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웃고 노래하고 춤추면 됐다. KBS 노조가 파업 15일채를 맞아 두 번째로 마련한 시민과 함께 하는 KBS 개념탑재의 밤(아래 개념의 밤)은 파업현장에서 당연히 느끼게 되는 긴장감은 없었다. 이런 파업이라면 두려울 것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이 얼마든지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7시 거의 정각에 시작된 개념의 밤은 중간에 KBS본관 계단에서 했으면 딱 좋았겠지만 명박산성보다 무섭다는 녹색산성에 가로막혀서 좁은 인도에 무대와 객석(이라야 그냥 맨바닥)에서 진행됐다.

개념의 밤이 시작되기 바로 전 파업의 여신정세진 아나운서가 검은 원피스 차림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재호 아나운서 등 낯익은 얼굴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 날 첫 순서는 파업에서는 소녀시대 보다 인기가 높다는 KBS 여성 조합원으로 구성된 개념시대의 춤과 노래로 열었다.

▲ 파업의 소녀시대? KBS 여성조합원들로 구성된 개념시대의 첫 무대
이어 스피드레퍼 아웃사이더, 홍대 여신 타루, 조PD 등의 직업가수들과 KBS 자체 밴드인 파업 장기화와 몰골들 등 아마추어가 무대에 올라 좌중의 흥을 돋우었다. 그렇게 춤과 노래로 한여름 더위도 쫓아낼 듯한 KBS 파업지지의 열기는 조합원들이 만든 두 개의 영상물에서 폭발하였다. PD들이 추적 60분을 패러디한 추적 6분(실제로는 거의 10분)과 아나운서들이 만든 비인간극장 인규씨의 하루 등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1박2일의 재미와 추적 60분의 신랄함을 합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팅을 위해서 해당 동영상을 꽤나 찾아봤지만 파업으로 지쳤는지 아직 웹상에 발견되지 않고 있다. 나중에라도 꼭 잊지 말고 찾아보기를 강추한다. 아쉽게도 다른 일정이 있어 끝까지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KBS 노조원들의 개념탑재는 확인할 수 있었다. 염경철 위원장은 누리꾼들이 KBS를 어찌 부르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스스로 '캐병신'이란 말을 할 때에는 남 모를 자괴감이 클 것이다.

MBC가 마봉춘으로 불리고 KBS가 고봉숙으로 불리던 때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의 KBS는 캐병신이거나 김비서 방송일 뿐이라는 그들의 솔직하고 뼈에 저린 듯한 현실고백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 고백은 진실해 보였다. KBS의 공정보도를 위한 파업은 결코 그들만의 싸움은 아닐 것이다. 시청료를 내는 모든 시청자들의 권리이며, 바로 우리들의 싸움이다.

요즘 KBS는 특히 PD 저널리즘이 완전히 죽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미 이것은 김인규 사장의 취임부터 에상됐던 시나리오에 의한 것이며, 최근 개그우먼 김미화의 블랙리스트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조짐은 작년 12월 초 소위 미수다 루저 사건을 빌미로 내놓은 막말 삼진아웃제에 숨겨진 비밀 아닌 비밀이기도 했다. [참고글 KBS 막말 삼진아웃에 숨겨진 비밀]

개념 탑재의 밤 그 뜨겁고 진지했던 현장 사진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대신해본다.

▲ 아웃사이더
▲ 홍대여신 타루
▲ 파업 장기화와 몰골들(KBS 라디오 PD들 주축)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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