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온 음반 100만장 판매량. 그것은 DJ DOC만의 일은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활동했던 때의 유명한 가수라면 한 해에 몇 명은 그렇게 진정한 골든디스크를 받을 판매량을 기록했다. 아니 그만큼 음반을 사주는 대중이 존재했다. 그때와는 달리 음원이 음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러모로 그 규모가 줄었음은 어림짐작으로 대충 셈이 나온다.

그런 아쉬움을 확인하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그보다 더 아련하게 다가온 것은 어쩌면 그들이 마지막이 아닐까 싶은 모습이 있었다. 90년대를 풍미한 그룹치고는 이들은 결코 넉넉지 않은 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은 익히 아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속고 이용당한 결과라 절대로 그 과정을 미화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들은 ‘음악만 해야지 돈은 몰라야 한다’고 굳건히 지켰던 그들의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은 이후 누구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까 싶다.

지금 갓 20대라면 실감하기 어려워서 예능 프로의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이하늘과 김창렬을 생각하겠지만 90년대 이들의 인기는 그들이 밝힌 대로 최강 아이돌 HOT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동시에 이들은 가요계에서 내놓은 악동들이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그들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것들이 걸러져 통념에 길들여지지 않는 어떤 순수함의 한 표현으로 기억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90년대 나는 가요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들의 노래 몇 곡은 피하지 못하고 자주 입에서 흥얼거려야 했다. 개인적인 베트스 오브 베스트를 꼽으라면 단연코 <DOC와 춤을>이다.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아요 이히”하는 가사와 경쾌하면서도 뭔가 저항적인 리듬은 화끈한 희열과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 노래가 아니었다면 내 기억 속 DJ DOC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노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삶도 그렇게 살았다. 자세한 그들의 일상은 알 수 없었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단편적인 소식들만 꿰맞춰도 DJ DOC란 그룹은 단순한 날라리가 아니라 생각이 있고, 생각을 실천하는 한편으로는 무모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노래만큼이나 매력적이었고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던 DJ DOC만의 아우라였다.

그랬던 사람들이라 그랬을 것이 분명하다. 몇 달 동안 생활 자체가 힘들어서 PC방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고비에서 그들을 기꺼이 도와준 사람도 있었다. 16년차 가수가 가장 고맙다고 밝힌 대상은 흔한 소속사나 방송계 누가 아니라 그때 그들의 둥지를 외상으로 제공해준 PC방 사장이었다. 참 폼 안 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아직도 20대 때의 그 객기와 순수함이 보인다.

그랬던 사람들이니 돈을 나눌 때도 쩨쩨하게 일일이 세지 않았다. 돈뭉치를 세 등분으로 나눠서 눈대중으로 맞춰서 나눴다니 웃음이 나올 뿐이다. 돈에 욕심이 없으면 절대로 자본주의사회라 할지라도 통념이나 관습에 억눌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가난해진 그들을 세상은 무시할지 모르겠지만 놀러와 마지막에 “가수는 음악만 잘하면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은 그들에게 충분히 주어진다. DJ DOC는 사고는 좀 쳤을지라도 음악은 정말 잘했다. 음악만큼 또 잘한 것은 길들여지지 않는 정신이 대중음악계에 있음을 아직까지 증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요즘에는 각종 예능에 출연해서 이빨 빠진 호랑이로 통하는 이하늘이지만 그의 대표적인 예능인 천하무적야구단을 보자면 그런 모습은 단지 예능적인 것일 뿐 그와 김창렬에게서는 다른 멤버들과 구분되는 진실함이 묻어 나옴을 알 수 있다. 사실 7년만의 음반은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더 높은 시도임에 분명하다.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DJ DOC는 반드시 좋은 음악을 선사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연예기사보다 사회면에 더 많이 나왔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그 악동 DJ DOC가 어느덧 40대에 들어선 중견가수들이 됐다. 그들의 생물학적인 연령은 어쩔 수 없겠지만 새 음반에서는 결코 나이 먹지 않을 그들의 정신과 혼을 다시 만나게 될 기대감에 놀러와를 보는 내내 작은 흥분상태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7년만에 기지개를 켜는 그들에게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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