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하나 따져보면 어쩔 수 없는, 납득이 가는 선택이기는 했습니다. MBC에서 무한도전과 놀러와, KBS에서 해피투게더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일요일 저녁 예능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SBS 밖에 없었으니까요. 위기의 일밤으로 그의 방향을 돌리기에는 세 방송사 사이에서의 균형이 한꺼번에 MBC쪽으로 쏠리게 되어 버릴 것이고 그에게 연속으로 연예대상을 안겨 주었던 SBS와의 의리도, X맨 시절부터 쭉 함께 해왔던 SBS 일요일 저녁의 인연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겠죠.
SBS의 일요일 예능에서 그가 지속적으로 보여준 유재석의 이미지는 듬직한 진행자인 동시에 늘 만만하고 까불거리는 막내 동생으로서의 가벼움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번 런닝맨에서도 마찬가지이구요. 무한도전에선 기대하고 의지할만한 독보적인 1인자로서 기능하고 있고, 박명수와 중심 콤비를 맞추는 해피투게더에서는 늘 그의 파트너의 단점을 지적하며 웃음을 유발시키는 우위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망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안정적이고 차분한 진행을 보여주는 놀러와에서는 더더욱 그렇구요.
당연히 위험요소는 있습니다. 어쩌면 치명적인, 극복하기 힘든 런닝맨의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하구요. 1회 때 그런 유재석의 낮아짐을 능숙하게 받쳐주던 초특급 게스트, 이효리가 있을 때는 자연스럽던 모습이 이런 보조자가 하하나 지석진, 혹은 김종국으로 바뀌면서 기본적으로 국민 호감인 그를 괴롭히는 상대방을 가뜩이나 긍정적이지 못한 이들의 이미지를 더더욱 비호감으로 만들 위험이 보이더군요. (그만큼 천하의 유재석도 자연스럽게 장난꾸러기로 만들어주는 이효리의 존재감과 예능감은 무시할 수 없어요.) 런닝맨의 성공여부는 식상한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게임들만큼이나 과연 어떤 멤버가 유재석을 편안하게 망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느냐의 여부일겁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은 유재석에서 출발해서 마무리되는 것 일 테니까요.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의 멤버들 중에서 그런 영혼의 파트너를 찾기엔 유재석이 메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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