도 반성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적폐의 본질은 그리 쉽게 달라지지 않는 법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가장 먼저 벌어진 상황은 시민 대 언론의 전쟁이었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당시 두 손 모아 권력에 공손한 태도를 보였던 언론의 문재인 정부를 향한 오만한 자세가 원인이었다.

‘김정숙 씨’ ‘덤벼라 문빠’ ‘좌표 찍고 개떼처럼’ 등으로 기억되는 언론의 오만함은 시민을 분노케 했다. 결국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던 언론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시민들은 믿지 못하겠다고 했고, 경계를 풀어서는 안 된다고 서로를 다그쳤다.

이후 소위 적폐언론이라 불리던 방송사들의 ‘정상화’가 시작되었다. 방송사들의 반성은 더욱 적극적이었고, 절실해 보였다. 적어도 방송사들은 ‘공정보도’ 하나만은 꼭 해낼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잠시, ‘도로 예전’으로 돌아갔다는 말이 공공연한 것이 또 요즘이다.

정치 보도 공정성에 관한 세계 각국의 긍정 평가 비율 [퓨리서치센터 웹사이트 캡처]

일부에서는 문재인 지지자들의 극성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라는 말도 있다. 그럴까? 근래 한국 언론에 대한 의미 있는 두 가지 조사가 있었다. 하나는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였고, 다른 하나는 언론의 공정성 순위였다.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보다 20계단이나 오른 43위를 차지했다. 아직 최고의 수준이라고 할 수 없지만 언론자유는 한 해 만에 무척 좋아졌다. 그렇다면 보도의 공정성도 함께 좋아졌을 거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한국 언론의 공정성과 신뢰도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세계 38개국의 시민들을 상대로 한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최하위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설문 참가자가 '언론이 정치 보도를 공정하게 잘한다'고 답한 비율을 보면 한국은 27%로 38개국 중 37위였다.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언론들의 심각성이 두드러진 것은 대북관계 및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에 대한 오보와 왜곡 보도였다. 사소한 번역 오류부터 시작해서 신뢰할 수 없는 취재원을 통한 왜곡 보도는 자주 논란이 되었고, 언론의 신뢰를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속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유례없는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있다. 분단 73년 만에 북한의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넘어왔고,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큰 목표를 설정했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도 우여곡절을 극복하며 추진되고 있다.

북한은 약속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했지만 TV조선의 오보가 계속 터져 나왔다. 북한이 비자에 1만 달러를 요구했다든지, 풍계리 핵실험장을 파괴하지 않고 연막탄을 피웠다는 등의 명백한 오보들이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참다못해 29일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의 논평이 나왔다. “언론보도가 위태로움을 키우고 있다”면서 조선일보와 TV조선을 분명하게 지목했다. 최근에 가장 문제가 된 것이 조선일보와 TV조선일 뿐 나머지는 괜찮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일부 매체들도 적잖게 남북 해빙의 분위기를 해치는 무책임한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언론에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침묵이나 찬양이 아니라 사실 보도에 불과하다. 도와달라는 말이 아니라 훼방 놓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감시의 수준을 넘어 방해하는 수준의 무책임한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것이다. 높아진 언론의 자유는 보도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라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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