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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그녀들과 목포경찰서장 이준규, 38주년 광주를 돌아보다광주,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장영 기자 | 승인 2018.05.19 13:30

38주년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KBS 스페셜>은 특별한 시선으로 그날을 돌아봤다. 당시를 견뎌낸 여성들을 통해 그날을 회고하는 방식은 좋은 접근이었다. 그리고 <궁금한 이야기 Y>에서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을 주목했다.

광주 끝나지 않은 이야기;
38년 전 그날을 왜곡하는 무리들과 무신경한 정치권, 광주민주화운동은 아직 진행 중

38년 전 광주는 참혹했다. 이제는 이를 모르는 이들은 없다. 하지만 군부 독재 아래 광주는 잊혀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 뒤 독재로 회귀하고자 했던 집단에 의해 다시 한 번 능욕을 당해야 했던 광주. 헌법 전문에 광주민주화운동은 실릴 수 있었다.

문 정부는 개정 헌법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명기하려 했지만, 개헌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방기해버렸다. 대선 과정에서 모두가 개헌을 외쳤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말도 지키지 않은 채 책임을 방기했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책을 무기로 국민을 우롱하는 그 집단들은 여전히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다. 80년 당시처럼 말이다.

제38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전야제 행사에서 1980년 5월 광주의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연합뉴스

독재자 박정희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죽은 뒤 대한민국은 민주화를 외쳤다. 부마항쟁은 도화선이 되었고, 80년 광주에도 민주화에 대한 갈증이 증폭되었다. 하지만 스스로 독재자가 되고 싶었던 전두환과 신군부는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2016년 가을부터 시작된 광화문 촛불 집회처럼 광주에서도 민주화를 외치는 이들이 거리에 나섰다. 이는 전국적인 흐름이었고, 독재를 끝내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전두환은 공수부대를 그곳으로 내려보냈다. 그리고 총칼로 자국민을 도륙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로 인해 광주 시민들은 빨갱이 집단이 되었고, 그렇게 광주는 고립된 채 전두환과 신군부에 의해 죽음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사망한 그 현장에는 건장한 청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보기에도 너무 어린 학생부터 나이 많은 할아버지까지 수많은 이들은 민주화를 외치다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군인들에 의해 학살 당해야만 했다.

그 참혹한 현장에는 그녀들이 있었다. 가두방송을 했던 여성과 광장에 나섰던 수많은 이들의 어머니가 그날 광주에 존재했었다. <KBS 스페셜>은 그 여성들을 통해 광주를 바라봤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차명석, 스물한 살이었던 김순이, 박영순,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37살 박영순까지 그들은 그날 광주에 있었다.

가두방송을 했던 첫 여성이었던 차명석은 현재 안동에서 홍어 장사를 하고 있다. 지독한 시절을 보낸 후 멀리 떠나 살고 싶었지만 그 기억을 온전히 버린 채 살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지역의 사회단체를 도우며 현재도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21살이었던 김순이는 마지막 날까지 도청에 남아 있었다. 박영순은 27일 새벽까지 도청에서 방송을 했던 최후의 목소리였다. 평범한 가정주부였지만, 신군부에 의해 간첩이라 불렸던 이영자까지 수많은 광주의 여성들은 외면하지 않고 잔인한 공수부대와 맞서 싸웠다. 17살 아이를 가슴에 묻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선 김길자를 포함한 수많은 어머니들이 그날 광주에 있었다.

제38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전야제 행사에서 유족들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망월동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희생자. 그날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5월 어머니회'는 매일 권력과 맞서 싸워야 했다. 어머니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그날의 기억들은 모두 묻혔을 수도 있었다. 그 어떤 협박과 폭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매일 거리에 나서 진실을 외쳤던 어머니들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38년 전 계엄군의 총격 사이로 가두방송을 한 소녀들과 죽은 자들을 염하고, 추모하기 위해 검은 리본을 만들던 여성들. 헌혈을 하기 위해 수많은 직업여성들도 동참했던 시절이었다. 진압하는 경찰에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진상규명을 위해 거리로 나선 어머니들까지 당시 여성들은 잔인한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맞섰다.

80년 광주 경찰 총책임자였던 전남도경의 故 안병하 경찰국장은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했다. 전남 모든 경찰에게 총기를 군부대에 반납하라는 지시를 내린 故 안 경찰국장은 신군부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안 경찰국장의 지시를 받고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은 총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아쇠 뭉치를 모두 제거해 경찰들과 함께 고하도 섬으로 들어갔다. 공수부대가 광주를 점령한 후 이 서장은 보안사에 끌려가 무려 90일 동안 취조를 당해야 했다.

80년 1월 목포경찰서장이 된 故 이준규 서장은 5월 30일 직위 해제되었고, 7월 7일  파면 당했다. 신군부에 의해 그는 경찰 역사상 가장 무능한 존재로 낙인이 찍혔다. 언론 역시 고인을 조롱하고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만약 故 안병하 경찰국장의 총기 소산 명령을 어기고 신군부의 지시를 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광주 못지않게 목포 역시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신군부는 이를 빌미로 광주와 목포 등 전남을 대표하는 두 거대 도시를 학살의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제38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전야제 행사에서 1980년 5월 광주의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연합뉴스

고인은 서슬 퍼런 그들의 지시보다는 시민들을 먼저 생각했다. 그렇게 총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모든 방아쇠 뭉치를 빼서 경찰들을 데리고 섬으로 들어간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의 용기로 인해 목포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용기 때문에 그는 보안사에 끌려가 무려 90일 동안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다.

풀려난 후 고인은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5년 후 암으로 사망했다. 고인의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였다. 스물 나이에 경찰이 된 故 이준규 서장은 그 이유로 가족이 학살 당했다.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전쟁 당시 북한군에 학살을 당했다.

한국전쟁 당시 경찰이라는 이유로 가족을 잃은 故 이준규 서장은 전혀 반대편에 있던 자들에 의해 경찰이라는 이유로 온갖 고문과 모욕을 받고 숨져야 했다. 한국 현대사를 가로막았던 이념 전쟁은 故 이준규 서장에게 모두 새겨져 있었다. 경찰이라는 이유로 가족을 잃고, 자신의 목숨마저 내줘야 했던 고인의 삶은 그래서 특별한 가치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경찰이 되자마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학살을 당한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신군부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역사상 최악의 경찰이라는 오명을 받고 쓸쓸하게 숨져간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은 여전히 사면복권되지 못하고 있다.

38년 전 광주에는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군인들에 의해 학살 당했다. 이를 지시한 전두환은 사형을 선고받고도 1년도 안 되어 사면복권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한 수천억을 가지고 자식과 손자들까지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  

전두환의 큰아들 전재국은 시공사를 71억에 최근 팔았다. 하지만 이를 국고로 환수하지 못하고 있다. 잔인한 학살자 가족들은 그렇게 호의호식하고 있다. 그리고 자서전을 통해 자신들의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자들을 다시 능욕하고 있다. 그들은 절대 용서받아서는 안 되는 범죄자라는 사실만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단죄되지 못한 역사는 그렇게 다시 우리를 억압한다. 친일파들을 옹호했던 이승만, 독재 권력을 계승한 권력 집단은 이제 한반도 평화를 부정하고 있다. 냉전수구 사고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구태 정치 세력이 여전히 남겨진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성되지 못했다. 우린 여전히 투쟁 중이다.

장영 기자  mfmc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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