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말을 가볍게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소득분배 악화는 우리에게 매우 아픈 지점”이란 말에는 쉽게 다루기 어려운 무게감이 있다. 이 말에 담긴 문재인 대통령의 진심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진심과는 별개로 경제 정책과 관련한 바람직하지 않은 신호가 계속해서 감지되는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경제정책의 성과를 돌아보는 회의를 긴급하게 소집한 것은 이 ‘바람직하지 않은 신호’ 때문이다.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 가계소득이 1년 전보다 8.0% 감소했다는 등의 통계청 조사결과가 나오자 보수언론 등은 소득주도성장에 그야말로 집중포화를 쏟아 붓고 있는 상황이다. 애초 청와대는 이 회의를 ‘긴급경제점검회의’로 명명했지만 당일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로 바뀌었다. 아마 ‘긴급경제점검’이란 단어의 어감이 위기론을 기정사실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 아닌가 한다. 그 정도로 최근 보수언론의 공세가 심상찮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 부처 장관들과 청와대 참모들은 2시간 30분 동안 난상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장하성 정책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은 소득분배 악화의 원인을 노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서 찾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지만 김동연 부총리 등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원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청와대와 김동연 부총리가 최근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전에도 드러난 바 있다. 청와대가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 주장에 근거 없다는 설명을 하는 와중에도 김동연 부총리가 국회에서 ‘직관과 경험’을 근거로 들며 최저임금 인상에 신중할 것을 사실상 주장한 것이다.

이런 구도는 무엇을 의미할까? 청와대와 관료 사이의 이견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집권 2년차 증상으로 볼 수도 있다. 집권 초기에는 주요 공약을 실행하는 등 정권에 우호적인 정치 환경을 조성하는데 관료들이 전폭적으로 협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관료적 관성으로 현안을 대하는 시점이 오기 마련이다. 이 시기 대통령은 자신이 제시한 비전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지 않아 초조한 상태이다. 이런 마당에 관료가 제시하는 현상유지에 가까운 해법을 받아들게 되면 개혁의 동력은 사라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를 경험해봤으므로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회의의 결론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3대 경제정책기조를 유지하되 하위 20% 소득분배 악화 해소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 되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주도성장론에 계속 무게를 싣기로 했다면 그것은 잘한 결정이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론의 동력이 유실되고 있는 상황 자체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여민1관 소회의실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관련 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장 7월이면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대해 29일 “OECD 국가 연평균 노동시간보다 300시간 이상 많이 일해 온 우리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과로에서 벗어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저녁 있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우리 사회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론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오히려 사용자 입장에서는 생산성 감소를, 노동자 입장에서는 소득 감소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보수언론은 이 대목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며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오히려 노동자가 투잡을 선택해 경제적 혼란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지금으로서는 일단 과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 주체들에 끼칠 심리적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런 심리 상태가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소득이 늘거나 분배가 개선되는 등의 긍정적 신호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봤듯이 그런 신호는 없다. 아마도 보수언론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자마자 체제 붕괴가 임박한 듯 호들갑을 떨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 이미 취약해진 관료라는 지지대가 정권을 지탱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런 난국에 최저임금법 개정까지 더해보면 상황은 더 암울해진다. 고용노동부는 29일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연소득 2천5백만원 이하 노동자 중 최대 21만6천명의 기대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회 환노위가 연소득 2천5백만원 이하 노동자는 피해를 입지 않는 선에서 합의했다고 밝히고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나 김태년 정책위의장 등이 같은 의미에서 “전혀 피해가 없다”고 장담한 것과는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물론 21만6천명이라는 숫자는 연봉 2천5백만원 이하 노동자 중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받는 324만명의 6.7%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고용노동부는 이 모델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 가지 맹점이 있다. 첫째는 이마저도 추정치에 불과하지 정확한 현실을 반영한 수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에서 지급 총액이 같은 경우 상여금을 월별로 쪼개는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으므로 이 숫자는 앞으로 늘어날 거라는 점이다. 셋째는 노동자들의 개별적 삶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21만6천명이라는 숫자조차 결코 적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의 계산법을 고안해 낸 주체 중 하나인 고용노동부 계산으로도 21만6천명이 불이익을 보는 이상 민주노총 등 노동운동단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전형적인 귀족노조론을 제기하며 민주노총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말대로라면 각 사업장의 강성노조들이 임금협상에서 알아서 다 손해를 만회할 것이므로 민주노총이 이렇게 나설 이유가 없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법 개정은 앞으로 임금체계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크고 이러한 사실 자체가 노동자들을 개별화 분절화하고 고립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이다. 최저임금법 개정을 임금구조 단순화의 계기로 삼자는 의견도 있지만 오히려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동일산업 내 임금구조의 표준화는 더 어려워 질 것이다. 당장 노동자들끼리 합의하기가 어렵다. 성과연봉제 도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상기해보라.

소득주도성장의 전제 중 하나는 사회적 대화의 제도화이다. 정부가 갖고 있는 수단으로 개별 노동자들의 소득을 증대시키더라도 소비와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에 이르기 위해서는 각 경제주체별 합의와 양보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권력이 자본에 기울어져 있는 상태에서 사회적 대화는 노동조합에 힘을 실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최저임금법 개정이 노동조합 쪽에 주는 신호는 그 반대이다.

양대노총이 모든 노동자를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을 빼고 사회적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최저임금 개정은 그 가능성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모든 상황이 좋을 때에는 특히 민주노총의 반발 정도는 무시해도 좋은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앞서 봤듯이 전반적인 상황이 그렇지 않다. 이런 난국 속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신실하게 추진하려면 기성의 관료적 해법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노동계와의 관계 복원을 시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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