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아쉬운 결정이기는 했습니다. 침체되어 있는 일밤의 구원투수로서 가장 적합했던 사람은 역시 유재석이었거든요. 무척이나 이기적인 바람이기는 했지만 역시 곤란한 상황에 놓여져 있던 그의 절친 김제동과 함께 일밤의 부활 선봉에 나서는 다소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으니 그의 SBS 복귀는 여러모로 아쉬웠어요. 이른바 유라인이라 불리는 그의 절친들로 구성된 런닝맨의 멤버들 면면을 보고 그런 맘은 더욱 커졌구요. 아무리 익숙한 조합이라고는 하지만 김종국이나 하하, 혹은 개리나 광수 같이 멤버들 하나하나의 면모들은 유재석 하나가 책임지기엔 너무나 버거운 비호감과 예능 초보들로 득실거렸거든요.

뭐 하나하나 따져보면 어쩔 수 없는, 납득이 가는 선택이기는 했습니다. MBC에서 무한도전과 놀러와, KBS에서 해피투게더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일요일 저녁 예능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SBS 밖에 없었으니까요. 위기의 일밤으로 그의 방향을 돌리기에는 세 방송사 사이에서의 균형이 한꺼번에 MBC쪽으로 쏠리게 되어 버릴 것이고 그에게 연속으로 연예대상을 안겨 주었던 SBS와의 의리도, X맨 시절부터 쭉 함께 해왔던 SBS 일요일 저녁의 인연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겠죠.

하지만 이런 방송 외적인 배경은 다 제외하더라도, 그의 신작 런닝맨을 2주 동안 시청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유재석이 무척이나 똑똑한, 자기의 이미지 관리와 분산이 굉장히 좋은 진행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무려 4일, 그것도 매번 비슷한 파트너들과 방송에 등장하면서 1인자의 자리를 4년이 넘는 시간을 지켜온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히 갖춰야 하는 장점이기도 하구요. 바로 같지만 같지 않은, 매 프로그램마다 유재석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면모들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식상함 방지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이죠.

SBS의 일요일 예능에서 그가 지속적으로 보여준 유재석의 이미지는 듬직한 진행자인 동시에 늘 만만하고 까불거리는 막내 동생으로서의 가벼움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번 런닝맨에서도 마찬가지이구요. 무한도전에선 기대하고 의지할만한 독보적인 1인자로서 기능하고 있고, 박명수와 중심 콤비를 맞추는 해피투게더에서는 늘 그의 파트너의 단점을 지적하며 웃음을 유발시키는 우위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망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안정적이고 차분한 진행을 보여주는 놀러와에서는 더더욱 그렇구요.

그래서 그에게 SBS의 일요일은 마음껏 망가지고 우습게 보이고 철없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유재석이 처음

당연히 위험요소는 있습니다. 어쩌면 치명적인, 극복하기 힘든 런닝맨의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하구요. 1회 때 그런 유재석의 낮아짐을 능숙하게 받쳐주던 초특급 게스트, 이효리가 있을 때는 자연스럽던 모습이 이런 보조자가 하하나 지석진, 혹은 김종국으로 바뀌면서 기본적으로 국민 호감인 그를 괴롭히는 상대방을 가뜩이나 긍정적이지 못한 이들의 이미지를 더더욱 비호감으로 만들 위험이 보이더군요. (그만큼 천하의 유재석도 자연스럽게 장난꾸러기로 만들어주는 이효리의 존재감과 예능감은 무시할 수 없어요.) 런닝맨의 성공여부는 식상한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게임들만큼이나 과연 어떤 멤버가 유재석을 편안하게 망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느냐의 여부일겁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은 유재석에서 출발해서 마무리되는 것 일 테니까요.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의 멤버들 중에서 그런 영혼의 파트너를 찾기엔 유재석이 메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워 보여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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