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조선일보가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을 색깔론에 악용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백범 선생의 모든 가치 기반인 '민족'은 무시한 채 '자유', 아니 '반공'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29일자 조선일보에는 <'자유주의자' 白凡이 꿈꾼 나라> 칼럼이 게재됐다. 이 칼럼에서 조선일보는 백범 선생이 공산주의자들과 끊임없이 투쟁해왔으며,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고 했다. 그러나 백범 선생의 모든 가치판단 기반에 '민족'이 있었다는 사실은 쏙 빠졌다.

▲29일자 조선일보 칼럼.

이 칼럼에서 조선일보는 "백범은 요즘 좌파 진영이 통일 운동의 원조로 떠받드는 아이콘"이라며 "백범을 존경하는 지도자로 손꼽고 무슨 일만 있으면 백범기념관에 몰려가 기념행사를 벌인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들이 과연 백범의 독립 투쟁과 정치 이념을 제대로 들여다봤는지 의문"이라며 "백범의 이력 대부분은 소련을 이념의 조국으로 삼은 좌파 공산주의자들과 벌인 투쟁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치 현재 진보진영의 인사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식이다.

조선일보는 "백범이 어떤 이념을 지향한 정치가였는지는 1947년 11월 발표한 '나의 소원'을 읽으면 한눈에 알 수 있다. 백범은 '일부 소위 좌익의 무리는 혈통의 조국을 부인하고 소위 사상의 조국을 운운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라며 분개한다"며 "열 쪽 남짓한 짧은 글에서 백범은 '자유'란 단어를 서른 번 넘게 써가며 공산당 계급독재에 반대했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백범이 떠난 지 70년 가까운 요즘, 이 정부에서 만드는 역사 교과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삭제하고 북한 세습 체제 비판도 금기시한다"며 "교육부는 익명의 '전문가'에게 자문했다면서 '자유를 빼도 민주주의 기술에는 문제가 없다'고 변명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백범은 '나의 소원'에서 '좋은 민주주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썼다"며 "소련식 민주주의를 혐오했던 자유주의자 백범이 다시 살아온다면, 이 정부의 비뚤어진 교과서로 현대사를 배울 아이들을 보고 기가 막혀 분통을 터뜨릴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백범 선생이 독립운동과 함께 공산주의자들과의 투쟁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백범 선생의 모든 가치의 기반에 '민족'이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나의 소원'의 "일부 소위 좌익의 무리는 혈통의 조국을 부인하고 소위 사상의 조국을 운운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라는 부분은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혈족이란 말을 수차례 반복하는 모습은 백범 선생이 공산주의자들을 반대했던 이유가 '민족'을 경시했기 때문임을 정확히 보여준다.

조선일보는 백범 선생이 자유를 30번 넘게 쓰며 공산당 계급독재를 반대했다고 전하면서, 그런데 정부의 역사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빠진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원론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한반도 분단의 상황에서 만들어진 냉전의 상징과 같은 단어다.

개헌 논의 과정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빼느냐를 가지고 정치권이 색깔 공방을 벌인 적이 있다. 사실 한국 헌법에서 자유는 이미 수차례 언급되고 있다. 헌법 전문에만 3차례, 헌법 전체에 21차례 언급되며, 국민 기본권에서의 자유 언급은 특히 많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라는 냉전적 가치를 담은 단어를 유지하려는 수구세력의 의도가 의심이 될 지경이다.

또한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는 교육과정 전체에 이미 반영이 돼 있다. 오히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결이 다른 얘기를 제대로 분리해 가르치지 않을 경우 학습과정에서 혼동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는 과거 반공교육의 산물로 공산주의의 반대개념을 자본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로 생각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백범 선생이 비뚤어진 교과서로 현대사를 배울 아이들을 보고 '기가 막혀 분통을 터뜨릴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백범 선생이 기가 막혀 분통을 터뜨릴 것 같은 대상은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조선일보의 보도일 듯하다.

백범 선생은 광복 후 강대국들에 의해 한반도가 반으로 쪼개지자, 평양을 방문해 자신이 반대하던 공산주의자 김일성을 만나기까지 했던 인물이다. 무엇보다 민족을 우선시했단 얘기다. 그런데 지금 조선일보의 보도를 보자. 남북 정상회담을 폄하하고,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보팔이에 나서고, 전쟁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아직도 이념적 대결 분위기를 조장하며 민족의 화해를 가로막고 있다.

백범 선생이 조선일보 보도를 본다면 기가막혀 분통을 터뜨릴 것 같다. 조선일보가 보수 가치를 지향하는 언론이라면 민족이란 가치에 대해 재고해봄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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