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그녀는 청첩장 다발을 쇼핑백에 담아 출근하던 길이었다.
'저 담달에 결혼해요. 청첩장 드리려고요ㅋㅋ'
필자가 문자를 받고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올 즈음 다시 문자가 왔다.
'저 그냥 집에 가요...짤렸어요 좀 전에'"

지난 2일 조선일보 노조는 노보를 통해 13년간 조판팀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결혼 한 달을 앞두고 하루아침에 돌연 해고된 사연을 보도했다. 사측 간부가 파견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근무 중인 조판팀 직원들에게 ‘휴무를 줄이라’고 요구했고 이에 ‘곤란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직원에게 업무배제와 권고사직을 종용, 결국 해고 사태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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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은 막고 일은 더하라니 갈등 커져”

조선일보 노조는 해당 직원이 대체휴무를 줄이라는 편집부 간부들의 요구에 반발하다가 해고됐다고 밝혔다. 노보에 따르면 조선일보 편집부 간부들은 신문 지면을 제작하는 조판팀이 야근 뒤 다음날 쉬는 인원이 많고 휴일 대체휴무가 많다는 점을 문제 삼아 '야근을 1~2시간 줄이고 다음날 쉬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에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인 해당 직원에게 간부들은 업무배제와 권고사직을 종용했다.

조선일보 노조는 최저임금 인상을 회피하려는 사측의 '꼼수'가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조선일보 조판팀은 '인터비즈'라는 파견 전문업체 소속이다. 조판팀 직원들은 비정규직으로 상당수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올해 최저임금은 월 20만 원 가량 올랐지만 조선일보는 조판팀 직원들의 기본급을 올리고 야근수당을 줄이는 방식으로 총임금 인상을 막았다. 야근을 해도 야근수당이 나오지 않는 구조 속에 간부들이 '휴무를 줄이겠다'며 노동 강도까지 높이자 조판팀 직원들이 거부 입장을 피력했고, 결국 갈등이 깊어져 해고 사태까지 발생했다는 게 조선일보 노조의 설명이다.

조선일보 노조는 조판팀이 파견업체 소속이라는 점을 들어 편집부 간부들의 요구가 '불법 위장도급'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조판팀과 사내하청 도급 관계지만 편집부 간부들은 조판팀 직원에게 근무시간 조정, 업무배제, 권고사직을 종용했다. 이는 도급으로 위장한 불법파견이라는 지적이다. 노조는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해고를 본사 간부들이 압박했다는 것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갑질’”이라며 “노동자에게 부당해고는 물벼락 맞는 것만큼의 ‘갑질’”이라고 비판했다. 해당 편집부 간부들은 "권고 사직시킬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었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정규직 해고, 회사 차원의 갑질로 비화"

11일 조선일보 노조는 노보를 내 해당 사안에 대해 재차 사측을 비판했다. 조선일보 노조는 "지난 노보의 비정규직 동료 해고 기사에 대해 사측이 '노조 주장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진실을 부정하고 있다"면서 "진상규명을 하고 수습책을 내놓기는커녕 갑질 가해자들의 편에 서서 피해자에 대해 '근무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며 인격을 모독하고 2차 피해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몇몇 간부들의 부적절한 행위로 끝날 수 있었던 문제가 회사 차원의 '갑질'로 비화됐다"며 "직접 고용하면 파견업체에 지급할 수수료로 임금을 올려줄 수도 있는데 도급 체제도 유지할 방침인 듯하다"고 강조했다. 사측이 조판팀 직원들을 직고용할 수 있음에도 '노동유연화'를 위해 도급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노조는 "사측의 이런 행태에 발맞춰 일부 편집부 조합원이 노보 기사가 사실이 아닌 것처럼 호도하는 메일을 사원들에게 돌렸다"며 "부서의 위상이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해고된 동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편집부 일부 조합원들은 2일 노보가 발행된 후 사원들에게 "이번 일은 편집부의 근무 요청을 조판팀이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며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노보를 만들었다. 노조는 팩트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고 한쪽의 주장들만 사실인 양 게재하였다"는 내용의 노조 비판 메일을 전송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팩트는 '강하게 반발했으나 거부할 힘이 없었다'이다. 간부들의 요구대로 야근 뒤 휴무는 줄었다"며 "막연하게 얘기하지 말고 어떤 부분이 사실과 다른지 구체적으로 지적하길 바란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전형적인 가해자의 논리"라고 반박했다.

노조는 "직접적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는 사유일 때만 수차례 경고와 징계 끝에 마지막으로 신중하게 해고할 수 있는 게 이 나라의 법"이라며 "(편집부 조합원들의 주장은)사실과 다른 편견일 뿐더러 설사 그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법적으로나 사회 상규상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노동자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말이 많아'선 안 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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