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가 교양프로그램인 <W>의 새 진행자가 되었다. 관련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 할 질문을 대신 하겠다 ... (W 진행을 맡은 것에 대해) 유해진 씨는 뭐라고 응원을 해줬느냐?”

진행자가 뭐라고 하려는 순간 김혜수가 불쾌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집어 들면서 “W 관련 기자회견이다. 개인적인 것을 묻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기자회견에 앞서 진행자가 “김혜수 씨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까지 분명히 말했는데도 남의 이성교제 사안을 캐물어대던 기자에게 김혜수가 ‘즐~’이라고 한 방 먹인 것이다. 통쾌하다.

보통 연예인들은 기자나 매체의 눈치를 많이 본다. 대놓고 기자에게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배우가 모처럼 기자에게 ‘질렀다는’ 소식을 들으니 왠지 후련한 느낌이 든다. 전복의 쾌감이라고나 할까?

- 특히 더 통쾌한 이유 -

매체들이 국민의 관심사를 대신해 알아본다며 연예인의 사생활을 캐는 것에 짜증이 나고 있던 참이었다. 국민이 매체에 연예인 사생활을 캐달라고 권리를 위임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매체들은 남의 사생활을 캐며 국민의 알권리라는 명분을 내세웠었다.

얼마 전엔 비의 사생활이 사진까지 곁들여 폭로되는 민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매체는 비의 뒤를 캔 것이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사를 쓰고, 방송에 나와서까지 당당하게 발언을 했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샀었다.

그때 인터넷 기사에 걸린 비의 사진을 보며 마치 나의 사생활을 찍혀 공개된 듯한 공포를 느꼈었다. 매체가 누군가의 사생활을 캐는 것이 용인되면 결국 나를 포함한 누구라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을 연예인 촬영대회 분위기로 만드는 것도 과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연예인이 다쳤을 때 병실 안까지 쳐들어가 아픈 사람 얼굴을 찍어대는 것도 불편했었다.

연예인도 사생활을 존중 받아야 할 사람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사적인 영역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게 없으면 스트레스를 풀 수가 없게 된다. 항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의 정신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것이 우울증의 한 원인이 된다.

매체들이 보여주는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이슈의 수준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작품 자체의 내용이나 연예인의 공적인 행보, 작품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보다, 사생활에 더 크게 집착하는 것을 결코 수준 높은 관점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W>는 한국의 대표적인 교양프로그램 중의 하나다. 한국의 시야는 아주 좁다. 대체로 대내적인 일들에만 집중하고 세계적인 시야와는 거리가 먼 편이다. 반면에 제1세계의 매체들은 국제뉴스, 세계적 이슈들에 대해 훨씬 큰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우리 매체가 우리의 능력으로 세계의 모습을 조망하는 <W>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프로그램의 기자회견이면 그 프로그램의 의미를 드러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김혜수도 스타 연예인으로서가 아닌 순수한 진행자로 <W>에 임하겠다고 했었다. 게다가 행사 진행자가 사전에 분명히 김혜수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고지까지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자가 김혜수와 남자 친구의 시답잖은 일에 대한 질문을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주제가 흘러가면 다른 기자들도 옳다구나 하며 김혜수 이성교제 ‘떡밥’에 달려들 것이고 정작 프로그램인 <W>는 사생활 가십에 묻혀 보이지도 않게 될 판이었다. 김혜수가 ‘즐~’이라고 한 방 날린 것이 통쾌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자가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 할 질문을 대신 하겠다”라며 마치 국민을 대신해 질문을 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한 것도 우습다. 어느 국민이 <W> 기자회견장에 가서 김혜수 사생활 파헤치라는 주문을 했단 말인가? 정치인이 툭하면 하는 ‘국민의 뜻’ 타령만큼이나 우스운 일이었다.

- 김혜수가 거만했다? -

이 사실을 알린 기사의 댓글들을 보고 놀랐다. 당연히 김혜수를 옹호하고 기자를 성토하는 내용이 전부일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김혜수를 비난하는 댓글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김혜수가 거만하게 비친 것이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항상 웃는 얼굴로 듣기 좋은 말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할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다. 때와 장소에 따라 화를 낼 수도 있고 남에게 충고를 할 수도 있다. 그것을 불편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옳은 말을 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지, 말투가 세다고 해서 거만하다고 욕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기자에게 싫은 소리를 한 김혜수가 앞으로 기자들에게 해코지당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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