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를 사찰하고 청와대와 모종의 재판거래를 하려 한 정황이 발견돼 파장이 일면서 법원 내부에서도 판사 긴급회의가 잇따라 소집되는 등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류영재 춘천지방법원 판사는 강제조사권이 없는 특별조사단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조사를 하지 못했다면서도 특조단이 이를 보고서에 정확히 적시하지 않아 마치 임종헌 전 법원행정 차장이 모든 일을 한 것처럼 보고서가 작성됐다고 지적했다.

류영재 판사는 30일 MBC라디오'이범의 시선집중'과의 통화에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이 내놓은 조사 결과가 특조단의 한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강제조사권이 없는 특조단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 처장 등 당시 핵심 지휘라인에 대한 조사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류 판사는 "사실상 총괄책임자였던 법원행정처의 수장, 혹은 사법부 수장인 두 분에 대해 조사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건 조사상 큰 한계"라면서 "특히 조사보고서에서 그런 한계를 드러냈어야 했는데, 이런 부분들에 대해 정확하게 적시하지 않아 마치 그분들의 지시나 보고는 없었고 임종헌 전 차장 혼자서 다한 것처럼 (특조단)보고서가 작성됐다"고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법원행정처장은 특조단의 조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판사는 "조사보고서를 보면 우병우 전 민정수석 카운터파트너는 박병대 전 처장으로 생각했다는 문헌이 나온다. 또 임종헌 처장이 자기가 알고 있는 사안을 심의관에게 보고서를 넣으라고 지시한다"며 "자기가 보고 받으려고 하는 보고서에 자기가 알고 있는 걸 굳이 쓰라고 지시하진 않는다. 더 위에 분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서 작성한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류 판사는 특조단이 '블랙리스트'의 개념을 변형했다고 꼬집었다. 특조단은 이번 조사보고서에서 판사에 대한 사찰은 있었지만 이것이 실제 인사 불이익 조치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블랙리스트'가 아니라는 결과를 내놨다.

류 판사는 "처음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이 불거지면서 '블랙리스트'라는 말이 사용 됐을 때 그 의미는 판사 뒷조사 파일의 존재여부였다"며 "1차 조사위원회 조사보고서에서 소위 '블랙리스트' 개념을 판사 뒷조사 파일의 존재여부라고 적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류 판사는 "2차 조사 때 블랙리스트 존재 사실이 확인 됐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이 '블랙리스트는 인사상 구체적 불이익 조치가 필요하다'고 개념을 바꿔버렸다"며 "왜 특조단이 '블랙리스트'의 의미가 판사 뒷조사 파일의 존부였음을 알면서도 일부 언론이 뜻을 바꿔 버린 것처럼 개념을 바꿨는지 굉장히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일례로 조선일보는 지난 28일자 사설 <'판사 블랙리스트' 괴담 만든 판사들 '아니면 그만'인가>에서 "판사 블랙리스트를 조사해온 법원이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25일 발표했다. 전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진보 성향 법관 모임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기 위해 문건을 만들었다는 의혹이 근거 없다고 결론이 난 것"이라며 "판사 블랙리스트는 처음부터 '괴담'에 불과한 것"이라고 했다. '인사 불이익 여부'로 블랙리스트 개념을 축소한 조선일보는 해당 사설에서 2차 조사에서도 리스트가 나오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한편, '사법 농단'으로 불리는 이번 사건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조단 조사결과와 관련해 29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가정법원 등에서 단독 판사회의가 잇따랐는데 일각에서는 6월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의견이 법관들 사이에서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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