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던 축구대표팀 차기 감독으로 조광래 경남 FC 감독이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축구협회는 21일, 기술위원회를 열어 이미 추려낸 5명의 후보군 가운데 1명을 축구대표팀 감독 우선협상자로 선정할 예정이며, 이 가운데 유일하게 고사의 뜻을 밝히지 않은 조광래 감독이 차기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만약 조광래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할 경우, 허정무 감독에 이어 국내파 감독이 축구대표팀을 맡게 되며 한 달 가까이 이어진 축구대표팀 감독 공석 사태도 어느 정도 마무리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 차기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유력한 조광래 경남 감독 ⓒ연합뉴스
일단 조광래 감독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비교적 높습니다. 소신을 갖고 팀을 운영하면서 이미 능력 면에서는 검증을 받은 지도자로 명성을 높여왔기 때문입니다. 이미 안양 LG(현 FC 서울) 감독 시절부터 유소년 시스템을 도입해 이청용 같은 명망 있는 선수들을 키워낸 바 있고, 현재 경남을 맡으면서도 무명 선수들을 데리고 반란을 일으키다시피 하면서 3년 만에 정상권 팀을 키워낸 것은 충분히 지도자로서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카리스마 있게 팀을 이끌면서 스타 선수에 의존하기보다 벤치 멤버들까지 골고루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또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들을 더욱 가치 있게 여기는 것 또한 선진 축구 도입의 가능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현대 축구의 흐름을 국내파 감독 가운데서도 손에 꼽을 만큼 잘 알고 있고, 틈만 나면 해외에 나가 '공부하는 지도자'로서 명성을 쌓은 것은 이전 국내파 감독과도 차별화되는 부분입니다. 이런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을 맡는다면 분명히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국 축구에 많은 것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되고, 또 감독 개인에게도 첫 도전으로서 부담감도 있겠지만 의미 있는 도전으로 다가와 팀이나 감독 개인에게나 모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변수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과연 조광래 감독이 현 소속팀인 경남 FC 감독직을 겸직하느냐 아니냐를 놓고 기술위원회가 어떤 의견을 낼 지 여부입니다. 지난 1990년대 초반,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제가 도입된 이래로 축구대표팀 감독은 무조건 K-리그 감독직을 떼고 선임을 해 왔습니다. 박성화 감독이 부산 아이파크 감독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올림픽팀 감독에 내정되면서 곧바로 자리를 박찼을 때 부산을 비롯한 K-리그 팬들은 상당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던 전례가 있습니다. 현재 K-리그 감독을 맡고 있는 사람을 빼가는 것이 다소 모양새가 그렇기는 하지만 조광래 감독의 경우, 이전 감독들과는 사정이 좀 달라 기술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관심이 모아집니다.

현재 조광래 감독은 경남과의 계약이 3-4개월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8년 박항서 감독 후임으로 내정돼 어리지만 능력 있는 무명 선수들을 키워내면서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별칭이 나올 만큼 경남팀에 상당한 애착을 가졌던 조광래 감독은 뭔가 성과를 내고,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합니다. 그래서 K-리그가 끝나는 11월까지는 현 소속팀 경남에 마지막까지 남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K-리그 감독과 국가대표 감독을 3-4개월간 겸직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될 경우 나름대로의 장단점은 있습니다. 선수 차출 문제에 대해 중간자 역할에 서서 어느 정도 조율이 가능하고, 국가대표 뿐 아니라 K-리그도 함께 발전하는 '상생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면에서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안컵이라는 대륙별 메이저대회가 내년 1월로 코앞에 다가온 가운데서 집중적으로 팀을 맡아 이끌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극명하게 엇갈리는 장단점에 대해서 과연 기술위원회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다 할 후보군이 없는 가운데 사실상 조광래 감독만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감독이 요구하는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조화로운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따라 새로운 조광래 감독 체제의 출발이 좋게 나갈지, 삐걱될지 결정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을 보고 팀을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조광래 감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조광래 감독에게 K-리그 감독 겸직 기회를 줘서 개인에게는 유종의 미를, 협회 입장에서는 '리그 감독 빼가기'라는 비아냥도 듣지 않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렸으면 합니다. 소신 있는 지도자가 '무명 팀'을 3년 만에 리그 정상권 성적을 내고 국가대표팀 감독에 오른다면 이만한 명분과 실리도 없을 것이고,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까지 이뤄낸 한국 축구에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단기적인 생각, 국가대표가 우선시되는 제왕적인 사고방식보다 능력 있는 지도자와 동등한 관계에서 기회를 주고 더 나아가 K-리그와 국가대표가 상생하고 배려하는 '보기 좋은' 모양새를 보여준다면 한국 축구에도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소신 있는 지도자'에 대한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소신 있는' 결정을 한 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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