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오늘로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새벽에 전격 취소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일단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한국과 미국 공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 훈련이다.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 전역에서 우리를 겨냥하여 벌어지고 있는 이번 훈련은 판문점 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며 좋게 발전하는 조선반도 정세 흐름에 역행하는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 초 남측 대표단이 방북했을 때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양해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것 외의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의도는 두 가지 방향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남한을 상대로 한 것과 미국을 겨냥한 측면이다. 일단 한미군사훈련을 언급한 것 자체에 주목하는 흐름부터 보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6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전화연결에서 “대대적인 위협적인 무기가 동원되는 경우에 국방부가 미 국방부와 얘기를 했어야 한다”며 “북한 반응은 충분히 예상되는 바이니까 이것(훈련 규모) 좀 줄이자는 얘기를 했었어야 되는데 그걸 안 했고 청와대도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맥스선더 훈련에서 북한이 예민하게 받아들일만한 대목은 스텔스 전투기인 F-22와 장거리 폭격기인 B-52 참가 여부다. F-22는 북한의 방공망을 무력화 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집무실을 정밀타격 할 수 있고 B-52는 핵폭탄 운반능력이 있다. 지난해 미국은 B-1B 랜서 전략폭격기를 북한 동쪽 해상에 전개한 바 있다. 이때 북한은 B-1B 편대의 움직임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 간 또 북미 간 대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맥스선더 훈련에 F-22와 B-52가 참여한다는 것은 북한 입장에선 체제보장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두 가지 원칙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 이런 맥락이라면 한미가 협의해 맥스선더 훈련의 내용을 조정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도 있다. 언론에 따르면 B-52는 아직 훈련에 참가하지 않았으므로 앞으로도 참가하지 않도록 조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의 긴급회동은 이런 내용을 포괄해 진행될 걸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다롄 동쪽 외곽 해변에 있는 방추이다오 영빈관에서 만나 산책 중 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훈련 문제는 지엽적인 것이고 결국 문제는 전체 맥락이라는 점에서 결국 북미대화의 문제를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북한은 남북고위급회담 무기한 연기 입장을 새벽에 공개했는데 이는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북미정상회담의 이상기류가 북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지 들여다봐야 한다.

이와 관련해선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다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23일부터 25일까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공식화하는 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북한이 나름의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이례적인 조치이다.

그러나 핵실험장 폐기로는 충분치 않고 핵능력의 재건 가능성까지 없애야 한다는 게 최근 미국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워싱턴DC의 관계자들은 핵실험장 폐기 의식에 대해서도 보여주기식 조치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15일 IAEA 등 전문가들의 참여를 북한에 제안했다고 밝힌 바도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방적으로 내주기만 하는 협상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북한에 전적으로 불리하다. 16일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만남에서 “미국이 승전국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승전국과 같은 태도’란 미국이 북한에 일방적으로 어떤 조치를 요구하기만 할 뿐 이에 맞는 ‘성의표시’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얘기다.

미국의 ICBM 시험 발사가 이뤄진 것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미 공군은 현지시간 14일 새벽 미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기지에서 탄두가 제거된 미니트맨3 미사일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이 미사일은 약 6천700킬로미터를 날아갔는데 최대 사거리는 1만3천킬로미터다. 미국 어디서 발사해도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물론 미니트맨3 발사 시험도 점검 차원에서 분기별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특별한 요인으로 보기 어렵다. 다만 문제는 앞서 언급한 워싱턴의 강경한 분위기와 엮이면 북미 간의 갈등 구도의 맥락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대목은 미국 하원 군사위가 주한미군을 일정 규모 이하로 줄일 수 없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2만8천명 규모인 주한미군 규모를 2만 2천명 이하로 줄일 수 없는 내용의 국방수권법 수정안이 하원 군사위에서 의결된 것인데, 이 기준 이하로 주한미군 규모를 감축하기 위한 조건이 부과돼있다. 첫째는 국가 안보 이익에 부합해야 하고 둘째는 지역 동맹 안보를 심각하게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 하원 군사위의 이런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을 협상카드로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물론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북한은 북미대화 국면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고집하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의 의사를 수차례 표현한 바 있다.

문제는 중국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존재한다면 그 성격은 북한의 군사행동을 견제하고 방어하는 것보다는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타깃이 되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이 ‘중국역할론’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북한을 부담스러워했던 것에서 태도를 바꿔 최근 북미대화 국면에 개입하려는 모습을 명확히 하려는 것은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동아시아 세력재균형 국면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행보로 볼 수 있다.

중국이 그간 북핵해법으로 주장해온 ‘쌍중단’은 북한 핵동결의 반대급부로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이다.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을 문제삼음으로 인해서 이 방안에 무게가 더 실리게 됐다. 이렇게 되면 북핵문제의 성격은 미중패권의 문제와 더 긴밀해진다. 이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남북 간의 당사자성을 부각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을 시급히 가동하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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