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결과인지, 아니면 KBS측의 해명과 명예훼손 고소 내용대로 오해와 억측의 결과인지 김미화의 트윗터에서 시작된 KBS의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를 둘러싼 문제는 분명 껄끄럽고 민감한 문제들이 배배 꼬여있습니다. 트위터라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너무나 목소리의 증폭이 큰 새로운 매체에 대한 사회의 적응력과, 언론의 자유보다는 장악을 원하는 외부의 압력과 힘, 점점 더 치열하게 대립하는 이념과 이익 단체들 사이의 갈등, 사건의 당사자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 등등,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한 의제이자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그 중에 유독 제 머리 속에 맴돈 문제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녀 스스로가 개그우먼으로서 남기를 원하는 정체성의 호소와 그녀에 대한 일부 철없는 이들의 그녀의 '정치적 편협성'을 공격하는 야유였습니다. 이 두 가지 태도는 저를 무척이나 답답하게 하더군요. 우린 이렇게 후진 나라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이런 것이 문제가 되어야 하나요? 김미화 씨, 당신은 충분히 정치적이에요.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무색무취, 공명정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객관성, 뭐 방송관계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덕목처럼 여겨지는 이런 강제된 중립성은 실상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순간순간 속에서 우리에서 주어지는 선택의 분기점에서, 우린 결정해야 하고, 누구나 그 결정을 위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점심 메뉴를 고르는 문제이건, 데이트 코스를 정하는 일이건, 대통령 투표를 하는 결정이건 말이죠. 모든 결정에는 다른 사람의 의사가 아닌 자기 자신의 뜻과 의지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개인의 기준이 어떠한 현상과 사건, 사고를 대하는 태도와 반응에도 차이를 불러오는 것이 당연하죠. 이렇듯 정치적 성향이라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도 일반 세상사와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네 삶의 여기저기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이죠. 어떤 사실에 대해 몇 마디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해서, 그리고 그 생각이 특정한 집단의 주장과 이해관계와 부합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이 될 수는 없잖아요? 자신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죄가 된다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민주주의 정부인 척 하느니 그냥 우린 독재와 통제가 좋다고 시인하는 편이 더 솔직하지 않나요?

혹시, 대다수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공공의 영역인 방송에서 자신의 편중된 주의, 주장을 피력함으로써 공공성을 저해시켰다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정말로 그런가요? 라디오 DJ의 한 두 마디의 언급으로 자신의 이해관계와 신념을 바꿀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들이 줏대가 없는 사람들이었군요. 역사 교과서의 몇 줄 해석을 바꾸는 것으로 학생들의 역사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일부 높으신 분들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편중되고 개인적인 주장이 전파를 탄다고 해도, 결국 그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각 시민 개개인의 주관과 의식입니다. 진보적인 앵커가 있을 수도 있고, 보수적인 DJ, 시사 평론가, 연예인, 기자 등등이 있을 수도 있겠죠. 그뿐이겠어요? 극우, 극좌, 친북, 친미, 친일의 무수히 많은 개인적 성향을 가진 국민들처럼, 공인이라는 사람도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죄악인 것처럼, 터부시하고 제약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그 속에서 각 국민들의 선호와 선택에 맡기는 것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가 아니냐는 말입니다.

모든 국민을 정치적인 사람으로 대우하고, 존중해야 할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수립된 정부가, 정치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죄악시하고 비판하다니요. 나와 다른 생각과 주장은, 그야말로 다른 것일 뿐, 그것이 나쁘거나 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TV여서 안 되고, 연예인이어서 안 되고, 공직에 있어서, 대중에게 영향력이 있는 위치에 있어서 다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면, 도대체 정치는 그럼 누가 하는 건가요? 설마 일부 정치인들을 위한 거수기와 홍보 도구로만 국민들과 신문, 방송을 취급할 생각은 아니겠죠. 모든 국민에게 주권과 정치적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말이죠. 이 모든 게 오해일 뿐이고, 확대해석일 뿐, 지금의 정부나 집권 세력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억울한 누명일 뿐이라 항변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지난 정권 교체 이후 지금까지의 소동들과 여러 갈등들이 다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우연의 산물이라고 믿으라는 말이군요. 하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순진하게 모른 척 넘어가지 않을 만큼, 저는, 그리고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충분히 정치적이고, 민주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미화씨의 나는 정치적이지 않다, 나는 개그우먼일 뿐이라는 말은 나는 너네 정부에 적대적이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만 좀 괴롭혀라 라는 말로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만 좀 괴롭히세요. 사실 그녀의 언행이 그렇게 특출난 것도,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잖아요? 자신의 생각을 몇 마디 덧붙여서 말하는 게 뭐 그리 큰 죄가 되는지 모르겠군요.

사실 전 그녀를 비롯한 다른 모든 공인들이 훨씬 더 정치적이고 논쟁적이었으면 좋겠어요. 누구를 지지하는지, 왜 그런 말들과 해석을 내놓는지 그 속내가 뻔히 보이는데 괜히 중립인 양, 혼자만 고고하고 객관적인 진리를 말하는 양 스스로와 대중을 속이지 말라구요. 중립성이니 공공성이니 하는 핑계로, 국민의 당연한 권리인 정치를 마치 자기들만의 것인 양 묶어놓지 말라는 거에요. 전 우리나라가 마치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기 의견을 말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일상화되는 사회인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이렇게도 촌스럽고 후진 나라였다니 하루하루가 민망하고 쪽 팔려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정직하고 대중들에게 솔직했던 유능한 그녀의 기자회견이 더더욱 서글프기만 하구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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